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30] 자살충동, 가습기살균제, 정신마저 갉아 먹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기록관

[피해사례 30] 자살충동, 가습기살균제, 정신마저 갉아 먹다

최예용 0 11229 0 0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 피해자와 가족의 정신건강

 

안종주·임신예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
 
프레시안 2014 1 28
 
어떤 사망이든, 어떤 질병이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또 이 가운데 보통의 스트레스를 넘어 심각한 정신적 충격으로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증후군으로 마음의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전쟁에서 동료들의 죽음이나 치명적 부상을 지켜보거나 자신이 부상을 당한 경우도 이런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는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한 피해자, 특히 사망자가 있는 가족은 엄청난 의료비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생활고를 겪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이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겪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 채 가족을 저 세상으로 멀리 떠나보낸 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가 원인미상 폐질환의 범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혔다.
 
이후 자신이 구입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자녀나 가족들이 숨졌다는 죄책감 때문에 헤어나기 어려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것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이 넘었다. 물론 상당수는 몸과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거나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지만 아직도 육체적·정신적 악몽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역학 조사를 하거나 피해 판정을 위해 조사자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묻거나 피해 판정 건강 검진을 병원에서 의료진이 당시 상황을 물을라치면 아물어가던 상처가 바늘에 찔린 듯한, 격한 아픔을 느낀다. 마음 깊숙이 들어가 조용히 있던 고통의 무의식들이 가습기나 살균제란 말만 들어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는 것을 보거나 읽기만 해도 스멀스멀 기어 나와 머리를 송곳처럼 찌른다.

가습기 살균제, 정신마저 갉아먹다

가습기 살균제 중증 피해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은 한결같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일이 년씩 정신과 상담은 물론 정신 약물치료와 통원 치료를 받은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간간이 악몽을 꾼다. 이런 정신 문제는 부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혼한 경우도 있다. 기업들이 만든 가습기 살균제란 악마의 물질이 사람들의 폐만 갉아먹은 것이 아니라 정신마저 갉아먹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사를 위해 찾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는 무관한 조사자들에게 억눌렸던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했다. 정부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회사를 향해 큰 목소리로 욕을 해대기도 했다. 그러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마구 쏟아내 조사에 애를 먹기도 했다. 이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막막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들은 사망한 아이나 부인을 떠올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럴수록 분노와 함께 우울감에 젖어든다. 자녀가 사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남편이 죽었는데도 자녀가 사주지 않았다고 조사자들에게 둘러댄다.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컸으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자녀가 고통을 겪을까 봐 현실을 부정하는 이런 언행은, 가습기 살균제가 우리 사회에 준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비롯한 각종 정신 질환 또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분노, 슬픔, 죄책감 외에도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나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잠 못 자는 밤을 보낸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인터넷 카페모임에도 들어가 보지 않는다. 피해자 모임에도 참여하길 꺼린다. 관련 뉴스도 애써 외면한다. 이웃이나 친척 등 주변 사람을 만나기도 겁난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있다.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여러 번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매일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가 우리 사회에 남긴 또 하나의 재앙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못지않게 정신적 문제도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2011년 9월~2012년 4월 13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에 접수된 133가족, 174사례 가운데 설문 조사에 동의한 105사례에 대해 이들의 가정을 방문하거나 일부는 이메일과 우편 방식으로 조사(2012년 2월~5월)했다.
 
여기에는 건강 피해 내용, 피해자 건강 이력 정보, 거주 환경, 가습기 사용 현황,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력 등이 포함됐다. 또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충격도 포함시켰다. 정신 건강 영향 조사에 포함된 내용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자살 충동 및 시도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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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간담회를 가졌다. 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이야기를 말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절반이 자살 충동

설문 응답자들은 남자 26명, 여자 50명이었다. 이들은 20대부터 70대에 이르며 30대가 71.1%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는 환자가 28명(36.8%), 환자 가족은 48명(63.2%)이었다. 설문 응답자가 피해자 본인인 경우가 28명(36.8%), 피해자의 배우자인 경우 13명(17.1%), 피해자의 부모인 경우 32명(42.1%), 기타 3명(4.0%)이었다.
 
가족 내 사망자가 있는 경우가 32명(42.1%)이고, 폐 또는 폐와 심장 이식 수술을 동시에 받은 경우가 5명(6%)이었으며 나머지 39명(51.3%)은 호흡기 질환자가 있는 경우였다. 한 가족은 가족 내 사망 1명(자녀)과 이식(폐) 1명(부인)이 발생한 가족이 있었다.

이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인한 정신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20명(26.7%)이나 됐다. 의학계에서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 예를 들면 전쟁, 성폭력, 학대 등으로 인한 이상 반응으로 외상 사건의 재경험, 외상 사건의 회피 및 감정의 둔화, 과도 각성 등의 특징적인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하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PTSD를 조사하는 데는 여러 방법들이 있는데 이 조사에서는 절단점 20점을 적용한 결과 66명 가운데 48명(71.6%)이라는 높은 비율이 환자 범위에 들어왔다. 

PTSD 환자들은 각성의 정도가 높아 잠을 잘 못 자고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또 성적 충동 조절과 애정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 주의 집중 장애로 학습에 문제가 있으며, 대인 관계 등 사회생활도 어려워 직업 수행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응답자들은 일상 생활에도 곤란을 겪고 있었다.
 
놀이와 여가 활동(87.3%),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81.0%),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전반적인 기능(79.4%), 집안 일(75.0%), 친구 관계(74.6%), 가족관계(73.0%)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 내에 사망자가 있는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정도가 심했다.

자살 충동 및 시도에 대한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절반(39명)이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횟수는 하루 한 번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복수 응답)는 ‘정부의 태도’ 21명, ‘기업의 태도’ 19명, ‘사건 이후 경제적 문제’ 17명, ‘가정 내 갈등’ 7명, 기타 6명이었다.
 
죽고 싶은 이유를 주관식으로 적게 한 결과 ‘죄책감’ 4명, ‘질환 때문에 힘들어서’ 2명, ‘치료 방법이 없어서’ 1명,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1명, ‘진료비가 부담되어서’ 1명 등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자살하려는 시도나 계획이 있었던 경우는 8명(12.7%)이었으며, 자살 시도 횟수는 1회(2명), 2~3회(3명), 5번 이상(1명) 등이었다. 가족 내 사망자가 있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견줘 자살 충동을 많이 느꼈다. 

PTSD 평생 지속할 수도…사회가 관심 가져야

일반적으로 지역 사회의 PTSD 유병률은 1~14%이며, 외상적 사건을 겪은 고위험 집단의 PTSD 유병률은 3~58%로 보고되고 있다. 전 인구의 약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PTSD를 일으킬 정도의 심한 외상적 사건을 경험하지만 이들 중 약 10~20%만이 실제 PTSD를 겪는다고 한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재앙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부모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직접 구입하여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자신의 어린 자녀가 사망하였거나 임신한 부인이 사망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사건과는 다른,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서 정신건강 영향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들에게는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가 분명 필요하다. 설문 응답에서도 드러나듯이 정신 건강에 대해 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함에도 정신 질환자에 대해 낙인을 찍는 우리 사회문화 때문에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거나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PTSD는 심할 경우 평생 지속할 수 있다. 이 질환이 피해자 가정과 이들의 사회생활에 크나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 지원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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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보건학박사
임신예, 경희대학교 경희의료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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