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마타병의 원인을 찾아낸 하라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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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마타병의 원인을 찾아낸 하라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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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일본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공해병인 '미나마타병()'의 원인을 처음 밝혀낸 하라다 마사쯔미(原田正純·77) 교수가 한국을 찾아 20111127일 최열(62) 환경재단 대표를 만나 한·일 두 나라의 환경운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일 두 나라의 환경운동 1세대인 두 사람은 26년 전부터 인연을 맺고 교류를 해오고 있다. 하라다 교수는 최 대표의 초청으로 1985년 한국의 대표적 공해병인 '온산병'을 직접 현장 조사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두 사람은 특히 1994년 한·일 두나라를 대표해 유엔환경계획(UNEP)'글로벌 500'을 함께 수상하기도 했다. 20여 년 전부터 위암·혈액암 등으로 투병중인 하라다 교수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병도 있고 나이도 있어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라다 교수는 현재 자신이 설립한 구마모토가쿠엔(熊本學園)대학의 미나마타학()연구센터 고문을 맡고 있다.

최열 대표=한국을 방문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 35년 전 제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옥중에 있을 때, 일본어를 배우고 환경문제에 관한 교수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공해병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 미나마타병인데, 책을 통해 하라다 선생께서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한 것 알게 됐다. 올해로 미나마타 병이 처음 발견된 지 55년이 됐지만, 현재까지도 피해 보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하라다 교수=문제가 아주 복잡하다. 일단 질병 발생 10년 후 정부가 환자 구제제도를 만들었고, 동시에 정부는 환자 판정조건도 정했다. 환자 판정은 10여 명의 의사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진행했다. 미나마타 환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2,600명 정도다. 그 절반 정도가 이미 사망했다. 그러나 인정 못받는 환자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모른다. 소송은 미나마타환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4차 소송까지 원고는 모두 3만명 정도다. 법원은 원고에 대해 60~100%까지 환자라고 폭넓게 인정했다. 최근에는 법원이 판결보다는 화해를 주선하여 해결하는 것이 추세다. 대부분 화해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환자로 인정받은 경우는 1인당 260만엔(한화로 약 3,600만원)의 위로금과 의료비 보상을 받는데, 일부는 증상에 따라 의료비만 보상을 받은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소송과 보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남아있는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하라다=당시 발병한 사람 대부분은 이제 고령으로 거의 다 사망했다. 문제는 태아성 환자다. 태아 때 오염에 노출된 환자들이 이제 50세 전후가 됐다. 그러나 정부가 태아성 환자로 인정한 사람은 6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인정된 환자들은 거의 중증환자로 대부분 뇌성 소아마비다. 하지만 같은 세대 중에서 뇌성 소아마비로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증세가 경증인 사람들이 아직 많아 남아있고, 그들에 대한 보상과 재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사람들의 소송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낮은 수준의 수은 노출이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규명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하라다 교수께서는 60년 대 후반 미나마타 병 원인 밝히는 데 가장 큰 역할했다. 그 과

정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신다면.

하라다=오해가 있으면 안 되는데, 원인을 규명한 것은 저 혼자가 아니라 팀이 함께 했다. 초기부터 미나마타병은 생선을 먹고 생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은을 바다에 배출한 신일본질소비료(칫소) 측이나 정부는 물고기 속에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때 영국에서 농약 만드는 노동자가 유기수은 중독에 걸렸다는 논문을 발견했다. 이것이 원인을 규명하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영국 사례는 직업병이고 미나마타 사례는 환경오염 때문이다. 배출된 수은이 유기수은으로 바뀌고 그것이 먹이사슬을 통해 사람의 몸에 축적된 탓이다.

=구마모토의 미나마타 지역 외에도 일본 니가타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전세계에서 미나마타병 증세가 나타났다. 미나마타병이 인류에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하라다=생명이라는 것은 순환 속에 있다. 자연계에서 우리와 상관없을 것 같은 생물이 오염되면서 먹이사슬이 오염됐고, 결국 사람에게까지 순환, 즉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예를 들면 일본 대지진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나고, 방사성 물질이 바다로 배출됐는데, 일부 학자들은 바다에 나가면 희석된다고 주장했다. 사실은 방사성 물질이 생물을 통해,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미나마타병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었다. 환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학이 나서서 다루기 시작할 때면 이미 늦었다. 얼마를 배상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환경문제는 피해가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다.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어서 함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노력의 중심에는 시민운동과 피해자인 주민운동이 있어야 한다.

=후쿠시마의 고농도 오염수가 바다로 들어가 희석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국도 후발공업국으로 온산지역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고 오염물질 배출되면서 문제가 됐었다. 그게 온산병이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사람들이 온산병을 사회문제화 시키는데 노력했다. 당시 전문 의학자가 조사해야 되겠다 생각해서 하라다 교수님을 85년 봄에 초청했다. 당시 하라다 교수님을 모시고 온산 지역에 들렀을 때 첫 말씀으로 죽음의 마을이라고 하신 게 기억난다. 그때 느낌을 다시 한 번 말씀해 달라.

하라다=미나마타의 경우 공해병이 발생해도 마을 환경은 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였다. 온산에 갔더니 사람이 사라지고, 나무가 죽어 있고 아주 충격을 받았다. 미나마타라면 유기수은. 이타이이타이병이라면 카드뮴 등 보통 공해병이라도 원인물질이 한 가지다. 그러나 온산병은 그렇지 않아 여러 가지 물질이 섞인 복합오염이었다. 공기와 물, 먹는 것도 다 오염됐고, 오염물질도 여러 가지였다. 그러한 복합오염의 문제를 처음 제기한 최 대표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복합오염이라는 것을 지적한 게 세계에서 최 대표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한국에서는 온산병을 논문으로 공개할 여건이 안 되어 일본에서 공개했다.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단순 유기수은이었지만 앞으로는 세계적으로 복합오염이 문제가 될 것이다. 원인도 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온산병 사례는 세계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일본에서 하라다 교수께서 문제 제기를 해주신 덕분에 그 지역에서 1만여 명이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일본처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은 크게 줄였다. 최근 경찰 총경들. 일선 경찰서장들 6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어 이런 얘기를 했더니 크게 공감하더라.

하라다=그러나 85년 온산지역을 답사했던 당시에는 경찰에 연행당할 뻔 했고 사실 겁도 났다. 서울의 한 기독교건물에서 공해문제 강연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한시간마다 다방을 옮겨다니며 경찰의 감시를 따돌려야 했다. 온산에서 조사를 한 뒤 출국할 때에는 자료가 많았는데, 출국할 때 짐을 다른 여성에게 맡긴 덕분에 무사히 일본까지 가져갈 수 있었다. 저는 일단 출국심사를 통과했는데, 다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왔더니 짐을 열어보라고 해서 열어 보여야 할 정도로 짐 검사를 심하게 받았다.

=그 당시 연행하려했던 경찰이 나를 초청해 강연을 들을 정도로 한국이 많이 변했다. 그 당시 한국은 전두환 독재 정부 때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라다 교수님은 일본 환경운동의 첫 세대이시고, 저는 후발공업국가인 한국의 환경운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제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1994년 유엔환경계획의 글로벌 500상을 영국 런던에서 받게 됐는데, 하라다 박사님은 일본을, 저는 한국을 대표로 해서 받았을 때였다. 그때 공해 문제는 국경이 없고, 환경운동도 국경이 없고, 결국 인류가 하나가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하라다 박사님의 느낌은 어떠했는지.

하라다=그 당시 일본 정부, 환경청과 잘 지내지 못했다. 미나마타병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사람이어서 환경청에서 괴롭히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시상식 직전에야 저에게 가르쳐 줄 정도였다. 최열 대표가 수상자인지도 몰랐고, 영국 가서 최 대표를 만나 놀랐다.

=한국에 여러 차례 오셨는데, 일본의 환경운동과 비교해서 한국의 환경운동을 어떻게 보시는지.

하라다=일본에서는 환경운동단체의 문제 제기에 대해 현정부가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소송이 많이 제기됐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에서는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서 해결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일본도 물론 피해자가 직접 교섭에 나서서 하는 투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법정투쟁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한다.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하고 있고, 에너지원으로 석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석탄 속의 수은이 국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편서풍을 통해 한국이나 일본으로 많아 날아온다. 이런 것 때문에 세계 각국은 국제수은협약을 마련하는 중이다.

하라다=석탄 속에 수은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 산출되는 석탄 속에 포함돼 있는 수은의 양이 다르다. 어쨌든 수은에 대해서는 여러 나라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고, 국제수은협약 등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한다.

=하라다 선생께서 쓰신 '미나마타 붉은 노을'이란 어린이 동화책을 한국에서도 어린이들이 많이 읽었다. 한국 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달라.

=미나마타병의 교훈은 앞으로 100, 200년 계속 이야기해야 하는 그런 교훈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만큼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 공업화가 진행되는 나라에서도 미나마타가 교훈이 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교훈화를 통해 희생자의 한이 풀린다고나 할까, 희생이 헛되지 않고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나마타병은 수은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어패류를 오염시키고, 결국 사람을 오염시킨 것이다. 그러나 수은이 아니더라도 원인이 다이옥신도 돼도, 방사선이 돼도 똑같다. 그래서 산업화 내지 사회구조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라고 보고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나마타병의 교훈이다.

=결론은 우리 인간이 자연을 버리면 자연이 인간을 버리고, 인간이 자연을 살리면 자연도 인간을 살린다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부디 건강하시라.

기록정리; 강찬수 박사 (미생물학전공,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이 발간하는 월간지 <함께사는 길> 2012년도 1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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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박사와 대담하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 (환경보건시민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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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25일 한국환경보건학회 주최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하라다 박사 부부,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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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대회를 주최하여 하라다박사를 초청한 한국환경보건학회 학술위원장 최경호 교수(오른쪽, 서울대보건대학원)과 박정임 교수(왼쪽, 순천향대)>

사진; 최예용, 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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