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문]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25주기
선 언 문
25년 전 우리나라의 참혹한 산재직업병 현실을 증거하는 두 사건이 잇달아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15세 소년노동자 문송면의 수은중독 산재사망 사건과 곧 이어 터진 대규모 집단 직업병 사건,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 그것이다. 문송면의 죽음과 원진 노동자의 참혹한 직업병 현실은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난 25년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노동안전보건영역은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각 단위의 노동조합에서 안전보건 전담부서 또는 안전보건 상근 간부가 배치되어 활동하고 있다.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활동영역은 과거 산재보상 관련 요구에서 유기용제중독, 중금속중독 등의 작업환경 개선 요구를 거쳐 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질환 등 노동조건의 개선 요구로 그 범위가 넓어졌으며,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 산재보험 개혁 등의 사회보험/보장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 역시 확대되어 산재예방교육 사업주 의무화, 물질안전보건자료 등의 노동자 알권리 보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노사 동수 구성 및 의결권 강화, 작업중지권 등이 법에 담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안전보건운동의 25년에는 성과보다 더 깊고 심각한 그늘이 있다. 여전히 하루에 7-8명씩(연간 2,500-2,700명씩) 사망하고 있는 심각한 산재사망 문제가 그 단적인 예이다. 반면 이렇게 수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음에도 그 책임이 있는 사업주에게는 솜방방이 처벌만 반복되고 있어서 노동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 효과가 난망한 상황이다. 즉, 사실상의 '기업살인'에 대해서도 사업주 구속이나 징역형은 거의 드물고 대부분이 약소한 벌금 또는 과태료로 끝나고 있는 실정이어서, 사업주로서는 돈이 많이 드는 산재예방조치를 취하느니 값싼 벌금이나 과태료로 때우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또 소규모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와의 상대적 불평등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원하청간 불평등한 관계, 불평등한 고용관계를 이용하여 산업재해 예방 책임과 사고 후 책임의 법적문제까지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산재보험제도 역시 매우 취약한 상태로 놓여 있다. 현재 보고되고 있는 산업재해 건수보다 실제로는 3배 이상 규모의 산업재해 사례가 은폐되고 있으며, 적지 않은 노동자(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체계의 바깥에 방치된 채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의 불충분성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산재를 당하면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즉, 치료를 마친 후 원직장으로 복귀하는 비율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고,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25주기’ 추모조직위원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범한 확산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산재직업병 상황의 심각화로 귀결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명실상부하게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실현하기 위해, 그리고 25년 전 사망한 문송면과 원진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활동을 지속할 것을 다짐···한다.
하나, 사회적 약자·소수자 노동자의 보호활동을 조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으로 인한 고통이 집중되고 있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 여성, 이주, 장애노동자 등 사회적 노동약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여야 한다.
하나, 산업재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산재직업병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안전·보건상 책임과 의무를 원청사업주에게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산재사망 등 중대재해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업주의 처벌 강화이다. 원청사업주의 책임성 강화와 산재 사망 등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하나, 노동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노동의 가치를 달리하여야 한다. 임금을 넘어 건강으로, 장시간 노동이 아닌 적정노동을 통한 인간다운 삶으로, 야간근무가 아닌 밤에도 잠잘 수 있는 노동으로 우리 노동의 기준과 가치를 바꾸어야 한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는 것”을 넘어 서서 이제는 “건강하게, 여유롭게, 즐겁게 일하는 것”으로 그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
하나,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사회보험/보장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산재보험 적용대상의 전면적 확대와 각종 진입장벽의 철폐, 그리고 적절한 재활서비스를 통한 직업복귀와 사회복귀의 활성화 등 산재보험과 사회보험/보장의 ‘근본적’ 제도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 굳건한 연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노동자와 전문가, 다양한 활동가들의 굳건한 연대는 노동자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해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또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시민의 안전과 지역의 환경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와 환경운동과의 상시적 연대가 필요하다.
2013년 6월 30일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25주기 추모제에서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25주기 추모조직위원회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