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오리샤의 베텔과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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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리샤의 베텔과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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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리샤의 아쇽과 광양의 박주식


남극조약연례총회 참가에 필요한 비자신청을 위해 찾은 서울 장충동 언덕가 인도대사관. ‘Incredible India-놀라운 인도’라는 관광홍보 포스터가 먼저 눈길을 끈다. 홍보책자의 뒷면에는 한국대통령과 인도총리가 손을 맞잡은 의례적인 국가간 정상들의 교류사진과 함께 대규모 철강단지의 조성사업 합의라는 설명문구가 붙어있다. 비자 면접차 만난 대사관 사람에게 보팔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인도방문이 처음인 필자는 올해 남극조약총회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보팔을 떠올렸다. 일본의 미나마타병과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참사와 더불어 세계 3대 환경재앙중 하나가 인도의 보팔참사다. 1984년 12월 새벽 미국의 다국적 농약공장 유니언카바이드사 공장에서 터져나온 유독가스로 지역주민 수만명이 사망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사건이 보팔참사다. 대사관 직원은 인도지도의 한가운데 붙은 보팔 지명을 짚어주었다.


필자가 인도 북동부 해안지역 오리샤(Orrisa)를 방문하게 된 것은 보팔의 한 환경운동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주간 계속되는 회의중간 주말에 방문한 보팔에서 만난 샤티라는 운동가는 보팔피해자 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려온 사람이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1994년 보팔참사 10주년때 한국에서 열린 토론회때 만난 적이 있는 사이였다. 샤티에게 포스코가 인도 어딘가에서 대규모 철강단지를 만든다는데 위치가 어디냐고 묻자 지금 그곳이 난리다 라며 휴대폰을 꺼내들고 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서로 잘 아는 듯한 사이인 사람과 안부를 주고받은 후 한국에서 온 환경운동가가 포스코문제에 대해 묻는다면서 필자를 연결시켜 주었다. 데브지드라고 소개하는 상대방은 오리샤 지역이 뉴델리에서 2시간 밖에 안걸리는 곳으로 꼭 방문해 주었으면 좋겠다며 초청장을 이메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귀국길에 한국에서 대규모로 운반되는 전자폐기물처리 현장을 둘러볼 생각을 하던 필자는 마음을 고쳐먹고 오리샤를 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샤티는 오리샤지역의 데브지드가 사촌동생으로 유기농 운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도에서 포스코 문제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임을 샤티와 데브지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오리샤주는 인도 동북부 뱅갈만을 낀 해안지역에 위치하여 한국으로 치자면 강원도쯤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인도에서 10번째로 큰 주로 인구는 11번째로 많다. 강원도에도 탄광지역이 많듯 오리샤는 탄광과 알루미늄광 등 광산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국의 포스코는 오리샤주 쿠장 자가칭푸아 지역(Kujang Jagatsinghpur District)에 1,200만톤 규모의 철강공장을 세우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이 철강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오리샤주의 철광산을 30년 동안 6억 톤 규모로 채광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문제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지역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한다는 점이다. 2년전 처음 계획이 알려진 직후부터 마을사람들은 반대운동에 나섰고 마을입구를 봉쇄하는 등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아쇽(Ashok)은 오리사주의 수도 브바네수아(Bhuvanshwar) 시의 ‘젊은 인디아’라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31세 활동가다. 아쇽의 고향은 포스코의 철강공장이 들어설 예정인 누아가 지피(GP, 10여개의 촌락을 하나로 묶은 행정단위)출신으로 6세와 3세의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가장이다. 아쇽은 포스코의 철강공장 때문에 누아가 지피외에 다른 2개의 지피를 포함하여 모두 4천 가구 2만 여명이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 외에 4만 여명의 인근지역 주민들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피해를 입게 된다고 한다. 포스코의 철강공장이 들어설 지역은 베텔(betel)농장이 성업중인 곳인데, 베텔은 나뭇잎으로 후추를 만들고 열매로 견과를 만드는 인도산 상록관목이다. 베텔농업으로 전통의약품도 만들어 낸다. 아쇽은 “ 경제적으로 번성한 한국사람의 눈에 우리들이 매우 가난한 사람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베텔농업을 대대손손 이어오면서 우리 손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풍족한 땅을 일구고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도시마을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베텔농사를 짓고 베텔농작물을 널리 보급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포스코 측에서 베텔농장 대체지를 준다고 하고 우리더러 불법거주자들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이 땅을 얻게 되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인도가 공화국이 되는 과정에서 과거 지역의 왕으로부터 불하를 받고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살고 있는데 왜 불법거주자라는 항변이다. 한가족이 한달에 적게는 8천루피(한국화폐로 약 20만원) 많게는 4만루피까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인도의 경제와 농촌실정을 고려하면 대단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아쇽은 베텔농업에 어린이와 나이 많은 노인들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가족형 농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포스코 문제가 불거진 지 2년이 넘어가지만 한국에서 환경운동가가 처음 와 주었다며 고마워 하는 아쇽의 얼굴을 필자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2년 동안이나 외롭고 힘든 운동을 해왔는데 한국사회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니…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고 규모 있는 환경단체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창피했다.


오리샤에서 아쇽을 만나면서 필자는 한국 광양의 환경운동가 박주식을 떠올렸다. 그는 가끔 자신의 고향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바닷가 마을이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어촌 출신이다. 박주식의 고향마을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묻혀있다. 몇 년전 어린이들의 호흡기질환에 문제가 있다는 역학조사결과를 낸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조사대상지역 태인동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는 포스코 공해의 피해자이자 이 지역을 지키는 환경운동가다. 수 년 동안 ‘질기게’ 포스코 문제를 물고 늘어져온 광양환경운동연합 박주식국장은 포스코의 정치력(?)을 새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광양에서 포스코문제를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이유로 사무국장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광양에서 포스코는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교수도 광양 포스코의 정치력을 실감나게 경험했다. 몇 년 전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일이다. 광양시의 의뢰로 조사를 마치고 시청회의실에서 발표회를 갖는 날. 오후 발표를 준비하던 백교수는 아침에 포스코측에서 결과를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돌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했다. 시청 담당자외에는 아무한테도 보고서 결과를 주지 않았는데 포스코는 미리 자료를 빼내 소위 물타기를 한 것이다. 전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들에게 포스코는 최대의 광고주다. 태인동의 역학조사결과에 대해 언론이 양비론의 시각으로 보도하게 된 배경이다. 포스코는 광양과 포항 밖의 시민사회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유력 사회단체의 중견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장학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일간지는 이 프로그램에 선발된 10여명의 활동가 사진을 하나하나 크게 싣는 기사를 내보냈다. 포스코와 2회전을 준비하는 광양의 박국장은 훨씬 날 선 칼날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검게 그을린 아쇽은 방금 따온 베텔나뭇잎을 내 보였다. 그의 미소에서 광양의 박주식이 읽혔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 속에 필자의 숙소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지역 사회단체에서 일한다는 가다다할(Gadadhar)은 필자가 포스코에 반대하는 마을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자 “ 현지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아무도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요. 외부 언론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연행을 우려하여 외부 활동도 하지 않아요. 지난번 공청회 때에는 군대와 경찰이 막고 있어 정작 해당지역 주민들을 참가하지도 못했지요. 환경단체에서 왔다고 해도 한국에서 온 사람이면 누구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마을 내에 여러가지 흉흉한 소문이 돌아서 매우 어려운 조건이거든요.” 라며 현지방문이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국제적인 사회운동단체 액션에이드(Action Aide)의 인도 오리샤지부에서 만난 사란야(여, Sharnaga)에게 포스코의 프로젝트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 오리샤는 북쪽의 3개 산악지역이 석탄광으로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는 곳이에요. 그러네 주의 동쪽아래에는 알미늄광산이 영국에 의해 허가도 받지 않고 가동되고 있으며 노르웨이 등 3개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광산역시 허가없이 운영되고 있어요. ” 이러한 배경 속에서 포스코의 프로젝트가 알려지자 해당지역 주민들을 물론이고 일반시민들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인디아 사무실을 찾았다. “ 정치적으로 편향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다수 주민들이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직원이 직접 주민들을 만나보니 정작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라구요. 우리가 이주 대체부지와 경작지를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라요.” 본사에 있을때 환경기획부장을 했었다는 성기웅 부장은 주민반대가 지역의 소수 운동가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직접 주민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설득하면 문제가 곧 해결될 겁니다.” 성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포스코 오리샤 프로젝트는 추진된다며 무지한 주민들이 소수 운동가들의 선동에 의해 반대하고 있다는 식으로 거듭 강조했다. “ 초기에는 국제언론의 통신원들이 갈등중심으로 보도를 했는데 지금은 입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로컬의 분위기는 문제가 전혀 없어요. 사회단체가 낸 보고서에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4만이다 5만이다라고 하는데 한번도 자료를 보지도 않고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에요. 이주를 해야 하는 사람은 3백가구 밖에 안되요. 현지에서 반대운동하는 사람들은 3백명이 채 안되요. 반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부사람들입니다.” 경찰력에 의해 일부 주민의 참석이 봉쇄당했다는 환경영향평가 공청회 문제에 대해서도 “ 잘 진행되었습니다. 주변의 인도회사들이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공개할 수 없단다. 성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소수의 환경운동가 중 한 사람인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귀국하니 인도대사관, 포철 본사 등지에서 연락이 온다. 오리샤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 반대운동이 심해서 실제 현장조차 방문하지 못했는데도 큰 일이라도 내고 온 사람처럼 대접(?)을 해준다. 며칠 지나자 포스코-인디아 직원이 반대운동하는 마을에 갔다고 하루 동안 억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힘없는 노인 두 명이 마을입구를 지키는 것이 반대운동의 전부라고 포스코-인디아의 성부장은 말했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마을주민을 폭행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포스코 측의 반격인가 싶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환경운동가들이 ‘소수의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이라는 포스코 인디아 측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수의 사람들이 하는 일에 많은 다수가 동의하고 지지한다. 그것이 환경운동의 힘이다. 포스코는 TV와 신문광고를 통해 자신들을 친환경기업을 홍보한다. 인터넷 홈피에서도 녹색이 넘쳐난다. 가난한 인도의 바닷가 마을 사람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지역사회의 문제제기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소수’의 조종으로 치부하고는 것이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 포스코의 또 다른 얼굴이다. 뉴델리에서 국제남극총회 참가자의 자격으로 인도 시장이 주최하는 만찬장에서 만난 인도 유수의 대학 부총장에게 포스코문제에 대해 물었다. “ 인도는 아래로부터 민주화가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외국 자본이 무력으로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면 거센 저항을 부르게 됩니다. 주민들이 고향을 잃게 된다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수의 운동가’의 주장에 동의하는 또 다른 ‘소수의’ 고위층 인도인을 수도 뉴델리에서 만난 것이 우연일까? 이번 주말에는 아쇽의 이야기를 들려주러 광양 박국장을 보러 가야 겠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정책연구소 지속가능에너지 및 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 데이픈 와이샴(Daphne Wysham)의 현지르포를 소개한다.


포스코의 120억달러의 인도 투자는 한국과 인도에서 가장 큰 해외투자이다. 포스코는 이미 62억달러를 투자했는데 2005년의 포스코 전체 수익에 해당한다. 여기에 세계최대의 광산회사인 호주 BHP빌리톤도 추가로 24억달러를 투자했다. 포스코의 인도투자이익은 정작 한국이 아니라 외국자본이다. 포스토의 최대주주는 전체의 22%를 쥐고 있는 미국 뉴욕은행이다. 다음으로는 4.4%를 갖고 있는 역시 미국투자회사 캐피탈 리서치엔매니지먼트이다. 한국내의 주주는 2.9%의 연금기금, 2.8%의 한국통신, 2.7%의 포항과학기술대학, 나머지는 미국와 룩셈부르그 등 여러 국내외 펀드기금들이다. 이렇게 해서 모두 44%의 이익이 미국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오리사주의 현지 농민들은 2005년 반대운동에 돌입한 이래 지금까지 23개월간 마을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4월22일 현재 모두 1000여명 20여 소대의 경찰병력이 마을을 봉쇄하고 있다. 마을의 500여 남자와 여성들로 구성된 자결대가 죽음을 각오하고 삶의 터전을 지킨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뱅갈주 난디그람(Nandigram)에서 인도네시아 화학공장 건설계획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1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난디그람은 포스코의 투자지역과 같이 인도정부가 외국투자를 유치하기위해 지정한 ‘특별경제구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해외투자를 우선ㅇ로 토지주권, 환경보호, 노동권 기타 다른 모든 국내법이 무시된다. 만약 경찰이 자가칭파(Jagatsinghpur)마을로 강제진입하면, 미국의 투자자들은 포스코 투자로 따끈따끈한 이익금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현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피를 대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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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2007년 5월 인도 오리사 현지를 방문한 뒤 월간 함께사는길 7월호에 실은 기사입니다.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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