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1, 안서인] 바보엄마가 쓰는 글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1, 안서인] 바보엄마가 쓰는 글

최예용 0 7813 0 0

옥시싹싹 가습기살균제로 첫째 딸 서인이를 잃은 엄마 최지연씨는

스스로를 바보 엄마라고 부릅니다.

아이를 아프게 하고 결국 지켜주지 못한 바보라는 겁니다.

 

정부가 피해조사를 하지 않던 2012년 4월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자체조사로 서인네를 방문했습니다.

서인엄마는 10개월차 서인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만지막거리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속 서인이는 얼마나 크고 튼튼한 아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 생떼같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심정을 조사자는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4년 8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서인엄는 자발적으로 피해자모임의 총무가 되어 

진상규명과 피해대책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느라 바쁜 와중에서 모은 모임을 챙기고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을 추스립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서인이에게 더 이상 미안할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추모관사례 안서인(최지연)_페이지_1.jpg

6년 전인 2008년 5월,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첫 생일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서인입니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아이는 많이 아팠습니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엄마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이를 떠나 보낸 지 3년 뒤인 2011년 8월 31일, 정부의 역학조사가 발표되는 방송뉴스를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습니다. 뉴스는 서인이가 왜 그렇게 아팠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는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난 26일 딸을 죽음으로 이끈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 회사를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며 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다른 피해자 25명과 환자가족 80여 명 등 다른 피해자 100여 명이 고소장에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검찰청에서 돌아온 날 저녁, 엄마는 딸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래 글은 서인 엄마 최지연씨의 편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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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 살인죄 처벌요구 기자회견장에서 서인엄마 최지연씨.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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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엄마가 쓰는 글.

우리 아이는 2007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너무나도 건강했고 여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장군감이라는 얘길 빠지지 않고 들었죠. 여느 엄마와 다름없이 저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아이를 위해 좋다는 것은 다 사주고 싶었답니다.

아이가 6개월 되던 즈음 감기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하였고 의사선생님께 가습기 같은 것으로 습도 조절을 잘해 주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아마 아이 있는 집엔 거의 가습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세균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하루 거르지 않고 아이 아빠와 번갈아 가며 가습기 청소를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라는 신제품을 접합니다. 그 뒤에 적힌 문구는 '인체에 무해합니다'였습니다. 망설일 필요없이 구매하고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이를 서서히 죽게 할 거라곤 전혀 생각 못하고. 그게 우리아이를 위한 일인 줄 알고….

지금도 아이아빠와 저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손으로 아이를 죽인 심정, 아무도 모릅니다. 무지하고 못난 애비, 애미가 죄인입니다. 봄을 참 좋아했던 저는 아이가 가버린 후로 꽃피는 5월이 참 잔인하게만 느껴집니다.

중환자실에서 근 두 달 동안 생활하면서 우리 아이랑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직 쌀쌀하네... 그래 날이 좀 풀리면 퇴원할 거야", "날이 많이 풀렸네... 그래 꽃이 필 때 쯤이면 아가랑 집에 갈 거야", "꽃이 피었네... 그래 꽃이 질 때쯤이면 우리 아이 벌떡 일어날 거야", "꽃이 지네... 그래 곧 더워지겠지 더워지면 아이 안고 퇴원할 거야"라는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제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철쭉을 보면 가슴 한켠이…. 혹시 아세요? 엄마들은 아이 낳은 달에 유독 몸이 안 좋거나 아프다고 합니다. 몸이 출산 때의 고통을 기억을 하기 때문이라네요. 우리 아이는 없지만 제 가슴이, 제 몸이 우리아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서인이는 생일이 기일입니다. 참 운명의 장난같죠? 2008년 5월 24일 그날도 원래 건강했었다면 돌잔치를 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인이를 만나러 갈 땐 꼭 케이크를 사갑니다. 올해는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우유까지.

"엄마! 이제 초등학생이야 웬 우유~ !"하며 슬픈 모습 보이지 않으려 일부러 장난치듯 말하니 그새 콧잔등이 시큰해지셔서 또 눈물을 보이시네요. 그래도 잊지 않고 챙겨 주시니 어찌나 감사하던지. 저도 한 아이 엄마이기 전에 부모님의 딸이기에 웬만하면 걱정 끼치는 모습 안 보여드리려 하는데 이럴 땐 쉽지가 않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케이크를 들고 아이가 있는 곳에 갔습니다.

"아가야 잘 지내고 있지? 엄마 왔어... 춥지는 않아?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만지고 싶고 보고 싶어.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는 바보야. 아가야, 엄마와 너를 헤어지게 한 못된 사람들한테 꼭 사과 받아낼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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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품전시장의 서인이 사진
ⓒ 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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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장을 접수하던 날, 서인 엄마는 누나의 얼굴도 모르는 동생과 아빠의 손을 잡고 검찰청 앞 기자회견장에 나왔습니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도중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고 동생은 가만히 다가와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엄마는 광화문에서 수십 일 동안 단식하며 사고의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도 세월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재요, 참사이기 때문입니다.

긴 가을 장마가 끝나자 매미소리가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높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습니다. 세월호 유족 아빠와 가습기 살균제 유족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2014년 10월 26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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