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간제돌이3] 잡아먹힌 조련사, 우리도 예외일 리 없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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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14:29
7월 18일은 공연돌고래 제돌이가 갑갑한 수족관을 벗어나 드넓은 바다로 돌아간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돌이가 제주도 어디선가 간혹 등장한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리는데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고래들이 좁은 수족관에 갇혀있거나 그럴 예정에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돌이 방사 1년을 맞아 고래 사육과 혼획의 문제 등을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
잡아먹힌 조련사, 우리도 예외일 리 없다
[바다로 간 제돌이, 그후 1년③] 씨월드 사고 다룬 다큐멘터리 <블랙피쉬>
2014 7 18 오마이뉴스 조세형
"오렌지카운티 보안관국입니다."
"씨월드에서
사람이 죽어서 신고하려고 해요. 고래가 조련사를 잡아먹었어요."
"고래가 조련사를
잡아먹었다고요?"
"그래요."
2010년 2월 24일, 씨월드
사망사고를 알리는 긴급 전화와 함께 영화 <블랙피쉬>는 시작된다. 씨월드는 미국 올랜도·샌디에이고·샌안토니오에 있는 해양
테마공원이다. 범고래와 조련사가 환상적인 공연을 펼치는 '샤무쇼'는 씨월드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사건 발생지는 올랜도 씨월드. 사망자는 돈 브랜쇼라는 여성으로 씨월드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수석 조련사였다. 그녀는
'틸리쿰'이라는 범고래와 공연을 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씨월드는 이 사건이 브랜쇼의 말총머리가 틸리쿰을 자극해서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이며,
틸리쿰은 공격적인 고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련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씨월드의 주장에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블랙피쉬>는 실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유괴된 두
살짜리 수컷 범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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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랙피쉬>의 한 장면 | |
ⓒ dogwoof |
1970년, 범고래 떼가 사람들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다. 범고래들은 사람들이 새끼들만 노린다는 걸 알고 있다. 범고래 몇 마리가 사람들을 따돌리는 동안, 다른 범고래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도망친다. 그러나 고속력 어선에 폭탄, 항공기까지 동원한 추격자들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새끼 범고래들이 포획되지만, 그들의 가족은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당시 포획에 참여했던 존 크로는 어미와 새끼가 애타게 울부짖는 광경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비록 돈 때문에 그 일을 했지만, "아이를 유괴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1960년대 전까지 범고래 사육·조련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을 현실로 만든 사람은 미국의 테드 그리핀이다. 1965년, 그리핀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그물망에 걸린 범고래 한 마리를 사들였다. 그는 뒤따라오는 범고래 가족을 물리치며 미국 시애틀의 수족관으로 그 범고래를 데려왔다. 그리고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준 그 범고래를 타고 다니는 묘기를 부리면서 TV에 출연하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리핀의 성공은 범고래의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알리는 계기가 되어 범고래 포획 붐을 일으켰다.
1983년, 북대서양에서 두 살짜리 수컷 범고래가 포획됐다. '틸리쿰'이라고 불린 이 범고래는 씨랜드라는 공연업체로 이송됐다. 씨랜드 범고래들은 저녁 공연을 마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어둡고 비좁은 수족관에 14시간 이상 감금됐고, 이곳에서 틸리쿰은 동료들의 공격에 시달리며 온 몸에 상처를 입었다.
전직 씨랜드 조련사인 크리스토퍼 포터는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틸리쿰을 그곳에 가둔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과도 같았다"고 증언했다.
세 명의 희생에도 왜 틸리쿰을 비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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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중인 틸리쿰 영화 <블랙피쉬>의 한 장면 | |
ⓒ dogwoof |
1991년 2월, 씨랜드에서 파트타임 조련사로 일하던 수영 선수 켈티 번이 발을 헛디디면서 범고래 수족관에 빠졌다.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틸리쿰을 비롯한 범고래들이 그녀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번의 뛰어난 수영 실력은 그녀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범고래들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번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다가 숨지고 말았다.
그 후 씨랜드가 문을 닫으면서 틸리쿰은 씨월드로 팔려갔다. 그리고 1999년 7월 아침, 씨월드 직원이 나체의 남자 시신을 등에 태운 틸리쿰을 발견했다. 대니얼 듀크스라는 이 남자는 범고래와 함께 신비 체험을 하려고 벌거벗은 채 물에 들어갔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정신이상자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2010년 2월 24일, 틸리쿰은 함께 공연 중이던 돈 브랜쇼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브랜쇼의 시신은 심하게 훼손된 채로 수습되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씨랜드와 씨월드는 틸리쿰의 공격성을 부인하며 희생자의 실수로 벌어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틸리쿰이 먼저 조련사를 공격했다고 증언한다. 두 번째 사망자인 대니얼 듀크스 역시 검시 보고서에는 신체 일부가 뜯겨져 있는 등 범고래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은 증거가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사건 외에도 범고래가 조련사를 공격한 사례는 70건이 넘는데, 전직 씨월드 조련사들은 이 사건들도 대부분 은폐되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숙련된 조련사들이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은 "범고래와 함께 물에 있는 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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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고래에게 공격당하는 조련사 범고래가 조련사를 위에서 덮치고 있다. 영화 <블랙피쉬>의 한 장면. | |
ⓒ dogwoof |
씨월드는 이토록 문제가 많은 틸리쿰을 왜 비호하는 걸까? 그 이유는 틸리쿰의 정자에 있다. 씨월드는 범고래 인공번식에 성공함으로써 야생 범고래 포획의 잔인성을 비난하는 여론에서 벗어났다. 번식력이 뛰어난 틸리쿰의 정자는 씨월드 번식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틸리쿰을 포기하는 건 엄청난 수입원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범고래는 매우 다정한 동물이며, 야생의 범고래가 사람을 해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틸리쿰은 왜 조련사를 공격했을까? 범고래가 수족관에서 사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평생 욕조에 갇혀 사는 것과 같다. 감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쇼를 강요받다 보면 어느 순간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또한 범고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버리지 않으며, 야생에서 서로 다투는 일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씨월드 범고래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데려와 인위적으로 조성한 무리에서 살아간다. 사람에 비유하면 서로 다른 국적과 문화를 지닌 인종들이 섞여 사는 격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서로 간에 마찰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수족관에는 공격을 당해도 피신할 공간조차 없다. 틸리쿰은 동료들의 공격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런 상황이 분노를 누적시키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야기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적인 시설을 자랑하는 씨월드는 범고래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범고래의 평균 수명이다. 씨월드는 범고래가 평균적으로 25~30년을 살며, 수족관에서는 야생에서보다 오래 산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후 야생 범고래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암컷은 100년 이상, 수컷은 50~60년을 산다고 한다.
자연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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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의 범고래들 영화 <블랙피쉬>의 한 장면. <블랙피쉬>는 제10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는데, 시기적으로 돌고래 '제돌이'의 자연복귀와 맞물려 화제가 되었다. | |
ⓒ dogwoof |
돈 브랜쇼가 사고를 당한 후 미국 노동안전위생국은 씨월드를 고발했다. 그리고 법원 판결에 따라 씨월드 조련사들은 장벽을 사이에 두고 범고래와 분리된 채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후 <블랙피쉬> 상영과 함께 가열된 범고래 쇼 반대 여론은 관련법 제정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리처드 블룸 캘리포니아 주 의원은 범고래가 '사육에 적합하지 않은 동물'이라고 주장하며 공연·오락을 목적으로 범고래를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범고래 복지·안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씨월드 범고래 공연은 폐지될 전망이다.
씨월드는 범고래들을 야생에 복귀시키거나, 야생복귀가 불가능할 경우 바다에 보호구역을 만들어 풀어줘야 한다. 범고래의 인공번식 역시 금지된다. 이 법안은 동물보호단체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막대한 수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권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복귀와 서울대공원의 동물 쇼 폐지는 인간의 볼거리 때문에 고통 받는 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동물 쇼는 세계적으로 금지되는 추세에 있다. 동물 쇼에 생명존중 따위는 없다. 동료인 지구생명체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오만과 탐욕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급기야 업계 종사자의 죽음까지 초래함을 똑똑히 지켜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고래 관광업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래를 관찰하는 고래 관광업을 통해 고래의 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하지 않고도 그들과 만날 수 있다. 동물을 가두고 쇼를 강요하는 것이 더 이상 오락으로 간주되지 않는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