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저귀에서 나온 '독성물질 극미량'은 얼마였을까?
최예용
0
3632
2017.02.05 08:25
[취재파일] 기저귀에서 나온 '독성물질 극미량'은 얼마였을까?
출처 : SBS 뉴스 2017 2 4
출처 : SBS 뉴스 2017 2 4
이 기사를 어느 눈 밝은 한국인이 국내로 전했고 아기 기저귀를 많이 사서 많이 쓰는, 그래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아이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도 전달됐습니다. 설 연휴기간 이 소식은 맘스홀릭 등 카페를 타고 퍼져나갔고 국내 언론 중에서 제가 찾은 첫 기사는 1월 31일 MBN 기사였습니다. 좀더 상세한 내용은 2월 1일 연합뉴스에 실렸습니다. P&G에서 내놓은 "극미량이 검출됐기에 안전하다"는 내용도 기사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뒤 여러 매체에서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나왔지만 큰 반향은 없었습니다.
2월 3일 '단독' 말머리를 단 어느 유력신문의 기사가 나오면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방향성에 논란이 있을지언정 이 신문의 어젠다 세팅과 영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앞선 매체들의 보도과 비교하면, 정부기관(국가기술표준원)이 샘플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 말고는 그리 진전된 내용이 없었지만 이 기사가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 때 뼈아픈 학습을 한 기억이 있었기에, 유통업체들의 대응도 신속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문제의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를 팔았던 롯데마트가 먼저 2월 2일부터 판매 중단 조치를 했고 이마트는 3일 오전부터, 홈플러스는 오후부터 판매 중단에 들어갔습니다. 만약 독성물질이 검출된 게 사실이고 이로 인해 피해자라도 발생한다면 유통업체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선제적 조치를 한 것입니다. "정부 조사 착수", "대형마트 판매 중단" 이런 내용들이 갖춰지면서 이후 SBS를 비롯한 다른 매체들도 이 내용을 기사로 썼습니다.
2월 1일 연합뉴스의 기사를 봤을 때는, 받아 쓸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P&G 해명대로 '극미량'이 검출됐고 의도하지 않고 혼입될 수 있는 '비의도적 혼입'이라면 인체에 해로울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2월 3일 시점, '극미량'이라는 게 과연 얼마였는지, 정말 '극미량'이 맞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기술표준원에서도 그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지 않다 했기 때문에 결국은 P&G를 통해 받아야했습니다. 3일 오전부터 수십 차례 통화와 문자 메시지, 카톡, 메일을 거친 끝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4일 오전까지 이 수치에 대해 명시한 기사는 SBS와 다른 신문 1곳 외에는 없었습니다.)
P&G는 먼저 프랑스의 '6천만 소비자들' 조사에서 자사의 기저귀에서 검출됐다고 하는 수치라고 강조했습니다. 해당 매체의 '주장'이라는 겁니다. 그 주장이 맞다는 전제 하에 전달받은 수치는 놀라웠습니다.
먼저 다이옥신은(퓨란류) 0.000178 pg-TEQ/g이 검출됐다고 합니다. pg은 1조분의 1 g입니다.(TEQ는 다이옥신 중 가장 독성이 강한 걸 기준으로 한, 상대적인 독성값을 뜻합니다.) 1그램에 0.000178pg-TEQ가 들어있다는 겁니다. 이게 어느 정도일까요. 다이옥신은 기저귀엔 물론 들어가면 안되는 물질이기 때문에 기준치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교하려고 가져온 게 EU의 원유 지방, 우유에 들어있는 지방에 해당하는 기준치인데, 6 pg-TEQ/g이라고 합니다. 6을 넘지 않으면 괜찮다는 거죠.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에서 검출됐다는 수치 0.000178 pg-TEQ/g는, 우유 지방 기준치와 비교하면 3만 3천 분의 1 수준으로 적게 나왔습니다. 검출됐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 정도로 나온 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페스티사이드, 살충제입니다. 여기서 검출된 살충제 성분량은 0.003 ppm이라고 합니다. ppm은 100만분의 1로, 1,000,000g에 들어있는 용질의 g 수입니다. 살충제 성분은 농산물에서도 간혹 검출될 수 있기 때문에 EU에서 정한 잔류 살충제 성분의 1일 허용 섭취량(ADI)이 있습니다. 0.01 ppm입니다. 기저귀에서 검출된 양은 그 기준의 3.3분의 1입니다. 다이옥신에 비하면 대단히 많은 편이긴 합니다만, 허용 섭취량 기준치의 30% 수준으로 적게 나온 것입니다.
'극미량'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P&G 해명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P&G는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입니다. 기저귀만 해도 국내에서 10% 넘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난 뒤엔 그저 "극미량이 검출됐으니 안전하다"로만 일관했습니다. 앞서 기사를 쓴 다른 매체에서 P&G에 얼마나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P&G에서는 두루뭉실하게 '극미량'이라고만 해명하기보다는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프랑스 매체의 기사가 사실이라고 해도 그 수치는 이 정도라서 문제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상황이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물론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보듯, 업체의 해명을 그대로 믿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식품이든 공산품이든 제조, 판매, 유통업체들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작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늘상 차고 있어야 하는 기저귀이다 보니까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찜찜하고 불안합니다. 기왕이면 이런 식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는 업체 것을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소비자들 불안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에 그럴수록 업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설명해야 했다고 봅니다.
언론의 역할도 그렇습니다. 프랑스 매체의 보도, 이어진 한국 매체의 보도, 판매 중단, 정부 조사 착수, 이런 내용으로 기사 쓰는 건 아주 어렵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기사를 쓰면 소비자의 불안은 여전하거나 더 증폭될 것이고 그 업체의 제품은 그런 문제 있는 제품이 될 겁니다.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면 차라리 낫지만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이 역시 적지 않기에,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나온다 해도 불안이 해소되진 않습니다. 근거는 부족하고 막연하지만 어쩐지 찜찜한 그런 불안, 소비자들의 그런 불안을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덜어주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니었을까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기자로 일하며 식품 위해성과 관련한 취재를 할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2004년 이른바 '쓰레기 만두' 사태를 비롯해 2007년과 2008년은 '쥐머리 새우깡' '참치캔 칼날'에 이어 '멜라민 파동'까지 식품 이물질과 유해물질 기사가 넘쳐났던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과연 제대로 취재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것일까, 소비자 불안을 조장하거나 업체를 매도하진 않았나, 하고 자성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래저래 사회가 어수선하고 불신이 팽배한 2017년, 어떻게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기저귀' 소동이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기술표준원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겠지요. 빠르면 2주 정도 뒤에 나올 듯합니다.
출처 :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