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가장 바람직한 생명정치는 놔주는 것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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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10:53
가장 바람직한 생명정치는 놔주는 것
한겨레신문 2017 5 19
남종영 기자 ‘환경 논픽션’ 돌고래편
돌고래 전수조사부터 춘삼이 새끼까지
6년 동안 채집한 ‘돌고래 목소리’ 전달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사 프로젝트
남종영 지음/한겨레출판·1만6000원
자연의 감각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아마도 고래는 살짝 더 감각적이다. 그들이 평생 하기로 정한 일이 여행과 친교와 사랑인 것부터 그러하고, 악장이 나뉜 음악처럼 4~6개의 테마로 구성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혹등고래), 무리에서 쫓겨난 다른 종류의 기형 고래를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향유고래). 수 분에서 수십 분마다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으면서 육지로 올라왔다가 바다로 되돌아간 엉뚱한 종. 진정한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예술적이며, 박애를 실천하고, 진화의 주류를 거스를 만큼 용기 있다.
고래는 몇 년 사이 한국 사회를 크게 일깨워놨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가해 행위의 은폐’와 ‘죄의식 소거’로 요약된다.” 자신은 동물학대와 관계없다고 믿는 이가 많았지만 실은 학대의 오랜 가담자였음을 알게 된 것.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로 대표되는 해방된 “돌고래들은 은폐된 가해를 드러냈고 사람들의 죄의식을 자극해 역사를 바꾸었다.” 돌고래쇼와 수족관을 찾는 일, 바다에 손님으로 찾아가지 않고 고래를 인간의 땅으로 납치하는 일. 학대였다.
불법 포획돼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사 문제를 신문 1면에 실으며 공론화한 <한겨레> 남종영 기자가 쓴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엔 제돌이 프로젝트의 전모가 기록됐다. 2011년부터 시작한 전국 수족관 돌고래 전수조사부터 동물지리학 석사 논문(영국 브리스틀대)과 기사를 쓰기 위해 수행한 현장조사, 인터뷰 등 6년치 자료를 볼 수 있다. 지은이가 펴낸 첫번째 고래 책인 <고래의 노래>(2011)가 세계를 돌며 만난 고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우리 고래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 첫 돌고래쇼는 1984년 5월1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관람하려는 목적으로 서울대공원에서 펼쳐졌다. 돌고래들은 30여년 동안 쇼에 동원되었는데, 지난 7일 서울대공원 최고참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가 마지막 공연(생태설명회)을 했다. 둘은 오는 22일 고향 제주로 돌아가 야생 적응훈련을 하고 7월 중으로 야생 방사될 예정이다. 그 전에 ‘삼팔이’처럼 훈련장을 스스로 떠날지도 모르지만.
불법 포획됐다가 야생에 방류된 아시아 첫 돌고래 제돌이뿐 아니라 삼팔이, 복순이, 춘삼이, 태산이 등 돌고래 해방기가 두루 실렸다. 인간이 계획을 세우거나 말거나 가두리의 빈틈을 뚫고 야생에 돌아갈 시기를 스스로 정한 삼팔이, 돌고래쇼를 거부한 복순이, 아예 수족관형 돌고래로 길들지 않은 태산이…. “야생 방사 과정에서 인간은 전면적으로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과학은 언제나 동물의 의지 앞에서 미끄러졌다.” 어쩌면 “수족관에 갇혀 쇼를 보여주며 사는 존재들”은 우리 인간일지 모른다.
지은이는 인간이 돌고래를 다룬 방식을 복기하면서 인간이 모든 생명을 다루는 방식으로 논의를 넓힌다. 이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지배하는 정치의 거울 이미지”이기도 해서다. 지배받는 공간은 거의 늘 “소수자의 삶”. 지배하려는 인간에게 돌고래가 보여준 모습은 “저항”이었다.
지은이는 전문적인 최신 자료와 인터뷰를 생생한 르포에 담는다. 이러면 감각이 지식을 순간순간 압도한다. 그리고 이 효과는 중요하다.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은 “자연을 ‘아는 것’은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자연과 관련한 사실들은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기대·공감·동정·존경·사랑…. 이런 감정들이 기름진 땅을 이루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물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바다로 돌아간 지 1년 된 제돌이를 만났을 때 지은이는 “상쾌한 아침처럼 내 몸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자유스러웠다”고 청량하게 썼다.
“물알로”(물 아래로). 제주 해녀는 돌고래가 지나가면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동료가 아니라 돌고래한테. 그러곤 수면 위로 올라 자리를 피해준다. 돌고래와 오래 공존한 이들은 “길을 비켜주고,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공존이라는 “가장 바람직한 생명정치는 그들을 놔주는 것”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