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팔에서의 편지 7> 2017년 2월 7일. 보팔에서의 마지막 날
<보팔에서의 편지 7> 2017년 2월 7일. 보팔에서의 마지막 날
그림 1 오른쪽부터 옌, 스바키, 기옘.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때.
보팔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는 제약실에 가서 제약실 스태프들과 토르스톤을 도왔다. 사실 숙소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인데, 나는 조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삼바브나 클리닉을 위한 자원봉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인도 라지스탄에서 온 데빈, 스웨덴에서 온 토르스톤, 스페인에서 온 기옘, 중국에서 온 양과 옌,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하미드, 그리고 어제부터 봉사를 시작한 보팔 출신의 스바키까지.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공을 살려 장기간(최소 2주 이상)동안 한두가지 작업에 몰두했다.
내가 그들과는 다른 목적을 갖고 삼바브나 클리닉에 온 것은 맞지만, 그래도 그들이 부러웠고 멋있어 보였다. 삼바브나 클리닉을 알게 된 경로와 머무는 기간은 각기 달랐지만, 다들 하나 같이 삼바브나 클리닉의 철학과 실천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다국적대기업-화학물질에 대항하여 (양의 뿐만 아니라) 인도 전통 의학을 활용하고, 직접 약초를 재배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그림 2 이날 아침, 나는 약의 각종 정보와 제조일자가 적힌 종이를 약병에 붙이는 일을 도왔다.
보팔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이는 Bhopal Group for Information and Action의 설립자이자 ICJB(Internaitonal Campaign for Justice in Bhopal)의 활동가로서, 삼바브나 클리닉의 이사인 사띠유 선생님의 아내이기도 한 라치나(Rachna)였다. 사띠유씨와 마찬가지로 라치나씨에게도 어떤 강인함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인터뷰에 앞서, 내가 영어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 참사 관련 자료를 건넸더니 꼼꼼히 읽어보고는 ‘그래도 보팔의 경우보다는 낫다. 아무리 작더라도 법적으로 처벌을 받은 것 아니냐’고 했다.
피해자들의 법적인 투쟁을 많이 도와 온 그녀에게 주로 물어본 것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의 피해 등급(단계)를 둘러싼 정치를 간략히 설명하면서 보팔의 상황과는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 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등급화는 피해자들 간의 연대를 끊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유니언 카바이드는 가스 참사의 피해자들을 다음의 3단계로 분류했다 : Permanent Injury(40명), Temporary Injury(3만3천명), Minor or No Injury(52만7천명). 유니언 카바이드의 분류방식대로라면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조차 피해 주민 92%가 Minor or No Injury에 해당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다른 단계를 받은 이웃들도 있었지만, 큰 갈등으로 번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니언 카바이드가 인정한 피해자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피해 단계를 둘러싼 불화는 없었다. 또 그녀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피해자들이 서로가 아닌 체계(system)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보팔 참사의 모든 피해자들이 Permanent Injury를 받도록 인도 총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피해 단계의 문제를 이야기해주었더니, 라치나는 분개해하면서, 증상이 아니라 (화학물질에의) 노출이 무조건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에는 사띠유씨를 마지막으로 만나, 미리 준비했던 외장하드와 기부금을 전달했다. 그리고 커뮤니티 워커인 프림(Prem)의 도움을 받아 유니언 카바이드 인근 지역 3곳에서 지하수 샘플을 구했다. 첫번째는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에서 남동쪽으로 750m정도 떨어진 샤크티 나가르(Shakti Nagar)(23°16'36.4"N 77°24'55.4"E), 두번째는 북동쪽으로 650m정도 떨어진 프리트 나가르(Preet Nagar)(23°17'10.9"N 77°24'53.6"E), 세번째는 동쪽으로 200m정도 떨어진 나브지번 콜로니(Navjivan Colony)(23°16'52.4"N 77°24'54.5"E)이다. 이들은 샘플을 부탁하셨던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님께 전달해드릴 계획이다. 이로써 보팔에서의 모든 공식적인 일정을 마쳤다. 오후에 나는 짐을 쌌고, 삼바브나 클리닉의 자원봉사자 친구들과 스태프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보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현지에서 보팔 참사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나의 원래 학위논문 주제인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해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여러 접근 중 하나는 <span 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