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5, 윤지영] 못 이룬 "두번째 인생"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을 사용하다 2011년 4월 7개월된 아기를 강제출산하고 폐이식수술을 받은 후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인터넷카페의 회원으로 대책활동에 참여하다 2012년1월11일 사망한 윤지영씨의 카페 닉네임이 “두번째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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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인.생."
'산모 환자'에서 '산모 사망'으로 바뀐 65번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2012년 1월12일 환경보건시민센터 보고서
2011년 12월 12일 이른 오후 환경보건시민센터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딸애가 아이를 가진뒤 갑자기 숨쉬기가 어렵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위험하다고 하여 강제로 아이를 출산했다오. 7개월째 였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의 폐를 받아 이식수술까지 했는데 지금도 계속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사경을 헤메고 있는 중이오. 질병관리본분가에서 가습기살균제때문이라고 했다는데 어찌 하면 좋겠소?”
전화를 건 이의 목소리가 비틀거렸다. 딸아이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계속 술만 마신다는 친정아버지 윤모씨였다. 윤모씨가 전한 이야기는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165번 ‘산모 환자’로 분류되어 기록됐다.
윤모씨의 딸은 3살과 9개월짜리 두 아이의 엄마 윤지영씨다. 1981년생으로 올해 만으로 31살이다. 둘째를 임신한지 6개월째 되는 2011년 3월초 어느날,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윤지영씨는 길에서 쓰러졌다.
숨쉬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네 아는 분이 부축해주어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즈음 그녀는 숨이 가뿌다는 소리를 남편 이은석씨에게 자주 했었다. 임신증상이려니 했는데 길에서 쓰러지기까지 하여 동네 병원을 찾았다. X-ray를 살피던 의사는 인근 대학병원인 서울아산병원으로 바로 가보라고 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주일정도 입원하여 조금 나아져서 퇴원했다. 그러다 며칠뒤 또 나빠졌다.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4월18일 7개월짜리 아이를 강제로 출산시켰다. 아이와 산모를 모두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 출산 후 산모 윤씨의 증상이 더 나빠지자 병원에서 폐이식을 권했다.
남편 이씨가 고민끝에 전화로 신청했다. 운좋게도 신청한지 3일만에 폐기증자가 나타났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5월7일이었다. 두달여간 입원한 후 7월초 퇴원했다.
<2012년 1월11일 사망한 폐이식수술환자 산모 윤지영씨 가족이 1년여간 사용해 온
‘옥시씩삭 가습기당번 300ml’ 가습기살균제 사진>
퇴원후에도 흐흡곤란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고열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작년 11월10일에는 아예 병원에 입원했다. 보름 뒤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후로 40여일이 지난 1월8일 일요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다.” 한달여전인 작년12월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윤씨는 일요일을 넘겼다. 그리고 월요일도, 화요일도 버텼다. 그리고 수요일 오후 4시경 윤씨의 호흡을 이어주던 계기가 “삐이”소리를 내며 호흡이 끊어졌음을 알렸다. 남편 이씨가 시계를 보니 20분을 막 가리키고 있었다. “병원에서 어렵다고 했던 날부터 잘 버텨와서 조금 더 있어 줄걸로 생각했어요” 바싹 마른 입술에 하얀 백태가 앉은 이씨가 허공을 처다보며 말한다.
폐이식수술을 받고 투병하다 숨진 윤지영씨의 장례식장에서 조화를 살펴보고 있다?
폐이식수술을 받은 후 7월초 퇴원하여 집에 있는데 질병관리본부 조사관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것저것 묻고 갔다. 가습기를 사용하는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는지도 물었다. 그후 8월31일 저녁 뉴스를 보면서 이씨는 왜 아이엄마가 저 지경이 되었는지 알게되었다. 이씨는 2010년 3월경부터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를 같이 사용해왔다.
‘옥시싹싹’이란 제품을 동네 홈플러스에서 구입했다. 2-3주마다 1-2통씩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300ml짜리 작은통이다. 가습기는 주로 밤에 물이 떨어졌고 그때마다 이씨가 씽크대에서 가습기를 헹구고 청소한 다음 통에 물을 채운 후 가습기살균제를 뚜껑에 따라서 부었다.
식구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잤고 문가의 서랍장위에 가습기가 있었다. 가습기쪽 가장 가까이 아빠가 주로 잤고 옆에 엄마 그리고 첫째가 끝에서 잤다. 아빠와 아이는 아직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알 수 없다. 가정주부인 엄마는 임신중이라 매일 집에 있으면서 가습기를 쏘였다.
폐이식수술을 하면서 1억원을 훌쩍 넘는 경비가 발생했다. 별 수가 없어 전세집을 빼 짐을 처가댁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가습기살균제 통들이 버려졌다. 가습기는 지금도 처가댁 어딘가 처박혀 있을 것이다. 물건들을 카드로 구입하여 가습기살균제 구입영수증을 찾아두었다. 작년 말 입원한뒤로 병원비가 4천만원 넘게 나왔다.
이씨는 감당할 도리가 없다. 처가에서 어떻게 해주실거라고 생각한다. 이씨는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운다. 그렇지만 집안에서는 안피운다. 집에 오면 한대 정도 집 밖에서 피울 뿐이다. 약을 싫어해 거의 먹어본 일이 없다. 동갑내기 아이엄마도 건강했다.
12일 정오경 두 남자가 아산병원 장례식장 지하1층 3호에 들어섰다. 안모씨와이모씨다. 작년 2월과 5월 아내를 잃은 사람들이다.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세퓨’라는 이름의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것이 이 두 남자의 공통점이다. 잠시 후 세 남자가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눈발이 날린다. “작년 2월 집사람을 떠나 보냈을 때도 눈이 왔었는데…”안씨가 중얼거린다. “옆에서 지켜줬어?” 직업군인인 이모씨가 검은 상복을 입은 이씨에게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씨. 안모씨는 어제 아내의 위패를 모신 충북의 한 암자를 다녀와 폭음했다.
이모씨도 어제 밤 늦게 만취한 상태에서 윤지영씨의 부고를 들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인터넷 카페에서 ‘눈물’이란 아이디를 가진 이모씨의 아내가 작년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6명의 산모들이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서울, 수원, 청주, 광주에서 올라왔던 산모 4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2명이 폐이식을 통해 살아남았었는데 윤씨가 어제 사망하여 이제 대전에 사는 산모 한 사람만 이 세상에 남았다. 세상을 떠난 윤지영씨도 생전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인터넷 카페에서 ‘두번째 인생’이란 아이디로 대책활동에 참여해왔다.
눈발이 간간히 날리는 가운데 세 남자는 말없이 담배를 연거푸 피웠다. 영안실3호 입구에 조화가 새로 도착했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一同’가습기살균제 피해사례 165번의 분류가 ‘산모 환자’에서 ‘산모 사망’으로 바뀌었다.
글,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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