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9 최민술] 가정과 집안의 붕괴, 아내와 아이 잃고 세번 자살시도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29 최민술] 가정과 집안의 붕괴, 아내와 아이 잃고 세번 자살시도

최예용 0 9773 0 0


최민술.jpg

아내와 아이 잃고 3번 자살 시도, 비극의 원인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가정과 집안의 붕괴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

 

프레시안 2014-01-15  

 

 

인천에 사는 노총각 최민술 씨는 36세에 장가를 갔다. 형수와 알고 지내는 서울 아가씨를 잠깐씩 보았다. 호감을 가지고 있던 터에 형수에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서 만남을 시작했다. 4년 연애 끝에, 2006년 결혼을 했다. 여느 부부처럼 알콩달콩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2년 후인 2008년 10월, 건강한 사내아이 연우가 태어났다.

아내는 다른 산모들처럼 산후조리원에서 한 달 동안 몸조리를 한 뒤 집으로 왔다. 이때가 환절기여서 산모와 아기를 위해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마련했다. 가습기를 거실에 놓고 아내와 아기는 거실에서 생활했다. 최 씨는 안방에서 따로 잤다. 가습기를 사용한 지 한 달 뒤부터 아기가 잔기침을 했다. 부부는 감기 기침으로 생각했다. 백일을 지나면서 잔기침을 하면 멈추지 않고 10분, 15분씩 했다. 그동안 찾아간 동네병원에서는 감기약 처방만 해주었다. 아이가 호흡곤란 증상이 있자, 그제야 동네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서둘러 집에서 가까운 인천적십자병원을 갔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 폐렴 같다며 더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권유했다.

태어난 지 161일째, 아이는 하늘나라로

그래서 부부는 그날 바로 인천 길병원으로 갔다. 길병원 의사는 폐렴이 좀 심해서 일주일 정도 입원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 다음날, 담당 의사는 힘들 것 같다며 최 씨를 불러 아기 상태에 대해 알려주었다. 원인 모를 폐렴인데 폐가 굳어 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연우는 다음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중환자실로 옮긴 지 하루 만에 원인도 모른 채 하늘나라로 갔다. 세상에 나온 지 161일째 되던 2009년 4월 3일이었다.

삼일장으로 치른 아들의 장례 다음 날, 아내가 쓰러졌다. 가족들은 심신이 허약해서 쓰러진 줄로만 알았다. 며칠 후 아내는 몸을 추스르고 연우를 보러 봉안당에 갔다. 아기를 잃은 슬픔에 아내는 반나절을 통곡하며 울었다. 그날이 부부가 아기의 유골을 본 마지막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최 씨가 아기의 짐을 치우는 사이 아내가 또 쓰러졌다.

최민술 씨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프게 되어 가족 세 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1.jpg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지난 2011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아내마저 아들과 같은 증상으로 쓰러져

부부는 아기가 진료를 갔던 인천적십자병원으로 갔다. 아기를 잃고 몸이 약해져 감기에 옮은 줄만 알고 있었다. 사실 아내는 아기가 처음 병원에 다닐 무렵부터 몸에 이상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아이가 매우 아프니까 몸에 이상을 느꼈어도 내색을 하지 못했다. 적십자병원 의사는 아내가 결핵과 폐렴이 같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일주일간 입원해서 결핵약 처방과 폐렴 검진을 했다. 호흡곤란 상태는 더 나빠졌다. 병원에서는 아내가 호전되지 않자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길병원이 집과 가장 가까웠지만 최 씨는 그 병원에서 아기를 잃은 아픔이 있어 다른 병원에 가자고 했다. 부부는 인하대학교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내의 상태를 본 의료진은 결핵도 아니고 폐렴도 아닌, 원인 모를 폐 손상이라고 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했는지, 최근에 페인트 공사를 했는지 등을 물었다. 새 집도 아니고, 페인트 같은 공사를 한 적이 없다고 답변해 주었다. 의료진은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나이가 젊으니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최 씨는 아내마저 잃을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폐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국내에는 아직 호흡장치를 완벽하게 갖춘 응급차량이 없어 이동하는 중에 사망할 수 있다고 의료진은 말했다. 그래서 병원을 옮기지도 못했다.

부부 몰래 강물에 뿌려진 아기의 유골

아내는 폐 조직검사를 하면서 마취도 못 했다고 한다. 폐 손상으로 인해 마취제가 호흡 정지를 유발할 수 있어 마취 없이 기관지에 기계장치를 넣어 조직을 떼어냈다. 옆에서 아내를 잡아주던 최 씨는 힘들어하는 아내의 고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헛수고였다. 마지막 4일 혼수상태에 있다가 결국 5월 11일 사망했다. 아들 현우가 하늘나라로 간 지 35일 뒤였다.

아내가 죽기 일주일 전, 집안 식구들은 아내가 호전되지 않자 미신이라도 붙잡으려 했다. 죽은 아기의 망령이 엄마를 데려가려고 하니까 최 씨에게 아기 유골을 흐르는 물에 뿌려 주라고 했다. 집안 식구들은 봉안당에 있던 아기의 유골을 가져다 최 씨 몰래 강물에 뿌렸다. 집안 식구들은 최 씨에게 알려주면 매일 갈 거라며 유골을 뿌린 장소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아내가 죽고 6개월 후에야 처음 가봤다고 한다. 최 씨는 지금도 아이의 유골을 강물에 뿌려 보낸 것을 생각하면 원통하다고 한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봉안함은 아기가 있던 옆 칸에 모셨다. 아내 봉안당에 놓인 사진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사진을 끼워 놓지도 못했다.

아내와 아이의 죽음 이후, 처가와 불화

아내가 인하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최 씨 처가에서도 딸이 아픈 이유가 아기 귀신이 엄마에게 붙어 있기 때문이니 굿을 하자고 했다. 아내는 천주교 신자였다. 자기가 죽으면 위령제 굿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절대 굿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최 씨는 처가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어 굿을 해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처가에서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끊고, 무당이 주는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무당의 말을 전해 들은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굿을 하려던 마음을 바꿨다.

처가 쪽에 아내가 죽을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결국 세상을 떠나자 모든 화살이 그에게 향했다. 그 과정에서 처가와 불화가 생겼다. "500만 원이 아까워서 굿을 안 한 거다. 그래서 죽은 거다"라며 최 씨를 몰아붙였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면서 상속 문제도 불거졌다. 아이가 먼저 사망하고 아내가 뒤에 사망하면서 최 씨 재산을 처가에 분배하는 상속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처가 쪽에서 법적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처가와의 사이가 더욱 나빠졌다. 그렇게 재산을 분배하고 지금까지 처가와는 얼굴 한 번 못 봤다고 한다.

3번의 자살 시도, 3년 뒤에야 아기와 아내 짐 정리

최 씨는 아기와 아내마저 잃은 뒤 텅 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제들 집과 여관 생활을 전전하다가 가끔 집에 가면 아기와 아내 생각이 나 얼마 있지 못하고, 또 나오고 그렇게 6개월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3차례 실려 갔다. 하루아침에 가정이 파탄 나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도저히 못 살겠다며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가고, 손목을 긋고, 약을 먹는 등 3번의 자살시도를 했다. 그래서 최 씨 집안에서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며 최 씨 친구와 친한 후배를 24시간 그의 옆에 붙여 놓았다. 최 씨는 일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가 있는 납골당을 갔다. 지금도 너무 그리워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간다고 한다.

이사를 하라고 주변 사람들이 최 씨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기하고 함께한 흔적 때문에 3년 동안 짐에 손을 하나도 안 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년이 지난 뒤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했다고 한다. "3년 탈상의 의미냐?"고 필자가 물어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이 그렇게 갔다"고 대답한다.

일주일마다 며느리의 봉안당에 가는 시어머니

최 씨는 아기와 아내가 사망한 2년 후에야 자신의 가정을 파탄 나게 한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알게 됐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아기 유골을 강물에 뿌리고 굿을 해서라도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던 것이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누구라도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는 본능에서 벌어진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없었으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자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에 책임이 있다.

최 씨는 처가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다고 한다. 아내가 생전에 마지막 부탁이라며 처남을 부탁한다고 했다.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있는 것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판다. 처가에서는 이 비극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일어난 일인지 모를 수 있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판정이 발표되면 처남에게 판정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한다. 아픈 서로의 상처들이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더라도, 판정결과 후에 양쪽 집안 사이가 조금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내는 생전에 시어머니에게 참 잘하는 며느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며느리를 보러 지금도 봉안당을 찾아간다고 한다.

지난해 8월 31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추모제가 처음으로 열렸다. 특히 영유아가 사망한 가족들은 이들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많은 아기들의 유골이 바다나 강, 그리고 산에 뿌려졌다고 하니 이를 뿌린 부모들의 심정을 그 누가 얼마만큼 헤아릴 수 있으랴.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