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16, 신지숙]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16, 신지숙]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최예용 0 709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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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만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지숙 씨

 

베이비뉴스 2013 5월 13일  

 

아이에게는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신선한 재료를 사서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아이와 서로 뒹굴며 신나게 놀아도 주고, 햇볕이 쨍쨍한 날에는 가까운 공원으로 나들이 가는 것, 아이를 향한 엄마의 소박한 사랑이자 표현일 것이다. 어떤 엄마에게는 참으로 쉽고 흔한 사랑법, 신지숙(36) 씨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세 살배기 딸아이를 키우는 신 씨는 숨이 차서 아이를 제대로 안을 수도, 함께 뛰어놀 수도 없다. “나를 위해 건강했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후회가 들죠.” 조금만 걸어도 숨이 헐떡거리고 집에서도 산소호흡기 호스를 코에 연결해 생활해야 하는 그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다. 녹엽이 짙은 지난 22일 오후 신 씨의 집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자 현관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는 신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는 그의 코에는 산소호스가 꽂혀 있었다. 산소호스는 거실 옆 안방 문 앞에 놓인 산소발생기와 연결돼 현관 앞까지 길게 뻗었다. 신 씨가 20여 평 남짓한 집안 구석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길게 연결된 산소호스는 그녀의 생명줄이었다.

 

집안에 들어서면서 신 씨에게 샌드위치를 건네자 신 씨는 “정말 고마워요. 갑자기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는데 사러 나갈 수가 없어서…”라며 수줍게 샌드위치를 꺼내들었다. 기자가 신 씨의 집에 다다르기 30분 전, 신 씨는 기자에게 샌드위치를 사다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마트와 빵집이 있지만, 신 씨에게 있어 산소호흡기와 휠체어가 없는 외출은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씨의 산소발생기에는 숫자 ‘2’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1분에 2리터의 산소를 사용한다는 표시로 숫자가 높으면 산소발생 수치도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보통 1리터의 산소를 썼던 신 씨는 얼마 전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국회를 방문한 뒤로 상태가 더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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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지숙 씨가 사용하고 있는 산소공급 호스가 집 안 거실에 깔아놓은 유아용 매트 위에 놓여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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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8.4'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지숙 씨가 사용한 산소발생기 사용시간을 알리는 숫자다. 신 씨를 만난 지난 21일 당시 9478.4시간을 24시간으로 나눠봤더니 394일이 넘었다.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형광색 숫자 '2'는 1분에 2리터의 산소를 사용한다는 표시다. 최근 들어 산소사용량이 늘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생필품 코너에서 산 가습기살균제가 망가뜨린 삶

 

신 씨는 임신 8개월이던 2011년 5월,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했다. 임신 후기의 당연한 증상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가 낫지 않았고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기침이 정리 되지 않아 헐떡거리기 일쑤였다.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벽에 박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호흡기내과를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큰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 씨는 그러다 어느 순간 증상이 급격히 심각해져 숨을 못 쉬고 쓰러졌고 대학병원으로 옮겨 입원하게 됐다. 의사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기를 꺼내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을 들은 그날 밤, 딸이 태어났다. 신 씨는 아이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병원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신 씨의 증상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원인미상폐질환이었다. 결혼 후 라섹 수술을 한 뒤 눈이 건조해 가습기를 사용하면서 가습기살균제를 넣었던 게 화근이었다. 그는 “우리가 엄청 깔끔한 성격이라 사용한 게 아니다. 가습기살균제를 넣으면 폐렴균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단 말에 사용했다. 독성물질을 산 것도 아니고 생필품 코너에서 손쉽게 사서 썼는데 이런 엄청난 일이 생기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건강했다. 신 씨는 출산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걸린 병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환이라고 추정이 되던 시기였다. 혹시라도 아이에게 병이 옮을까 하는 걱정에 마스크를 쓰고 아이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딸아이를 낳았어도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는 아이가 뒤집기를 하던 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한참을 울어야 했다.

그렇게 약 1년을 떨어져 살다 아이와 함께 살게 된 신 씨.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 씨는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고…. 맘마 먹을 때 오물오물 하는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가 튼튼하게 잘 자라줘서 무척 고맙다고 했다. 아이의 몸무게는 현재 15kg이다.

 

신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안방에서 낮잠을 자던 아이가 깨어났다. 신 씨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걸어가 “우리 아가야 일어났어? 쉬야 많이 했네. 얼른 갈자~ 그래야 시원하지?”라며 아이의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가는 시간은 기껏 해봐야 1분 남짓. 잠깐 일어서서 방으로 이동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을 뿐인데 그의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제가 이렇게 숨이 차요. 아이가 응가했을 때는 빨리 갈아줘야 덜 지저분한데 숨은 차고 마음은 급하니까 힘들죠.” 거친 숨소리와 얕은 기침은 끊이지 않았다. 신 씨는 아이와 한글카드놀이를 하고 나서도, 아이의 옷을 입히는 중에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신 씨의 몸무게는 39~40kg 정도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입기 전에는 65kg이 나갔고 임신 당시에는 72kg까지 나갔었다. “늘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공원을 열심히 뛰어다니던 여자였다”며 웃는 신 씨. 그의 팔, 다리가 가늘게만 보였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으며 방향제, 방충제, 기타 공기 중에 분사되는 제품들은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가 모기에 물릴까 전기모기향을 사용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혹시 안 좋은 화학물질이 아이의 건강을 해칠까 싶어 생각을 접곤 한다. 하나뿐인 아이에게 조금의 아픔도, 상처도 주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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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신지숙 씨가 산소공급 호스를 코에 단 채 친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나서려는 세 살배기 딸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있다. 서너 발자국 뒤로 놓여있는 산소발생기에서 시작돼 신 씨의 코까지 연결된 산소호스는 신 씨의 생명줄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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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호스를 착용하고 있는 신지숙 씨가 할어버지와 함께 산책하러 나서는 세 살배기 딸아이의 신발 벤트를 조여주고 있다. 신 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온다. 그에게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딸 아이와 산책을 한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엄마가 건강하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신 씨는 아픈 몸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놨다. “우리집 옆 유치원 아이들이 소방훈련을 나오면 꼭 이 앞을 지나가요.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창문 밖으로 그 모습을 보고 나가겠다고 할까봐, 아이들 소리가 밖에서 들리면 서둘러 창문을 닫아요. 그 소리를 듣고 자기도 나가겠다고 제 산소호스를 끌면 저 너무 속이 상하죠. 데리고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눈물을 감추는 신 씨. 여느 엄마들처럼 배변훈련도 잘 해주고 싶지만 몸이 편치 않다보니 규칙적으로 아이 신호에 맞춰 훈련해주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게 해주고 엄마들과 육아 정보도 공유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잠자기 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어도 숨이 차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매일 밤 “오늘도 네가 있어서 엄마, 아빠는 정말 행복했어. 사랑한다.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다고. 많은 걸 해주지는 못해도 엄마의 깊은 사랑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거의 365일 산소호흡기를 사용해야 하는 그는 아이가 놀아달라며 산소호스를 잡아당겨 놀라기도 하고 아이가 신 씨의 가슴팍을 쳐 헐떡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지금의 현실이 버겁고 힘들지만, 신 씨는 “긍정에너지로 순간순간을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호흡기장애 1급 판정을 받아 이번 달부터는 월 65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다. 하루 2~3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신 씨는 “이모가 청소나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해줘서 너무나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신 씨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간단한 감기에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씨는 “앞으로의 목표는 열심히 건강하게 끝까지 살고 버텨서 정부와 기업이 책임을 다해서 피해자 지원을 하면 그때 좋은 기술로 폐 이식을 받고 건강해지는 것이다. 그때까지 내 건강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신 씨는 출산 후 폐 이식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경제적인 부담감 때문에 폐 이식을 거부했었다. 폐 이식 수술만 7000만 원, 한 달 약값만 300만 원이라는데 수술로 건강을 회복한들 빚을 갚기 위해 힘들어할 가족들을 생각하니 쉬이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버텨온 시간들이다. 신 씨는 “무엇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피해가족들을 위한 검사 등의 의료비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남편 등 피해가족들을 위한 지원이 제대로 실행돼야 한다는 것. 신 씨는 또 “피해자들이 앞으로 관련 질환이나 폐렴, 기흉 등으로 아플 때를 위한 지원도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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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고, 그리고 힘겹게 출산을 한 뒤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신지숙 씨. 아이를 마음껏 돌보지는 못하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 한다고. 인터뷰 도중 웃음이 나올 만한 얘기가 아님에도 애써 웃음을 짓는 신 씨, 그러나 신 씨의 눈동자 주변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대한민국 국민 인체실험! 누가 책임져야 옳겠습니까?’

 

가습기살균제 피해현황을 보면 2002년 6월 최초의 사망사례가 나온 이후 현재(5월 13일) 피해신고 사망 127건 등 총 401건의 피해신고사례가 접수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원에 대한 폐CT, 폐기능 검사는 물론, 추가로 접수된 피해의심사례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조사와 대책에 대해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까스로 통과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대책 예산 50억 원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가경정예산 심사결과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갈 길이 멀다”는 신 씨는 안방에서 엽서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노란색 엽서에는 아이들의 영정사진이 담긴 그림과 함께 ‘가습기살균제 피해 대한민국 국민 인체실험! 누가 책임져야 옳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뒷장에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가족들의 구제대책을 마련하도록 민원을 제기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수신처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적혀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 씨가 직접 500장의 엽서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마음 놓고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제대로 사용조차 못했다.

 

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 이걸 갖고 나가 관심 있는 분에게 전해드릴 생각이다. 불타는 의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꼭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 씨는 엄마로서의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우리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었으면 좋겠어요. 아이에서 어린이가 되는 모습을 보면 제 가슴이 벅찰 것 같거든요. 그리고 피해를 입은 엄마들 모두가 기운 냈으면 좋겠어요.”

 

신 씨와의 인터뷰가 정리될 즈음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에 나섰던 딸이 아빠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빠, 엄마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만화를 감상하며 해맑게 웃는 세 살배기. 엄마가 자기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가게에서 몇 천원에 구매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일 뿐이라는 점을 이 아이도 언젠가는 알게 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책임은 어느 누구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점까지 알아차려버리지 않을까 문뜩 걱정이 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발생 3년이 다 되도록 피해자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현실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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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갖고 놀던 사물카드를 정리하고 있는 신지숙 씨.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어줄 수는 일조차 신 씨에게는 힘들다. 금세 숨이 차오르기 때문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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