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1, 임성호] 옥시싹싹이 망가뜨린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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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사례 21, 임성호] 옥시싹싹이 망가뜨린 이 남자

최예용 0 7883 0 0

'옥시싹싹'이 망가뜨린 이 남자, 그 기막힌 사연은?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폐·심장 이식받은 임성호 씨

 
프레시안 남빛나라 기자  
 
기사입력 2013-02-14 오후 2:35:00
 

     

지난 2011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사건이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일상 속의 생활용품이 영·유아 36명을 포함한 78명(2012년 10월 8일 기준, 환경보건시민센터 집계)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이내 사그라졌다.

하지만 무심코 가습기에 넣었던 살균제 때문에 소중한 아들딸, 아내, 남편을 잃고 남아 있는
가족도 건강이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조업체는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시종일관 당당하다.

정부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자제하라"는 권고 수준의 대책만 내놓은 채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 1994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국민은 약 874만 명(전체 국민의 18.2퍼센트)에 달한다. 실제 피해 사례가 몇 건인지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인 것이다.

<프레시안>은 모두가 외면한 채 신음하는 피해자를 만나 피눈물 나는 '그들만의 싸움'을 들었다. < 편집자>
가벼운 감기에 걸린 임성호 씨는 종일 마스크를 쓴다. 지난 2011년 5월 심장과 폐 이식을 받은 그에게 의사는 "당신의 몸은 갓 태어난 신생아보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상태"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제 가벼운 감기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종일 답답한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는 수술하기 불과 7개월 전에 받은 건강 검진에서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지난 1월 29일 오후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임 씨의 집에 들어서자 세
아이 덕에 쌓인 빨래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기자를 보고 여덟 살인 첫째 아이가 엄마에게 "무슨 선생님이야?" 하고 물었다. 젊은 여자를 보면 학습지 선생님부터 떠올리는 어린아이지만 아빠가 왜 아픈지는 알고 있었다. 임 씨의 애들은 "가습기 때문에 아빠 심장 아파"를 입에 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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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9일 찾은 임성호 씨의 집에는 벽마다 아이들의 사진이 가득했다. 임성호 씨가 세 아이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눈 떠보니 남의 심장과 폐가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 폐에 심장까지 이식받은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수술을 받게 됐나요?


"지난 2010년 10월 31일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어요. 2011년 1월경부터 걸을 때 숨이 차서 그해 3월에 동네 병원에 가봤지요. 치아 때문에 갔다가 옆에 방사선학과가 있기에 내친김에 엑스레이를 한 번 찍었는데 의사가 얼굴이 사색이 되더군요. '굉장히 위급한 상태예요.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건국
대학교 충주병원에 가서 입원 검사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폐에 구멍이 생기는 기흉 진단을 받았는데 데 의사도 도통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이렇게 상태가 나빠질 정도면 폐결핵밖에 없는데….'라면서. 일단 의사가 주는 폐결핵 약을 먹었죠. 불과 5개월 전에 받은 건강 검진에서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답답했습니다.

4월에 다시
서울 아산 병원으로 갔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폐결핵과는 무관하다며, '원인 미상 폐 질환' 진단을 내렸어요. 그때부터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서 중환자실로 옮겼고요. 심장, 폐 이식 수술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결심했어요. 수면 유도제를 맞고서 잠들고 깨보니 남의 심장과 폐가 내 몸속에 들어와 있더군요."


임성호 씨가 서울 아산 병원을 찾은 2011년 4월에는 '원인 미상 폐 질환' 증상을 보이는 임산부들이 이 병원으로 대거 몰리던 때였다. 당시 그는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 중 유일한 남자였다.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종일 수면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아내 김재남 씨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고, 보호자끼리 모여서 웅성거렸지요. '어쩌면 이렇게 다들 증세가 똑같지' 하며 의아해했어요."

따지고 보면, 임 씨가 서울 아산 병원을 찾기로 결심한 2011년 4월이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내가 폐결핵 진단만 믿은 채 서울 아산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그냥 죽었을 거예요. 그리고 혹시 죽더라도 나도 가족도 폐결핵으로 죽은 줄 알았겠죠.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 아니라요. 이런 사례가 많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병원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고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볼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 당시 병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을 것 같은데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요?

"전혀요. 사실 걱정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에요. 폐가 갑자기 안 좋아졌으니 '혹시 가습기?' 이런 생각을 해보긴 했어요. 실제로 서울 아산 병원에서 의사와 면담할 때 '가습기가 문제가 아닐까요?' 하고 묻기도 했고요. 그래서 의사가 가습기를 살펴봤어요. 물론 '균도 검출되지 않고 가습기는 문제가 없어요' 이런 답을 받았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죠.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를 더 깨끗하고
안전하게 쓰라고 만든 거잖아요. 그러니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에서 균이 발견될 리가 없지요. 당연히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요. 사실 수술하고 나서 퇴원해서 집에 있을 때도 가습기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틀었어요."


집에 찾아온 질병관리본부 조사원 曰 "가습기 살균제 사용했나?"

이후 역학 조사에 들어간 질병관리본부 조사원이 임성호 씨의 집에 들렀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적이 있어요?" 이 질문을 받고야 그들은 6개월 동안 급속도로 진행된 이상한 사건의 원인을 알 았다. 이들
부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2010년 10월 31일부터 사용했다"고 정확한 날짜를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시의 영수을 챙겨둔 탓이다.

- 질병관리본부가 원인을 밝혀냈다고 연락을 줬어요?

"연락은 없었어요. 그냥 텔레비전을 보다 알았죠."

다른 모든 피해자처럼, 그 역시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 알았고 이제까지 사측과 정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관련해 사과는커녕 말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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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호 씨. ⓒ프레시안(남빛나라)

 

수술비 6000만 원, 매달 약값 300만 원

- 심장과 폐를 한 번에 이식했는데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이 가장 좋은 상태입니다. 이보다 좋은 상태는 평생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체력은 엉망이죠. 무거운 짐은 언감생심이에요. 의사가 '가볍게 걷는 정도의 운동은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해서 조금씩 걷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이식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더군요.

폐 이식 환자가 5년 생존할 확률이 50퍼센트래요. 이식하면
드라마영화처럼 이 상태로 오래 살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게다가 이식 거부 반응을 억제하려면 '면역 억제제'를 평생 먹어야 합니다. 면역 억제제 때문에 당뇨가 와요. 또 면역력이 약해져서 작은 병에도 몸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죠. 직장 생활은 당연히 물 건너갔고요."


- 아이가 셋인 집안의 가장인데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다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겠네요.

"당연하죠. 전에 살던 35평(115제곱미터)짜리 집을 팔고 지금 처가에 들어가서 삽니다. 병원비로 돈이 정말 많이 나갔어요. 다행히 저는 심장 이식을 받아서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아서 약값의 10퍼센트만 부담하면 됩니다. 두 달에 20만 원 정도만 내요. 그런데 피해자 대부분이 폐 이식만 받은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약값만 200만 원씩 낸대요."

아내 김재남 씨도 한숨을 내쉰다.

"우리는 그나마 남편이 빨리 이식 수술을 받고 퇴원해서 돈이 적게 든 편이에요. 이식하는 데 수술비가 56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이제까지 만난 피해자 중에 우리 의료비가 그나마 가장 적은 편이었어요. 내가 아는 어떤 집은 4억 원을 썼다더군요. 그렇지만 우리도 희귀 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기 전에는 6개월 동안 약값만 한 달에 300만 원씩 들었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살 길은 소송뿐…"'김앤장'이라잖아요!"

8세, 5세, 4세인 세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서 독립하기까지 쇠털같이 많은 날이 남았다. 임성호 씨는 물론이고 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 역시 직장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들 가족이 그 많은 날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제조 기업(옥시레킷벤키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임 씨는 절박하게 말한다.

"우리가 살 길은 소송밖에 없어요."

그러나 '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인 이 기업은 국내 최대 법률 사무소 '김앤장'으로 맞섰다.

- 기업이 '김앤장'을 내세운 것을 보면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싸워보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보입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장 우리 쪽 변호사부터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승소'를 자신하면서도 상대가 '김앤장'이라니까 부담을 갖더군요. 당연하죠. 무시무시한 상대잖아요.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작은 회사에 다녔지만, 그래도 판매하는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지는 원칙이 있었거든요.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이 정말로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탓이 아닙니다' 이렇게 대꾸라도 해야죠. 그런데 입을 딱 다물고 있어요.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김앤장'을 내세워서 '소송할 테면 해봐' 이렇게 나오잖아요. 이게 제대로 된 기업의 모습인가요?"


- 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바른 판결이 내려진다면 당연히 우리가 이길 거예요. 하지만 바른 판결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임 씨는 이미 소송이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김앤장이면 당연히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죠. 하지만 저도 포기하지 않아요. 아이들만 생각하면서 끝까지 갈 거예요."

"회장과 가족들 방에 가습기 살균제 넣은 가습기 틀어 놓으라"

실제로 임성호 씨가 갈 길은 가시밭길이다. 기업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 결과도 부정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2011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6종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리고 제품을 회수했어요. 정말로 다행히 그 후에 저 같은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어린이도 알 수 있는 상식적인 결론이 뭔가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명백한 사실도 기업은 부정합니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나요?

"내게 닥친 이 모든 불행이 가습기 살균제 탓이 아니라면,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옥시 회장과 그 가족이 있는 방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넣고 가습기를 트세요. 그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임성호 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몸이 망가졌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마음도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다. 아무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대를 법에 걸고 있지만, 그 역시 미덥지 못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의 소송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송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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