[피해사례 33, 최주완] 부인 잃은 택시기사의 삶
2008년 2월 최주완 씨(61)의 아내 김영금 씨(당시 52세)는 ‘급성폐렴’ 진단을 받았다. 2005년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서도 식당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가던 성실한 아내였다. 그랬던 아내가 2007년 가을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감기라 생각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감기로 병원을 오가던 아내는 ‘급성폐렴’ 진단을 받고 서둘러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는 최 씨의 아내에게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면 늘 폐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던 아내였기에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의사들도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의사들은 최 씨에게 “외국에서나 생기는 병이다. 혹시 외국을 다녀온 일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결국 최 씨는 아내의 폐질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해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아내가 입원한 지 한 달 보름 만이었다.
최 씨에게는 어린 아들과 딸이 남아있었다. 택시기사였던 최 씨는 아내가 떠난 공허함을 추스를 틈도 없이 일터로 나섰다. 아내가 떠난 지 3년째 되던 2011년 봄, 최 씨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 손상의 원인”이라며 판매중단, 회수 권고를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즈음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는 가습기 살균제가 ‘소리 없는 살인마’라며, 그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연달아 보도되고 있었다.
순간 최 씨는 아내가 수술 후 사용했던 가습기와 살균제가 생각났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간 최 씨는 집 한 구석에서 아내가 반쯤 사용하다 만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를 발견했다. 아내가 왜 죽었어야 했는지 몰랐던 최 씨는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내가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2008년 아내가 사망하고 나서도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서 버젓이 팔려나가던 제품이었다.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 씨는 근무시간과 자는 시간을 쪼개 그 길로 1인시위에 뛰어들었다.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정보를 모으고 소송준비까지 하다보면 하루가 모자랐다. 최근 최 씨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의 대표를 맡아 문제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만난 최 씨는 “사망한 사람도 있고, 폐 손상으로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1인시위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아직 몸이 멀쩡한 내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얼마 전 가습기 살균제로 산모와 태아를 한꺼번에 잃었던 남편이 부산으로 내려갔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털어놨다.
최 씨는 “특히 전국 각지의 산모들과 영유아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산소호흡기를 달아야만 살 수 있는 어린이와 주부도 있다. 한번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택시로 피해자 한분을 모셔다 드리는데 산소호흡기 배터리가 떨어지려 해서 나까지 덜컥 겁이 났다. 돌잔치를 끝낸 뒤 감기 증상으로 입원했다가 간질성 폐질환을 앓게 된 아이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초등학생이 됐지만 지금도 산소 호흡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이제 초등학생이 평생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피해자도 있고 사망 원인도 밝혀졌지만 정작 가해자가 없는 현재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비통하다”라고 토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기록한 피해자들의 통계는 더욱 참담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난 후 1년 동안 정부가 파악한 피해사례는 34건에 사망자 1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늘어나면서 2014년 3월 기준 피해 사례는 361건 104명 사망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 8월 피해자단체가 관련업체 15곳을 살인혐의로 형사고발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모르고 있던 피해자들이 속속 나타나면서 현재는 피해사례 550여 건에 사망자 144명을 넘어섰다. 앞으로도 피해 건수와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가해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망자 수가 100명을 훌쩍 넘긴 대형 사건임에도 3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자의 폐를 굳게 만들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정부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관련업체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관련업체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2012년 피해자 37명이 모여 옥시싹싹, 와이즐렉, 홈플러스, 세퓨 등 가습기 살균제 등을 제조 판매한 회사 10곳의 대표자에게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관련업체 관계자의 해외출장과 부재중 등을 이유로 소송진행이 쉽지 않았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업체 옥시레킷벤키저(옥시)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는 표시를 했다며 허위 과장광고 등으로 과징금 5100만 원을 부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옥시 측은 해당 제품의 유해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역으로 소송을 제기해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옥시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이후에도 공식적인 사과나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2013년 ‘보상’이나 ‘배상’이 아닌 아무 조건 없는 50억 원을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피해자단체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관련업체의 피해자 구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피해자에게 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원한 다음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는 ‘거의 확실함(127명)’과 ‘가능성 높음(41명)’ 판정을 받은 168명에 불과하다. ‘가능성 낮음’ ‘가능성 없음’ ‘판정불가’를 받은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폐질환에 앞서 다른 수술을 받았으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능성이 낮거나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분류했다.
앞서의 피해자 가족 최 씨도 지난 3월 가습기 살균제와 부인의 사망 상관관계 조사에서 ‘가능성 낮음’ 판정을 받았다. 피해조사를 실시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폐손상조사위원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최 씨는 부인이 2005년 간단한 수술을 받은 게 결국 문제가 됐다고 했다. 최 씨는 “수술경험이 있거나 고령의 피해자는 제대로 된 피해조사를 받지 못했다.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몸이 많이 허약해져 있는 상태다. 살균제에 노출됐을 때 더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수술했다는 이유로 인과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이 합당한 조사인지 되묻고 싶다”며 “피해자 지원금에도 치료비와 장례비(사망자의 경우) 외 간병비와 생계수당은 제외됐다. 특별법 제정은 이미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많은 피해자들의 일상이 망가지고 생업을 포기했지만 아무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 씨는 인터뷰 내내 “관련업체의 진심어린 사과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은 앞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 업체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일 것이라는 계획도 설명했다. 최 씨는 “지난 8월 26일 관련업체를 살인죄로 고발하면서 흩어져 있거나 나타나지 않았던 피해자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사례를 알리고 필요하다면 불매운동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요신문 2014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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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택시기사 최주완 씨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결과 설명회 및 피해지원방안 공청회에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 관계자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결과서를 받고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최 씨는 사망한 아내의 사인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낮다는 판정결과를 받았다. 최 씨는 2년이 넘게 거리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상황을 알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정부 기자회견 및 1인시위를 해왔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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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로 부인 잃은 택시기사 1인시위
파이낸션뉴스 2012 6 6
가습기살균제로 부인을 잃은 택시기사 최주완 씨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기업과 정부에 피해자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UN이 지정한 세계환경의 날인 이날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정부기관과 SK케미칼, 애경본사, 옥시본사, 롯데마트, 이마트 등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및 판매사 8곳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자 사과와 피해자 보상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