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불산1년]기업편의가 국민생명안전보다 중요할 수 없다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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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 15:06
[한마당-임항] 구미불산사고
국민일보 2013년 9월27일자
경북 구미에서 국내 초유의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27일로 1년이 됐다. 그날 오후 3시43분 구미시 산동면 국가산업단지 내 불화수소(불산) 제조업체인 휴브글로벌에서 불산을 옮기던 하도급업체 근로자 중 한 명이 미끄러져 탱크로리의 밸브를 밟았다. 탱크로리에 들어 있던 불산 19t 가운데 6t이 누출됐다. 소방대원과 경찰들은 공장과 시설의 구조를 몰라 6시간 넘는 사투 끝에 겨우 밸브를 찾아 잠갔다. 방호복을 착용하지 않았던 현장의 근로자 5명이 숨지고, 마을 주민 등 18명이 부상했다.
구미 산단의 사고는 이어지는 일련의 화학물질 사고의 신호탄이었다. 올 들어 1월 29일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한 것을 비롯해 상주 염산누출, 청주 불산누출, 구미케미칼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등이 잇따랐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각종 화학물질 사고는 60여건에 이른다. 국회는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신규화학물질과 연간 1t 이상 등록대상 기존화학물질에 대한 등록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을 6월에 제정했다.
그렇지만 몇 달 지나지도 않아서 과도한 기업부담을 이유로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당정 협의에서 2015년부터 적용될 이들 법의 시행령을 통해 규제수위를 낮추기로 합의했다. 화학물질 사고를 낸 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화관법 조항의 적용범위를 ‘고의적·반복적 위반기업’으로 좁히기로 했다. 화평법에서도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은 등록을 면제하기로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도 망각하는 존재인가 보다. 화학물질 사고가 잇따를 때에는 산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을 질타하고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사고가 잠시 뜸해지자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며 규제완화 바람이 거세다. 그러나 기업들의 편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화학물질 관리는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분야이므로 시행령 제·개정 과정에서 환경당국의 판단이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