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에서의 편지 4> 2017년 2월 4일. 인도 전통 약 만들기 & 수레쉬와 함께한 보팔 투어 > 아시아환경보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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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 조회 수 :110 | 댓글 :0 | 17-02-05 08:42

<보팔에서의 편지 4> 2017년 2월 4일. 인도 전통 약 만들기 & 수레쉬와 함께한 보팔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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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팔에서의 편지 4> 201724. 인도 전통 약 만들기 & 수레쉬와 함께한 보팔 투어

 

어제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있던 데빈이, 오늘 아침에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어제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스페인에서 온 기옘(Guilem)은 데빈과 함께 방을 쓰는데, 그가 지난밤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해줬다. 귀옘은 자신이 허브 농원과 제약실 일을 돕고 있다며, 데빈과 서류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허브 농원이나 제약실에 와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기옘 또한 이야기해볼수록 재미있는 친구였다. 그는 이미 두 달 째 인도와 네팔 여행을 하고 있었고, 삼바브나 클리닉에서는 한달 정도 일할 거라 했다. 기옘은 프랑스 시골의 농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었다며, 이 곳에서도 자신이 익숙한 정원일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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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약재를 잘 말리기 위해 작은 덩어리로 뭉치는 작업

 

나는 아침식사를 마저 마치고 제약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토르스톤과 빔드비쉬, 렐리타 그리고 앙트시가 한창 일하고 있었다. 토르스톤은 여느 때처럼 빈병에 약을 넣고, 약의 이름과 정보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반죽된 약재를 쉽게 말리기 위해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크기로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진흙으로 장난하는 것 같았지만, 일이 원래 그러하듯이, 보이는 것만큼 쉽고 간단하지는 않았다. 약재를 너무 돌돌 말아도 안되고, 너무 크게 하면 약재가 잘 마르지 않고 너무 작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곁눈질 하며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단순노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제약실의 스태프들이 힌디어로 수다 떠는 소리는 아주 적절한 배경음악이었다. 토르스톤은 몇 년 째 삼바브나 클리닉에 찾아와서인지, 스태프들과 매우 친밀한 것 같았다. 그는 짧은 힌디어로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병원을 찾은 환자와 사따이유 대표님은 각기 아기를 데리고 제약실에 들러 한담을 나누다가 돌아갔다. 이렇게 평화로운 삼바브나 클리닉의 일상의 일부가 되어있노라면, 이 병원이 끔찍한 가스 참사로 인해 생긴 곳이며 이곳을 찾는 환자들이 평생 동안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문득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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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고가차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을 파노라마로 찍었다. 왼쪽부터 수레쉬씨, 기옘 그리고 수레쉬씨의 친구가 보인다.

 

삼바브나 클리닉의 운영이사이자 보팔 참사 기념관에서 봉사하고 있는 수레쉬(Suresh)씨와의 짧은 보팔 투어는,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참사의 심각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나는 어제 보팔 참사 기념관을 방문했지만 그와는 시간이 어긋나 만나지 못했다. 수레쉬씨는 나와 기옘을 삼바브나 트러스트 근처에서 픽업해서 함께 보팔 참사 기념관으로 갔다. 그는 가는 길에 한 두번 차를 세워 보팔 참사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히, 열성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수레쉬씨는 먼저 유니언카바이드 공장 담장 바로 앞을 쭉 지나가며, 원래 이 담장에는 피해자들이 쓴 그래피티가 있었지만 사측에서 페인트칠로 덮어버렸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상도 보았다. 수레쉬씨가 두번째로 차를 세운 곳은 공장 바로 옆 기찻길이 내려다보이는 고가차도 위였다. 그에 따르면, 현재는 빈민들이 살고 있는 기찻길 옆 판자촌에는 1984년 당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고, 만약 그날 밤 바람이 현재의 판자촌 쪽으로 불었다면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또 폭이 100m도 채 되지 않는 판자촌의 바로 옆에는 큰 웅덩이가 있는 붉은색 토양의 공터가 있었는데, 유니언카바이드가 가스 누출 사고 이전에 이미 화학폐기물을 매립한 곳이었다

 

2000년대즈음 삼바브나 클리닉 등 피해자를 위해 일해오던 단체들은 언제부터인지 주민들이 가스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원인은 유니언카바이드가 매립한 화학폐기물로 인한 식수 오염임이 밝혀졌다. 유니언카바이드는 그 곳만이 아니라 보팔 곳곳에 공장에서 나온 화학폐기물을 매립했고, 화학물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빈민들은 그 대가를 평생에 걸쳐 대신 치루고 있다. 이제 주민들은 물과 토양이 오염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그 물을 마시고 그 땅에서 살고 있다. 수레쉬씨는 세상에서 제일 빈곤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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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보팔 참사 기념관에서 전시를 설명중인 수레쉬씨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보팔 참사 기념관. 확실히 수레쉬씨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념관을 둘러보니 어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이 많이 보였다. 기념관은 2층으로,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각 방의 벽에 설치된 수화기를 통해 생존자들과 활동가들의 설명을 마치 전화 받듯이 들을 수 있게 되어있다. 초입의 첫 번째 방은 어둠의 방으로 불린다. 검은 벽지와 흑백 사진으로 아주 어두운 분위기가 조성되어있고, 천장에는 마치 철창살처럼 배치된 공장 파이프 너머로 사진 속 희생자들이 방문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방은 참사 당일과 직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두번째 방은 아이들의 방으로, 참사 이후 세대의 고통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방에 사진과 물품이 전시된 아이들의 상당 수는 이미 사망했다

 

나머지 두개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쪽 벽에는 생존자들과 활동가들이 만든 포스터들이 걸려있다. 어떤 포스터들은 강렬하고 또 슬펐다. 세번째 방은 배상의 방이었다. 앞서 말한대로, 2000년대에 식수 오염 문제가 알려지자 사람들은 1984년 가스 누출 사고에 한정된 배상(그것도 개인당 $800대로 매우 낮았다)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추가적인 배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방은 운동(movement)의 방으로, 생존자들이 인도 총리에게 책임과 지원을 촉구하면서 보팔부터 델리까지 걸어서 행진한 2006년의 기록을 주로 담고 있다. 생존자들은 그들의 용기와 끈기로 총리로부터 식수 탱크와 파이프 등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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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기념관에 설치된 포스터들

 

수레쉬씨는 보팔 참사 기념관이 인도 최초의 구술사 박물관이자, 산업재해에 관한 박물관이자, 생존자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역사를 재현하는 박물관이라고 소개했다. 삼바브나 클리닉에 돌아와서 이어진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참 전부터 이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존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 사이에서 이미 보팔 참사를 기억하고자 유품 등을 수집하는 노력들이 있었고, 2014년에 보팔 참사 30주년을 기념하여 이를 좀 더 전문적으로 보관하고 전시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또 참사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팔의 모든 것은 싸워서 얻은 것이며, 기억하는 것 또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수레쉬씨는 강조했다.

 

김지원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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