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22, 두살 유찬이] "어머, 내가 범인이네"
돌 지난 아기의 싸늘한 주검, "살인자는 바로 저들인데…"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 2살 아들 잃은 부부
프레시안 2013년 3월28일
유찬이의 백일 사진은 사랑스러웠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유찬이의 아빠 김성국(가명) 씨와 엄마 민주란(가명) 씨는 둘째 아들 유찬이의 성장 앨범을 백일 사진으로 시작할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다. 돌 사진이 뒷장을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몇 개의 앨범을 더 만들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찬이는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민주란 씨는 아들이 죽고 나서 사진관에서 성장 앨범을 받았다. 백일 사진만 덩그러니 실린 앨범. 세상을 떠난 작고 작은 아기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무너졌다. 19일 오후 대전에서 유찬이의 부모를 만났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죽은 아들의 이야기를 힘겹게 풀어나갔다.
▲ 유찬이의 100일 사진. ⓒ프레시안(남빛나라)
"비누나 치약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잖아요?"
유찬이가 죽고 4년이 지난 2011년 여름, '원인 미상 급성 폐 질환'의 원인이 밝혀졌다. 가습기 살균제! 뉴스를 보던 민주란 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유찬이를 치료한 의사는 분명히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말했었다. 설거지하다가도 멍하니 서서 대체 무슨 바이러스가 금쪽같은 아들을 죽였을지 생각했던 그녀였다.
- 2011년에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의 물질이라고 밝혀졌죠.
민주란 :저는 그전인 2010년부터 여러 산모들이 원인 미상의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유찬이를 생각했어요. 증세가 똑같았으니까요. '이제야 원인이 밝혀지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김성국 :가습기 살균제가 유해 물질이라고 발표되자 집사람은 '바로 저거야' 하며 확신했지만 저는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어요. 꼭 비누나 치약 때문에 아기가 죽었다는 말처럼 다가와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비누, 치약 때문에 사람이 죽지는 않잖아요.
민주란 :저는 뉴스를 보자마자 알았어요. 2006년 가을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썼으니까요. '내 손으로 넣었는데…내가 아기를 죽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뉴스를 보고 나서 이들 부부는 천안에서 다른 피해 가족과 만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김성국 씨 역시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증세가 똑같아서" 하고 확신했다.
돌도 안 된 아기의 죽음, 의사는 "치명적 바이러스 탓!"
이들 부부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운 기억을 끄집어냈다.
- 이제까지 제가 접한 피해 사례 중 가장 어린 피해자네요. 너무 어린아이라 더욱 망연자실했을 것 같습니다.
유찬이 역시 여느 피해자처럼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2007년 1월에 동네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눈에 아기의 상태는 심각했지만 유찬이를 진료한 의사는 원인을 몰랐다.
민주란 :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기 기침 소리가 무슨 노인 기침 소리처럼 걸걸했어요. 몸무게는 3킬로그램이 빠졌고요. 작은 아이가 그렇게 야위었으니 기력이 없어서 젖병도 제대로 빨지 못했죠. 동네 병원에서 안 되겠다 싶어서 대전 을지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산소 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졌어요. 그러다 응급 처치를 하니 다시 괜찮아지고…. 결국 2007년 2월에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간질성 폐 질환' 진단을 내린 서울대학교병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이런 아기들이 너무 많아서 의사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원인은 모르겠는데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나 보던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의사는 "이런 아기들은 대개 예후가 아주 좋지 않다"며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하라는 말을 대신했다.
민주란 :치료제는 스테로이드제뿐이라고 하더군요.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니 부작용으로 다모증이 발생했어요. 유찬이 몸에 털이 나니까 당시 5살이었던 첫째 딸이 놀라서 유찬이가 왜 저러냐며 겁을 먹더라고요.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이상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돌려막기 식으로 겨우겨우 이 약 저 약을 쓰다가 결국 (2007년) 6월 7일 새벽에….
"첫째 아이 '유리'의 이름도 바꿨지만…"
자식을 잃은 마음을 100퍼센트 표현할 수단은 없다. 민주란 씨는 종일 눈물이 흘러서 어디에 가나 손수건을 꼭 가지고 다녔다. 김성국 씨의 억장도 무너졌다.
- 당시 첫째 아이가 어렸는데 큰 충격을 받았겠네요.
민주란 :5살짜리 애 머리에 원형 탈모가 생겼어요. 그리고 제가 종일 우니까 애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엄마 눈부터 보더군요. 엄마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보는 거죠.
김성국 :유찬이가 가고 나서 첫째 아이 이름도 바꿨습니다. 원래는 '유리'였는데 유리가 깨지기 쉽잖아요. 뭔가 약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혹시나 또 잘못될까 봐 개명했죠.
부부는 유찬이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민 씨는 유찬이를 죽인 바이러스가 집 안에 남아 있을까 봐 집에 있는 물건을 닦고 또 닦았다. 온 가족이 비누로 손을 닦고 나서 손 세정제로 다시 한 번 닦았다. 김 씨는 집에 들어오기 전에 손을 소독하고자 아예 자동차에 손 세정제를 놓고 다닐 정도였다.
유찬이의 죽음에 갇힌 채 부부의 삶은 그래도 계속됐다.
- 2009년에 셋째 아이를 낳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찬이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라 셋째 아이를 낳기 두려웠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나요?
민주란 :사실 우리 막내 애는 첫째 아이 때문에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째 아이가 유찬이를 정말 예뻐했거든요. 어느 날 첫째 애가 혼자 거실에서 놀고 있는 뒷모습을 보니 너무 외로워 보이더군요. 그리고 동네 할머니들이 아이에게 "엄마한테 동생 낳아 달라고 하렴" 이렇게 말할 때 아이 표정이….
▲ 서울 광화문 광장 해치마당에서 25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진 광화문 전시회'에 전시된 가습기 살균제. 전시회는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된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옥시, 차라리 인간 대상으로 실험하지?"
민주란 씨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유찬이가 살아 있었으면 몇 살이 됐을지 생각한다. 살아 있었다면 올해 초등학생이 됐을 아들이다. 부부는 영원히 초등학생이 될 수 없는 아들을 위해서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아들을 죽인 진짜 살인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이다.
유찬이가 썼던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이 가습기 살균제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이다. 이 기업은 '옥시크린' '물 먹는 하마' '데톨' '개비스콘' 등으로 유명한 영국계 초국적 기업 레킷벤키저의 한국 법인이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로 폐 질환의 원인이 확인되었는데도, 옥시레킷벤키저를 포함한 단 한 곳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 현재 다른 피해자(25가구)와 함께 단체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요?
김성국 : 네. 피해자와 가족을 포함한 79명이 원고입니다. 지난 2012년 8월 말에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 업체 관계자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을 통해 소를 제기한 상태입니다.
소송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한 보따리의 서류를 뒤적였다. 기업과 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잠깐씩 아내의 말을 거들던 그의 말이 빨라졌다. 이 단체 소송에서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국내 최대 법률 사무소 '김앤장'을 앞세워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김 씨가 보기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발버둥이다.
2011년 11월 11일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흡입 독성 실험과 전문가 검토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실험용 쥐에게 세 종류의 살균제를 한 달간 흡입하도록 한 결과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제품을 흡입한 쥐의 폐 주변에 염증이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폐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의 관계자"가 "고객의 안전을 보장하고 의심 사항에 대한 명확한 규명을 돕는다"며 "제3의 기관에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과학적이고 정확한 방법으로 추가 심층 실험을 의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성국 :저 제조업체가 바로 옥시라고 들었어요. 정말로 책임질 마음이 있다면 '제3의 기관'을 운운할까요? 재판 과정에서 당연히 기업 측은 정말 가습기로 인한 피해가 맞느냐고 주장할 겁니다.
민주란 :저는 그 사람들 코에다 가습기 살균제를 들이대고 싶어요. 기업 측은 지금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실험을 부정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길 원하는 건가요? 누구를 대상으로 하나요? 이미 피해자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한 것 아니었나요?
2011년 전까지 학계는 원인 규명하느라 고심
김성국 씨는 보고서 두 개를 내밀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제품 수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꾸준히 '원인 미상 폐 질환'이 학계에서 논란이 되어왔다는 증거였다.
지난 2009년 발표된 보고서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발병률은 10만 명당 0.36명으로 소아에서는 드물게 발병하는 질환이나 본 저자들은 2006년 3월부터 6월까지 서울 2개 기관에서만 15명의 환자를 경험하였으며"라고 명시돼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된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을 보면 "본 연구에서는 15명의 급성 간질성 폐렴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존군과 사망군을 비교하여 예후인자를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인자는 없었는데"라고 나와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판매가 중지되고 나서 1990년대 후반부터 매년 보고되던 '원인 미상 간질성 폐 질환 피해 신규 사례'는 더는 접수되지 않았다. 그는 확률과 통계를 믿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면 도저히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기업 측은 무엇을 믿고 이런 증거를 부정하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다.
5년 이상이 걸릴 싸움, 정부는 뭐하나?
기업 측에 책임을 묻는 일은 정부의 몫이지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이제까지 발로 뛴 쪽은 늘 피해자였다. 망설이다 피해자에게 건네기도 민망한 질문을 꺼냈다.
- 대법원까지 간다면 소송이 끝나기까지 5년, 어쩌면 그 이상을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여론의 관심도 잦아들고 있는데 무언가 계획은 없으신가요?
김성국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가서 시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충청북도 청원군에 있는 질병관리본부까지 가서 시위하면 뭐 합니까? 어차피 지방에 있어서 기자들도 오지 않을 테데…. 또 어차피 저희는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
김 씨가 질병관리본부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는 질병관리 본부를 놓고서 한 마디로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11년 10월께 질병관리본부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하고 있으니 유찬이의 의무 기록 열람에 동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에 응했으나 12월경 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유찬이 사례가 피해 사례로 인정됐는지 궁금하던 차에 같은 내용의 전화를 또 받은 것이다.
김성국 :'저번에도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대체 두 달 동안 뭘 했느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전화한 사람이 '아, 그래요?' 하면서 옆 사람에게 뭐라고 묻더군요. 의무 기록 열람에 이미 동의했는데 다른 사람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 거죠. 결국 제가 직접 지난해 3월에 정보공개센터를 통해 유찬이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로 공식 인정됐는지 문의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제가 질병관리본부에 바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요구입니까? 그런데 정보공개센터를 통해 진행한 정보 공개 청구 답변서에도 이런 뻔한 대답만 쓰여 있더군요. '질병관리본부는 귀하께서 접수하신 폐 손상 의심 사례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사의 결과는 4월 말 이후 도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 부부는 아직도 질병관리본부가 유찬이 사례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로 인정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이들 부부처럼 정부로부터 아무 정보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11년부터 직접 논문과 보고서를 찾고 정부 기관에 문의해온 김성국 씨는 지친 목소리로 "사실 이제는 정부가 방해나 안 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민주란 씨의 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 프로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아가야 보고 있니? 밝히자!"
이들 부부는 억울하게 죽은 둘째 아들 유찬이의 한을 풀고자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이제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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