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안전 '산란일' 아닌 '온도'
국회가 선진국들과 달리 세균오염과 품질하락을 막기 위한 유통·보관 온도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국내 계란안전의 핵심 문제로 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8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에게 제출한 ‘한국과 세계 주요국의 식품 및 축산물 유통과 안전기준 비교자료’에서 국내 법적 계란 저장온도는 15℃ 이하로, 계란 위생·안전을 저해하는 주범인 살모넬라균 증식을 억제하는 저온유통시스템(5℃~8℃)은 운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이 선별·포장(GP)시설을 거치는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계란중 일부가 GP시설을 거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계란 오염을 줄이기 위해 농장에서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일정한 냉장유통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 업자들로 인해 계란의 표면 결로와 같은 위생·품질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보고서에서 “계란 중심부의 온도가 상승하면 품질이 훼손되고 식중독균과 같은 미생물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일반적으로 계란의 품질과 위생은 가공·유통중 온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이 이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를 통해 ‘가능한 15℃’로 계란 유통온도를 정한 나라는 보기 어렵다. 육류, 우유, 신선식품, 냉장식품 등은 국제 수준의 유통온도를 따르지만 계란은 그렇지 않다.
축산물위생관리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작업장(원료란보관실, 식용란보관실, 검란실, 선별실, 세척실, 건조실, 포장실, 그 밖의 식용란 선별·포장에 필요한 작업실)의 적절한 내부 온도를 역시 15℃로 밝히고 있다. 반면 운반시설 기준으로 ‘적합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운반차량’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표현을 쓰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계란 생산·유통·소비 단계에서 다양한 온도기준을 설정해서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산란후 36시간이 지났거나, 선별·포장을 마친 계란은 운송을 포함해 7.2℃를 유지토록 하고 있다. 소매점은 계란 판매 온도 5℃를 지켜야 하며, 냉동한 계란은 판매할 수 없다. 포장된 모든 계란은 냉장보관 해야 한다는 라벨을 붙여야 한다. 슈퍼마켓, 레스토랑, 델리카트, 요리사, 호텔, 요양원, 학교 등은 예외없이 이 기준을 따른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는 품질 유지를 위해 건조한 계란제품만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3000마리 미만, 또는 계란을 전량 직거래하는 농가는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한살림, 아이쿱 등 생협에 납품하거나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에 유정란을 납품하는 우리나라 소농들과 달리, 미국의 가족농들은 계란유통에 따른 규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은 품질과 안전을 위해 난각의 천연 코팅층인 큐티클층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세척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유통 저장·온도 또한 신선란과 냉장란으로 구분해서 적용하고 있다. 신선란은 5℃ 이상 20℃ 미만, 냉장란은 0℃ 이상 5℃ 미만의 온도로 보관해야 한다. 계란 포장은 특A등급란의 경우 산란후 4일 이내, A등급란은 낳은 지 10일 이내, B등급란은 산란후 28일 이내 실시해야 한다.
계란에 대한 표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비슷하다. 포장재에 포장날짜, 판매(상미)기한, 가식(유통)기한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먹을 수 있는 가식기한이 판매기한보다 길게 설정된다. 미국의 경우 판매기한과 가식기한을 각각 30일과 45일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경제거래국은 ‘계란의 표시에 관한 공정경쟁 규약’을 통해 농가가 가식기한과 채란일 등을 표기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본 소비자단체가 가식기한과 채란일 등을 표기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은 1999년 상미기간 표시를 의무화하고 2010년 이 기간을 21일 이내로 정했다. 일본은 상미(판매)기한 표시를 강제하면서도 (가열해서) 먹을 수 있는 가식(유통)기한을 별도로 표시하고 있다. 특히 계절별로 온도차이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서 봄(4월~6월)·가을(10월~11월) 22.5℃, 여름(7월~9월) 27.5℃, 겨울(12월~3월) 10℃ 등 계절별로 각각 16일, 25일, 57일까지 산란후 가식기한을 정할 수 있게 했다.
선진국들은 계란의 세척방법보다 세척후 저온유통 온도가 미생물의 성장과 억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유럽은 신선란을 5℃ 아래에서 유통하지 못하도록 했다. 독일은 산란후 18일이 지난뒤에야 5℃~ 8℃로 냉장토록 하고 있다. 미국은 3000마리가 넘는 닭을 키우는 농장의 경우 산란후 36시간이 지난 뒤부터 7.2℃ 이하에서 계란을 유통하도록 정했다. 우리나라처럼 냉장유통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농민들이 냉장차량 구입을 놓고 고민할 일이 없는 셈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물세척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세균과 미생물이 침투할 수 있기에 물세척한 계란의 보존을 권장하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물세척할 경우 냉장유통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산란후 언제부터 어느 정도 온도에서 저온유통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기나 붓 세척도 물세척과 마찬가지로 규티클층을 손상시킬 수 있음에도 ‘가능한 15℃’란 애매한 기준외에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국내 계란유통업체들은 지키기가 어정쩡한 온도기준(0℃~15℃)보다 차라리 물세척한 냉장란(0℃~10℃), 그리고 천연 큐티클층을 살린 신선란(실온)으로 구분지어 유통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난각에 산란일자 표시를 의무화한 나라는 없다. 단지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유럽 국가들간 계란 교역을 위한 운송포장때 국가명과 함께 산란일,산란기간 등을 표시하도록 정했을 뿐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계란 난각에 산란일자를 표시해야 하는 이유로 계란을 장기간 사재기하는 유통관행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식약처는 2016년 6월 ‘계란안전에 대한 보고서’에서 보통 2개월~3개월, 길게는 6개월간 보관하고 수요에 맞춰 계란 출하를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그 해 12월과 이듬해 1월 두차례 걸쳐 17일간 전국 17개 시도에서 기획재정부, 지방자치단체, 식약처, 농산물품질관리원, 공정거래위원회가 공동으로 계란 사재기 및 유통·위생실태 합동점검을 벌인 결과, 계란 사재기는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축산물 가운데 유독 계란 유통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유통업체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식약처가 위탁한 연구용역 결과에 의하면 ‘주요 외국의 식품 보존 및 유통 온도 현황 및 설정 근거 조사’에 따르면 냉장온도 기준 강화에 대해 규모가 큰 기업들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중소규모 유통업체들은 비용증가를 이유로 난색을 표시했다.
지나치게 난각에 쏠린 계란 표시제는 농가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농식품부는 올 12월 계란 이력제 도입을 앞두고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계란이력제는 고유번호를 계란 난각에 농장과 계군의 고유번호를 입력해서 사육실태, 산란일, 농장유형을 비롯해 생산·유통·판매과정 등 인터넷과 연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유사한 정보를 다루면서도 식약처 난각표시 10자리와 농식품부 계란이력번호 15자리가 별도로 사용되면서 일선 농장들은 계란에 두가지 고유번호를 4줄에 걸쳐 표시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많은 숫자와 알파벳을 입력하려면 면적이 좁고 뾰족한 계란 정수리 부분이 아니라 면적이 넓고 둥그스레한 옆구리에 가로로 길게 고유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다수 양계농장들이 설치해 놓은 계란을 세워서 선별하고 옮기는 방식이 아니라 중간에 계란을 눕히는 공정을 추가로 삽입하거나 아예 계란을 눕혀서 옮기는 선별시스템으로 바꿔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농가 입장에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추가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국 권역별로 설치된 도축장과 집유장이 국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우유의 안전한 유통을 도모하는 것과 달리, 계란은 중소 유통업체 난립으로 안전성과 물류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식약처는 중소 농장도 계란선별포장업 등록을 하고 GP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도축장과 집유장처럼 거점형 대형 GP시설 유통을 의무화해서 현재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GP시설을 경유한 안전계란의 유통 비중 제고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동안 중소 GP시설이 속속 들어서면 가축방역 강화, 유통구조 개선, 계란 위생·안전 제고에 이르기 까지 국내 계란산업을 선진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아 온 거점형 대형 GP시설 설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선별·포장업등록 GP시설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식약처가 GP시설 유통 의무화를 서둘러 시행하면서 먼거리에 있는 GP시설에 계란을 실어 나르는 물류비를 내세워 수집·유통상인들이 계란 값을 더 낮출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난각에 산란일자를 표시할 경우 주말이 끼거나 판매 지연으로 며칠 지난 계란에 대한 가격후려치기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농가들의 걱정도 만만치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GP시설을 거치는 계란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정도이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은 80%에 달하고 있다.
최근 생산자, 식약처, 소비자간 갈등에서 보듯, 계란안전을 둘러싼 의견대립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부처,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간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채 의견차이만 더 늘리고 있다.
식약처는 오랜 의견수렴을 거쳐 정부합동안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때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뤄진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이관에 따라 축산물 위생·안전 업무를 넘겨준 농식품부가 계란안전대책에 대해 우려와 반대의사를 표시했지만 제대로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식약처는 그동안 업계, 소비자와 달리 생산자 의견수렴에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부족한 의사소통이 오늘날 계란안전에 대한 의견차이를 크게 벌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이에 대해 “근본 문제를 살피지 못한 계란안전대책이 ‘안전(安全)’보다는 ‘설전(舌戰)’을 도모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나라 계란 생산·유통 소비의 실상을 제대로 진단하고, 앞선 외국 사례를 본보기삼아 합리적이고 안전한 대책마련을 위한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나라 계란산업이 처한 현실, 기로 선진 외국의 사례를 제대로 알리고 공유하며,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유통업체들이 함께 계란산업의 선진화를 함께 고민해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해보고 고치자는 것은 불필요한 부담을 떠안기는 일을 당연시 하는 일인 만큼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회의를 열고 의견을 들었다는 것만을 내세워 나름의 과정을 거쳤으니 문제 없다며 기존 입장을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꼭 해야 하는 일은 제쳐놓고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일에 열올리며 갈등을 벌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며 “소비자에게 계란안전을 위해 다른 나라들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우리나라엔 무엇이 필요한지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