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4, 안성우] 어느 엄마와 아기를 위한 진혼제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4, 안성우] 어느 엄마와 아기를 위한 진혼제

최예용 0 8590 0 0

 

안성우.jpg

 

벌써 5년이 다되어 간다.

 

아직도 생생하다.

소중한 사람이 아파하기 시작한 날이, 정말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다.

징후도 없었다. 그냥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니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한다.

 

집에서 호흡곤란으로 구급차로 병원에 간지 일주 만에 그렇게 내 눈 앞에서 눈을 감았다.

 

뱃속의 아이마저도 구하지 못했다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밖에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의사 와 간호사만 보였다.

뭐라도 말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과 폐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 했다는 그 말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살아야 하니까. 남기고 간 아들이 있으니까.

 

헌데 어느 날 갑자기 산모들이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뉴스를 봤다.

뭐지?

 

나의 아내와 증상이 비슷하다.

그렇게 흘려 보냈다.

뉴스에 나온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 이라고.

사용자는 신고 하란다.

 

뒤졌다. 주방에서 살균제가 보였다.

평소에 비염이 있어 아내를 위해 사다 준 그 물건이….

 

비참했다.

죽고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안전하다고 했다.

기업에서 안전하다고 했다.

정부에서 이상 없으니 판매하라고 했다.

 

헌데 사람이 죽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 가족이 내 아내가 아이의 엄마가………

이제는 볼 수가 없다.

목소리도 얼굴도 어떤 것 도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이 없다.

사용자가 잘못이라 한다.

알아서 하라고 한다.

 

기업이 국가가 안전하다고 했다.

헌데 사람이 죽었다.

 

그래도 안전하다고 한다.

사용자가 잘못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 결국 내가 잘못했다.

국가를 믿은 기업을 믿은 내가 잘못했다.

 

주변에서 얘기한다.

이건 분명히 기업에게 책임이 있다.

금방 해결 될 거다.

 

하지만 5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기업은 잘못이 없다 한다.

법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정부도 잘못이 없다 한다.

정부에서 승인했음에도 법이 없다.

 

가해자가 없다.

어떻게 가해자 없을 수 있나?

 

왜 법이 없나?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사망하게 하면 법으로 당연히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라고 되어있다.

 

자살하려고 구매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구매하지 않았다.

 

이렇게 치명적인 제품을 판매하고도 잘못이 없다니?

기업은 안전하다고 판매하여 놓고 사용자에게 잘못 사용했다고 한다.

내가 뭘 잘못 사용했나?

 

어디에도 가습기에 넣어 사용하면 폐질환에 걸리거나 사망한다는 문구가 없다.

안전하다고 되어있다.

 

가해기업은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고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내가 구매하기 위해 지불한 돈으로 살균제를 판매하여 사람을 죽인 돈으로 그렇게 피해자들에게 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해기업은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잊혀질 때까지 피해자들이 포기 할 때까지 법적 대응으로 무마 하려고 할 것이다.

 

나는 얘기하고 싶다.

가해기업을 처벌해 달라고, 정부를 처벌해 달라고

힘없는 피해자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정부가 나서달라고 정부는 잘못을 책임지고 가해기업을 처벌하고 정부 또한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싶다.

 

안성우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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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겨레 환경블로그 물바람숲 그리고 월간 함께사는길 4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어느 엄마와 아기를 위한 진혼제
 
최예용 2013. 03. 27

 

2주기 맞은 가습기살균제 사망 산모와 태아 명복 빌어

"감기 걸리지 말라고 직접 넣어준 살균젠데…", 아들도 간질성 폐렴 후유증

 

유난히 눈이 많고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계속된 겨울이었지만 입춘과 설이 지난 2월 중순의 햇살은 어느덧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의 개명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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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찾아 산기슭의 골을 따라 올라가는데 왼쪽 경사면은 눈이 덮여 있고 햇살을 직접 쬐는 오른쪽은 눈이 사라져 조만간 봄꽃이 찾아올 것만 같다. 절 인근의 밭은 고추밭인 모양인지 가지를 곧추 세워주는 고추대들이 줄지어 앙상하게 꽂혀있다. ‘밝은 데로 인도해주는 곳’이라고 읽히는 개명사(開明寺) 바로 옆으로 겨우내 쌓인 계곡의 눈과 얼음이 녹아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봄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정작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흙으로 지은 작은 암자의 처마에 줄지어 달아놓은 여러 장식들이 오늘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무감로왕여래'(南無甘露王如來), '나무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南無千百億化身釋迦牟 尼佛) 등 불교용어가 적힌 크고 작은 종이 스무장 정도가 가로로 길게 달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어지러이 나부낀다.

 

그 앞 땅바닥에 소반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한 곳에는 짚신 세 켤레와 종이로 만들어진 검은색 한복 세 벌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다른 상에는 여성용과 남성용의 울긋불긋한 종이 한복 두 벌과 사과와 배, 감이 올려진 접시 하나 그리고 북어 한 마리를 올려놓은 접시 하나가 놓여 있다.

 

바닥에는 종이로 만든 버선 두 켤레가 놓여있다. 궁금한 얼굴을 하고 들여다보는 나에게 바쁘게 오가던 보살님이 말을 건넨다. “왼쪽의 한복 2벌은 돌아가신 아기 엄마와 죽은 태아를 뜻하고, 오른쪽의 검은 한복 3벌은 죽은 사람을 데리고 오가는 사자를 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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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진혼제가 끝난 후 현주씨와 태아가 입고 떠날 종이 한복, (오른쪽) 성우씨가 아들 재상을 목마 태우고 제상을 바라보고 있다


 

2년 전 오늘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아기 엄마 현주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7개월 동안 품고 있던 태아는 엄마보다 4일 먼저 떠났다 살아남은 그의 남편 성우씨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재상 그리고 현주씨의 시댁과 친정 부모님이 오늘 이곳에 모여 그와 아기의 혼을 달래는 진혼제를 연다.

 

원통한 영혼이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 잘 달래어 하늘로 보내주려는 취지다. 영혼을 데리러 저승사자 3명이 왔고 같이 먼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노잣밥을 넉넉히 준비했다고 말씀하시며 보살님이 밥과 국을 소반에 내려놓으신다.


오늘 재(齋)는 성우씨가 주지스님께 특별히 부탁하여 진혼제를 잘 하신다는 스님 한 분과 바라춤을 추어줄 춤꾼 한 분을 모셔왔다. 참석자들은 먼저 가운데 부처님을 향해 몇 차례 절을 하고 이어 왼쪽에 차려진 제사상 위의 망자에게 절을 한다. 그리고 삼십 분여 동안 스님들의 독경이 이어졌다.

 

따분했던지 안에 있던 성우씨의 여섯살짜리 아들 재상이가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뭐 하는 거냐며 호기심을 보인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안에서 뭐 했느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다가 이내 할머니가 우신다고 말한다. 친할머니는 따로 ‘재상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재상이가 보았던 우시는 할머니는 현주씨의 친정엄마인 재상이의 외할머니를 말하나 보다. 

 

재가 끝나고 점심을 차리면서 재상이 친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데, 재상이도 뭔가를 기억하고 느끼는 모양이라면서 재를 시작하며 절을 할 때 재상이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란다. 외할머니의 눈물이 엄마에 대한 재상이의 기억을 자극했던 걸까.


진혼 독경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다시 한번 한 순배씩 절을 올렸다. 이때 재상이도 불려가서 절을 올렸다. 아빠는 재상이의 무릎을 꿇리고 엎드리게 해주었다. 재상이가 엎드린 머리맡의 상위에는 작은 액자 속에서 현주씨가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결혼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그 옆에는 '망 부인청주곽씨현주'(亡 夫人淸州郭氏賢珠)라고 쓰인 제문이 세로로 붙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던 재상이 동생은 사진도 이름도 없다. '망 순흥안씨낙태영가'(亡 順興安氏落胎靈駕)라고 쓰인 제문만이 한 생명이 이 땅에 잠시 왔다 갔음을 말해줄 뿐. 아기의 제문은 엄마와 손을 잡고 있는 듯 현주씨 제문과 나란하다.

 

밖에 내내 서있던 황망한 표정의 현주씨 친정아버지가 잠시 절당에 들어가 먼저 부처님 앞에 한 번 그리고 딸의 제상 앞에서 두 번 절을 올린다.

 

 

“몇째 따님이세요?”

“막내에요, 자식이 모두 여섯인데 첫째 언니도 먼저 갔어요”

“무슨 팔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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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5일 오전 11시경 충북 옥천의 작은 사찰에서 진행된 가습기살균제 희생자 현주씨와 태아를 기리는 진혼제 행사의 일환인 바라춤.

 

바라춤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처음엔 고깔모자를 쓰고 양손에 심벌즈 비슷한데 반쯤 크기의 자바라를 들고 챙챙 소리를 내면서 부처님 앞에서 추었다. 춤꾼이 복장을 바꾸느라 잠시 쉬는 사이 참가자들이 제상에 절을 했고, 이어 두 번째는 하얀 소복만으로 이번엔 제상 앞에서 추었다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좁은 절당 한쪽으로 옮겨 앉고 앳된 여성 춤꾼은 제상 앞에서 천천히 슬픈 바라를 춘다. 바라춤은 불교의식의 하나로 재(齋)를 올릴 때 추는데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뜻도 있어 현주씨와 아기의 진혼제에 초대되었다. 

 

출가한 비구니가 바라를 추었다면 ‘승무’라고 불렀을 것이다. 사찰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소리, 바라춤 음악소리, 춤꾼의 소복이 스치며 내는 소리 그리고 남은 식구들의 울음소리와 한숨소리…. 그 소리 사이로 서러운 현주씨의 영혼이 그리고 가여운 아기의 영혼이 가만이 달래졌을 것이다.

 

진혼제가 모두 끝났다. 목탁을 든 스님이 먼저 절당을 나서고 이어 성우씨가 제문을 들고 뒤를 따랐다. 처마에 매달았던 비품들도 모두 마당 한쪽에 모아졌다. 그리고 모두 불에 태워졌다. 불길이 치솟으면서 스님의 목탁소리도 점점 커지는 듯했고 불이 사그라지면서 목탁소리도 잦아드는 듯했다. 보살님은 서둘러 밥과 반찬 그리고 과일을 담아서 절간 입구에 갖다 놓았다. 저승으로 떠나는 먼 길에 싸가라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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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세퓨를 사용하다 아내와 아기를 잃은 안성우씨가 2013년 1월22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피해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현주씨는 2년 전인 2011년 2월8일(음력으로 1월6일) 세상을 떠났다. 4일전인 2월4일 26주차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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