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 붕어 없고, 효소 식품에 효소 없다?
[안종주의 '건강 사회'] 효소의 건강학
프레시안 정기칼럼 2013년 6월26일자
최근 들어 '○○ 효소' 또는 '○○ 효소 식품'이 요란한 제품 선전과 함께 건강에 매달리는 한국인들의 가슴과 머리를 파고들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은 물론이고 각종 잡지와 신문, 공중파 방송과 유선 방송 채널 등 대중 매체에서도 이를 다루는 기사나 광고성 기사 그리고 관련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있다.
상품으로 팔리는 '○○ 효소' 또는 '○○ 다이어트 효소', '○○ 효소 식품'뿐만 아니라 가정집에서도 과일, 야채, 산야초 등을 설탕에 재워 만드는 '○○ 효소' 또는 '○○ 효소액'이 이미 유행처럼 번졌다. 컬러 푸드, 슈퍼 푸드 등의 이름과 함께 엔자임 푸드, 즉 효소 식품이 삽시간에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피곤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 한국 사회도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사는 사람들이 더욱 늘고 있는 시점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나 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최근 자연 식품, 천연 식품, 발효 식품 등에 대한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지나친 찬사와 조명이 효소 식품 유행의 토대를 굳건히 마련했다. 식품 회사의 대대적인 광고 선전도 여기에 한몫했다.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해줘 몸이 가벼워진다," "술이 더 잘 깬다," "피곤하고 부어있는 느낌이 사라진다," "변비가 사라진다," "땀을 덜 흘린다," "다이어트와 건강 모두를 챙길 수 있다…."
이러한 광고 선전이 모두 사실이라면 효소 식품은 완전 식품이요 기적의 식품이다. 아니 식품이 아니라 약, 그 가운데서도 만병통치약이다. 하지만 이런 요란한 광고 선전 내용은 단 한 번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사람들은 효소라는 말 자체에 귀가 번쩍 뜨였다. 과거 중·고등학교 때 효소의 역할과 중요성을 익히 배웠기 때문이다. 잠시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배웠던 것을 떠올려 보자. 우리 몸은 각종 효소가 있어 생명을 유지해주는 생리 활동이 일어난다. 생체 화학 반응에 효소가 없으면 안 된다. 모든 생명체는 효소를 지니고 있어 생명을 유지한다. 세포가 증식하고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는 데, 전분을 생체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당으로 전환하는 데 효소는 필수적인 구실을 한다.
효소 없는 생명체는 더는 생명체라 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이나 미생물도 마찬가지다. DNA(디옥시리보핵산·생명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유전 물질) 중합 효소 등 세포 증식, 즉 유전자 증식에 필요한 기초 효소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들어 있다.
물론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 등은 서로 다른 효소도 지니고 있다. 효소는 기본적으로 단백질 분자다(주효소가 아닌 조효소의 경우 비타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산화환원효소(oxidoreductases), 전이효소(transferases), 가수분해효소(hydrolases), 분해효소(lyases), 이성질화효소(isomerases), 연결효소(ligases) 등 여섯 가지로 나눈다.
우리가 이런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알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상식인이라면 적어도 효소가 몸에 꼭 필요하고 유익한 물질이라는 정도는 안다. 그런데 만약 몸이 피곤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등 만병이 우리 몸에 ○○ 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 몸에는 수천 가지의 효소가 있다. 효소는 소화 흡수, 정혈, 해독, 면역, 배출, 합성에 관여한다. 따라서 효소가 부족하면 영양분 흡수가 어렵고 독소가 쌓여 면역력이나 저항력이 떨어진다. 그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그런데 패스트푸드와 굽고 삶고 튀긴 음식을 즐겨 먹는 현대인의 식습관은 필연적으로 효소의 부족을 가져온다.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진 단백질인 효소는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소화하고 세포를 재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화학 작용을 돕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효소는 인체에서 무제한으로 생성되지 않고, 나이가 들수록 급격히 감소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화 불량, 기억력 감퇴, 만성 피로 등이 쉽게 생기는 이유다. 따라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효소 섭취가 필수다.
아주 날카로운 통찰력과 효소나 인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곧바로 엉터리 같은 이야기로 일축할 것이다. 하지만 효소는 인체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좋은 물질이라는 지식이 머리에 각인돼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솔깃하게 들리게 마련이다. 그런 이들은 당연히 효소 제품을 사먹어 볼까 또는 야채와 산과 들에서 뜯거나 채취한 약초나 식물 그리고 과일로 '효소액'을 만들어 먹어볼까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 글은 ○○ 효소 또는 ○○ 효소 식품을 먹고 있거나 먹으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산야초 효소액 등 각종 '효소액'을 만들어 먹고 있거나 만들어 먹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효소 식품(enzyme food supplements)은 식용 미생물을 배양한 것 또는 식품에서 효소 함유 부분을 추출한 것 또는 이를 주원료로 하여 먹기 쉽도록 분말, 과립, 정제, 캡슐 등으로 가공한 것을 말한다.
우스갯말로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효소 식품에는 효소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효소 식품이나 우리가 효소액으로 알고 있는 산야초, 과일 추출물에는 효소가 매우 적은 양이 들어 있다. 효소 식품이란 말에 보통 사람들은 그 식품에는 온전히 효소만 들어 있겠거니 여기거나 대부분이 효소로만 구성돼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미생물이든 이들에게서 사람에게 유용한 특정 효소 또는 복합 효소 성분을 뽑아내 이를 제조, 가공해 만든 것만 효소 식품이라고 하지 않고 미생물 배양액을 효소 식품(제품)이라고 한다고 식품공전에 정의했으니 식품 업체들이 '○○ 효소' 또는 '○○ 효소 식품'으로 선전하며 판매하는 것이 불법이거나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효소로만 구성돼 있는 식품으로 오인하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효소 식품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효소 식품은 미생물 배양에 사용된 원료가 함유한 영양 성분과 미생물 대사 산물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효소 식품은 영양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들을 주원료로 사용함으로써 효소의 원료가 되는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을 보충, 공급해 준다. 따라서 효소 식품은 미생물 발효, 배양 과정을 통하여 일반 식품이 함유한 영양소를 체내 흡수가 잘 되도록 만들어 생체 이용률을 높인 식품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건강 기능을 활성화하는 특정 유용 성분이 없어 건강 기능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평소 적절한 식생활을 통해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을 섭취하고 있다면 일부러 비싼 돈을 주고 효소 식품을 사먹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몸이 허약한 노약자나 질병 등 때문에 건강한 식생활이 곤란한 사람의 경우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는데도 효소 식품을 사먹으면 오히려 지나친 영양 섭취로 인체에 역작용을 끼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효소 식품(enzyme food supplements)하면 주로 소화 효소 식품(digestive enzyme food supplements)을 뜻한다. 관련 제품도 주로 소화 효소 식품이 팔린다. 'supplements'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보충해 주는 구실을 하는 제품이다. 병치레나 일시적인 기능 저하로 위장의 소화 기능이 약해졌을 때 소화를 돕는 소화 효소가 들어있는 건강 보조 식품을 사먹으라는 것이다.
효소는 먹으면 우리 몸에서 곧 바로 분해돼 사라져
효소 식품과 관련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효소를 먹으면 이것이 몸에 그대로 흡수돼 뇌와 장기, 혈액 속에서 각종 항균 작용과 면역 기능, 생체 합성 등의 작용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단백질은 분자량이 크기 때문에 그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우리 몸의 위장에서 단백질은 펩신과 췌장 등에서 나오는 각종 소화 효소 때문에 아미노산으로 잘게 쪼개진다. 다시 말해 효소는 몸에 들어오면 소화 기관에서 더는 효소로 남아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효소 식품에 효소가 많아 우리 몸에서 효소 기능을 직접적으로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글머리에서 붕어빵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도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발효액 또는 단순 설탕 추출물까지도 효소나 효소액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세태이다. 추출물은 흔히들 '엑기스(Extracts, 줄여서 Ex)'라고 부르는 엑스로 설탕 등을 고농도로 매실 등 과일이나 야채에 부어 삼투압 현상으로 원료에 들어있는 유용 성분을 뽑아낸 것을 말한다.
미생물은 고농도의 염분(소금)이나 당분(설탕) 환경에서는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과채에 설탕을 잔뜩 부을 경우 우리가 기대하는 발효(유용 미생물의 증식)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산야초 효소, 당귀 효소, 매실 효소 등등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효소나 효소액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아니 잘못됐다. 그냥 산야초, 당귀, 매실 추출물(엑스)이나 극히 일부의 경우(설탕을 저농도로 넣고 잘 관리했을 경우) 산야초, 당귀, 매실 발효액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효소라는 말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문제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들 과채 추출물을 상시적으로 과량 마실 경우 지나친 당분 섭취로 인해 건강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발효가 됐기 때문에, 효소이기 때문에 그냥 설탕이나 당분과는 관련이 없으며 많이 마실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소금을 대나무에 넣어 몇 번을 굽든지 어찌하든지 간에 소금은 소금이어서 많이 섭취하면 건강을 해치듯이 당분은 당분일 뿐이다. 설탕이든, 과당이든, 포도당이든, 올리고당이든 지나친 당분 섭취는 몸에 좋지 않다.
효소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과잉 기대, 잘못된 지식은 자칫 우리 몸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매스컴에 버젓이 등장한다.
효소는 천연 식품을 발효한 것으로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나 내성이 없다고 전해진다. 특히 통발효 효소는 곡물에 들어 있는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해 주는 효과도 있다. 효소는 소화 이외에도 면역 체계를 유지해주는 기능도 한다. 면역 세포가 만들어지고 면역 세포가 세균을 분해하는 것이 모두 효소의 작용이다. 의학계에서는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효소를 섭취하게 하는 치료법을 널리 쓰고 있다고도 전해진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작용이 없는 식품은 없다. 포도와 토마토가 좋다고 하루에 100송이, 100개를 먹으면 되겠는가. 현미가 몸에 좋다고 현미밥을 하루에 100공기를 먹으면 몸에 부작용이 없겠는가. 효소 식품이든, 발효 식품이든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되지 굳이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이른바 효소 식품을 먹는다고 당신이 먹은 효소 식품에 든 약간의 효소가 몸에 들어온 병원균을 분해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의학계에서 만성 질환자에게 효소 치료를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효소 치료법이 정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면 '전해진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할 필요도 없다. 그냥 널리 쓰고 있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과거에도 '○○ 식품' 열풍이나 광풍 때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마구 돌아다닌 적이 있다. 비타민C 열풍, 멜라토닌, DHA(Docosa Hexaenoic Acid) 열풍 등과 같은 건강 기능 식품에 대한 이상 열풍 때에도 이런 비과학적 또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떠돌곤 했다. 효소 식품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상 열풍임이 분명하다.
비싼 돈을 주고 효소 식품을 구입해야 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제 차분히 효소 식품의 실체를 살펴보고 꼭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이 이를 구입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