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6, 16개월 연수] 손녀 장례식을 치른 할머니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6, 16개월 연수] 손녀 장례식을 치른 할머니

최예용 0 796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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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선(57·여) 씨는 요즘도 1년 전 세상을 떠난 손녀 연수(가명) 생각을 하면서 눈을 뜬다. 그리고 잠시 긴 호흡을 내쉬며 절망스러운 현실을 맞는다. 2009년 1월 태어난 연수는 16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던 김 씨는 연수를 끼고 살았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더 예쁘고 귀했다.

김화선 씨는 최근 열린 한 기자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녀를 잃은 슬픔에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강북구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손녀를 잃은 슬픔에 자식을 잃은 아들 내외에 대한 애절한 마음까지 더해진 이 할머니는 덧붙였다.

"연수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

16개월 손녀, 중환자실에서 눈도 못 떠보고 사망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아무도 할머니로 보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김화선 씨였지만 첫 손녀 연수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 자랑하는 모습은 손녀 자랑에 푹 빠진 할머니였다. 그러나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다 집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뽀뽀를 해주던" 집 안의 천사 연수는 지난 2010년 6월 세상을 떠났다.

- 연수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요?

"연수는 지나가는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예뻤던 데다 아주 순둥이라서 집안의 보물이었어요. 잔병치레 한 번 없이 건강하고 통통한 아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기침을 하는 거예요. 병원을 네 군데나 전전했는데 다들 원인을 몰라요. 막상 앞에서 애가 기침을 안 하니까 의사들은 괜찮다고만 하더라고요. 2010년 5월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 갔는데 폐렴이라고 하더군요.

5월 9일에 입원했는데 12일에 상태가 안 좋아져서 중환자실로 옮겼어요. 폐 섬유화가 왔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죠."


고통의 나날이었다. 연수는 이유식을 넘기기는커녕 눈도 뜨지 못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아이를 보며 며느리는 밥 한술도 뜨지 못한 채 날을 지새웠다. 김 씨도 마찬가지였다. 연수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나서는 하루에 단 두 번의 면회만 허락됐다. 며느리는 계속해서 병원에서 대기하며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불교도인 김 씨는 절을 두세 군데씩 다니며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어머니,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그 조그만 아기가 엄마 없이 혼자 버티는 거잖아요. 하루 두 번 면회 시간에 겨우 연수를 보러 갈 때면 억장이 무너졌어요. 그 작은 몸에 무슨 줄이 그렇게 많이 연결돼 있는지…. 연수 몸에 연결된 줄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그걸 한 번 보고 나면 정말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그러던 중 6월 6일, 남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뛰어갔을 때 연수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며느리가 싸늘하게 식은 연수를 안은 채 오열하고 있었다. 시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잃고 통곡하는 며느리를 보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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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선 씨가 늘 가지고 다니는 연수의 돌사진. ⓒ프레시안(남빛나라)

 

손녀 장례식을 치른 할머니

"아기들은 빨리 크잖아요. 고작 한 달 정도 병원에 있었는데 그 사이에 키가 컸더라고요."

그 와중에 몸이
자란 듯한 아이의 차갑게 식은 몸을 만지며 할머니 김화선 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 첫 아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온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들 내외 때문에 슬픈 티도 많이 못 냈겠어요.

"연수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키가 170센티미터인 며느리의 몸무게가 40킬로그램으로 줄었어요. 뼈밖에 안 남았는데 도무지 뭘 먹지를 못해요. 아들도 마찬가지죠. '나는 아빠 소리 한 번도 못 들어보고 애를 보냈다'고 아들이 울더군요. 며느리랑 아들은 연수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자기 딸이 눈 뜬 모습 한 번을 못 봤어요. 하루 두 번 눈 감고 누워 있는 모습만 본 거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우울증을 앓았어요. 나보다 오래 산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그런데 그 어린 것이 저보다 먼저 갔으니,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벽제 화장터에 가서 연수를 보내고 오는데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내는 장례식을 연수 때문에 치렀으니…. 정말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손녀 연수의 장례식을 회상하는 김 씨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사준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가 세상을 떠난 후 김화선 씨는 아들
부부에게 따로 살자고 말했다. "너희와 함께 살아서 기쁨도 두 배였지만 연수가 떠나고 나니 슬픔도 두 배"라고 말했다. 아들 부부도 연수를 보낸 상처 때문에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싸움이 잦아졌다. 집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아들 부부는 둘째 아이를 가졌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약 한 달 전인 2011년
여름, 아들 부부와 텔레비전을 보던 중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임산부와 영·유아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한 '원인 미상의 폐 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 김 씨 부부와 아들 부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봤다.

- 아들 부부에게 연수가 사망한 이유가 가습기 살균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꺼냈나요?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습기 살균제는 저와 남편이 사서 아들 부부에게 쓰라고 줬던 거예요. 가습기 세균 때문에 아이가 병에 걸릴까 봐 사줬던 것인데…. 정말 죄스러워서…."

자기 손으로 사준 가습기 살균제가 손녀를 죽였다. 김 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 씨 가족이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 그때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알리는데 나섰나요?

"직접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어요. 피해 신고를 하려면 사망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부모만 뗄 수 있다는 거예요. 싫다는 아들을 채근해 연수의 사망 진단서를 떼 오게 했지요. 이 사건을 꼭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 회견에도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부부는 '몸도 안 좋은데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런다고 연수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느냐'며 만류해요."

그렇지만 김 씨는 손녀 연수를 잊을 수 없었다. 기업 측의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채 또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연수를 보낼 수는 없었다.

2011년 8월, 보건
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시 원인 미상 폐 손상 질환에 걸릴 확률이 47.3배 높아진다"는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1월에는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의 유독성이 밝혀졌다. 2012년 9월에는 환경부가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CMIT/MIT의 독성도 인정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 중 단 한 곳도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수의 죽음이 남긴 상처는 여전하다. 며느리는 둘째 아이가
크레파스를 조금만 집어 먹어도 응급실을 들먹일 정도로 아이 건강에 예민하다. 김 씨 역시 아이가 기침하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지난겨울에는 감기에 걸릴세라 겨우내 도라지, 대추 등을 달여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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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폐 질환을 유발해 약 1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프레시안(남빛나라)

 

"진영 장관을 만나긴 했는데…"

그나마 김화선 씨의 마음에 아주 작은 위안이나마 준 것은, 최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난 일이다. 김 씨와 인터뷰 하기 이틀 전인 24일,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이 밝혀진 지 2년 만에야 처음으로 피해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날 피해자는 진영 장관에게 가습기 살균제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했는지 토로했다. 이 자리에 그녀도 참석했다.

- 길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그날 취재진 없이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요?

"일단 투병 중인 피해자의 경제적 고통이 너무 크니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피해자 중 특히 폐 이식 수술을 한 피해자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폐 이식 수술 비용은 평균 1억 원 정도다. 수술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약은 대개 국민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피해자 대부분이 한 달에 약 200만~300만 원 정도의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폐 손상 조사 위원회 재가동도 요구했습니다." (☞관련 기사 : "가습기 연쇄 살인, 복지부 진상 규명은커녕 훼방만…")

"기업 측에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적용하고, 기업 측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게 해달라는 뜻도 전했습니다."

- "가슴 아프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 진영 장관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사실 늘 듣던 말이죠. 확실하게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조치하겠다' 이야기한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났다는 것에서 아주 조그만 희망을 봤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장관 한 번 보기 어려우니까 기죽을 법도 하잖아요. 그런데 피해자 모두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아서 그런지 악에 받쳐서, 일목요연하게 말들도 잘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김화선 씨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사람과 자식을 잃은 데다 아내까지 투병 중인 사람 등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할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벽을 보고 소리치는 심정으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해온 피해자들에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소중한 자리였으니까.

"기업의 대국민 사과가 최우선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참상을 알리는 데 온 힘을 다 하고 있는 김화선 씨지만, 기업 측을 상대로 한
소송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길고 긴 소송이 가족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할 것 같아서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묻어두는 것이 더 편할 법한 기억을 계속해서 끄집어내며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일까?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분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딸을 잃고 아내는 폐 이식 수술 후 투병 중인 피해자가 말하더군요. 아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차라리 먼저 간 딸애가 부럽다'고 한다고요. 부인마저 잃을지 모르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이제까지 밝혀진 이런 피해 사례만 300건이 넘고 그 중 사망 사례는 112건이에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회사들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합니다."

(지난 21일 4건이 추가 접수되어 사망 사례는 116건으로 증가했다. <편집자>)

김 씨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요새 오래간만에 가습기 살균제 기사가 많이 나고 있어요. 이럴 때 빨리 해결이 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사람은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김화선 씨의 말대로, 사람들은 정말 금방 잊는다. 그러나 그녀가 환하게 웃는 연수의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차갑게 식은 손녀 손의 촉감을 잊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13년 4월 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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