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커피믹스의 카세인나트륨은 해로운가?
커피믹스의 카세인나트륨은 해로운가?
어느 유명 식품회사가 지난 2010년 12월 조제커피(커피믹스) 시장에 새로 진출하면서 “우리는 커피믹스 제품에 화학합성품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진짜 우유를 사용한다.” “그녀의 몸에 카제인나트륨이 좋을까? 무지방 우유가 좋을까?” 등의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마치 ‘카제인’(카세인이 올바른 표기법임) 성분이 몸에 좋지 않은 물질인 것처럼 오인한 소비자들이 많다.
소비자들은 카세인나트륨이 화학합성품이라는 말에 대부분 기분이 꺼림칙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웰빙 바람을 타고 요 근래 화학이나 합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는 곧 몸에 좋지 않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싸구려나 질 낮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카세인과 우유를 비교한 광고 탓에 카세인을 우유와 관계없는,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화학물질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이는 교묘한 상술과 광고가 빚어낸 한 편의 코미디다. 카세인은 우유 성분이고 단백질이므로 결코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말한 ‘카제인나트륨’은 카세인에다 나트륨(Na, 소듐)을 붙여 만든 염으로 카세인이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물에 잘 녹도록 하기 위해 화학반응으로 카세인염, 즉 카세인나트륨염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우유에서 우유단백질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수산화나트륨과 같은 알칼리 처리를 하고 섭씨 80~90도로 열을 가하면 카세인단백질만 녹아나온다. 여기에 단지 물에 잘 녹도록 하기 위해 나트륨을 결합시킨 것이 카세인나트륨이다. 알칼리 처리를 했다고 해서 화학합성품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카세인나트륨은 식품에 관한 세계 최고 기구라 할 수 있는 JECFA(Joint FAO/WHO Expert Committee on Food Additives, 국제식량농업기구/세계보건기구 합동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에서 1일 허용 섭취량을 설정하지 않을 만큼, 즉 많이 먹어도 별 문제가 없는, 안전성이 확인된 물질이다. 따라서 카세인나트륨에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광고를 한 것 자체가 문제다. 물론 광고를 한 회사는 우리는 그런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겠지만, 카세인나트륨 유해 논란과 관련해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회사가 불과 2~3년 전만 해도 자신들이 제조 및 판매한 유아용 분유와 요구르트 등 어린이용 유제품에 카세인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 유제품에 들어간 물질은 카세인가수분해물, 카세인포스포펩티드 등으로 이는 카세인에 화학물질을 처리하거나 화학적 성분을 결합한 물질이다. 이 회사가 사용한 표현법을 빌리면 화학합성품이다.
이 회사는 지난 1991년 파스퇴르유업이 “N유업의 분유 제품에 양잿물을 사용해 만든 카제인 성분이 첨가됐다”고 주장했을 당시 “카제인나트륨은 아기에게 매우 유익한 영양성분”이라며 적극 대응한 바 있다. N유업이 카세인의 나트륨염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산화나트륨(NaOH)을 사용한 것을 두고 파스퇴르가 수산화나트륨이란 과학용어 대신에 소비자들이 거부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도록, 의도적으로 양잿물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파스퇴르유업은 1988년부터 오랫동안 이런 네거티브마케팅으로 짧은 기간에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는데, 그 피해자 가운데 하나였던 N유업이 조제커피 시장에 진출하면서 똑같은 수법을 써먹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와 유사한 사건을 여러 차례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은 그런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망각한다. 바로 이 망각을 이용한 상술이 2010년대에도 버젓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만약 단백질인 카세인을 ‘커피믹스’에까지 다량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쉽고 값싸게 대량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을 그 회사가 지니고 있다면 그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은 아마 노벨화학상을 탈 수 있을 것이다.
유해성이나 제품에 별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가 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우지라면 파동이다. 1989년 인체에 아무런 해가 없는 삼양식품의 쇠기름(우지) 라면을 유해한 공업용 기름이란 딱지를 붙여 검찰이 철퇴를 가하는 바람에(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평결을 받았음) 라면업계 2위를 하던 농심이 팜유를 사용한 덕분으로 라면파동에서 한발 비켜나 순식간에 잘나가던 삼양식품을 제치고 1위로 뛰어오르는, 웃지 못할 비극적인(삼양식품으로서는) 식품파동의 역사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식품회사만 애꿎은 일을 당한 채, 엉터리 수사를 하고 기소한 검찰과 담당 검사와 간부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승승장구한, 참으로 기막힌 일도 있었다.
1988년에는 신생 파스퇴르유업이 저온살균법의 우유를 들고 새로이 우유 시장에 뛰어들면서, 당시 거의 모든 회사들이 사용하던 고온순간살균법이 우유의 영양성분을 많이 파괴하는 매우 나쁜 것인 양 대대적으로 선전해 신구 우유업체 간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그동안 많은 이들이 거의 모든 음식에 감칠맛을 내기 위해 즐겨 첨가했던 글루탐산나트륨(MSG)에 소비자단체가 화학조미료란 딱지를 붙여 국민들로 하여금 몸에 좋지 않은 식품첨가물이란 각인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국제소비자기구가 1985년 10월 16일을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로 제정해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을 벌인 것에 우리 소비자단체들도 적극 동참해 국내 행사를 펼침으로써 MSG에 대한 거부감은 순식간에 널리 퍼져나갔다.
사실 MSG는 화학조미료가 아니라 발효조미료이다. MSG 주성분인 글루탐산도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인공적으로 합성하지 않는다. ‘미원’, ‘미풍’이란 상품명으로 더 잘 알려진 MSG는 다시마에 듬뿍 들어 있어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을 생산하기 위해 이 아미노산을 많이 만들어내는 특수미생물을 발효공법으로 길러 글루탐산만을 정제해내 만든 조미료다. 이때 물에 잘 녹고 눈에 보이는 결정 형태로 글루탐산을 만들려면 염의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나트륨을 화학반응으로 글루탐산에 붙인 것이 MSG이다. MSG란 말은 ‘Mono Sodium Glutamate’의 약자로 글루탐산에 소듐(나트륨)을 하나(Mono) 갖다 붙였다는 뜻이다.
MSG는 라면 스프나 조미료, 과자 등에 들어 있는 식품첨가물로, 식품에 감칠맛과 향을 더하는 작용을 한다. 그런데 1960년대 말, 다량의 MSG를 섭취하면 두통, 근육경련,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보고가 나왔다. 주로 중국음식을 먹고 나서 이러한 증상이 생긴다고 해서 ‘중국음식점 증후군’으로도 불렸다.
당시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은 MSG의 하루 섭취량을 제한했고 신생아용 음식에는 첨가 자체를 금지했다. 아마 당시 MSG의 대부분을 일본과 한국이 생산하지 않고 미국만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했다면 이런 규제 조치는 없었거나 신중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연구에서 MSG와 이런 증상이 전혀 관련 없다고 증명되면서 이런 제한은 모두 해제됐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에서도 2010년에 MSG를 평생 먹어도 무해하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MSG에 씌운 낙인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소비자들의 기피는 여전하고 소비자단체의 안 먹기 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낙인은 지웠지만 낙인 효과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많은 식품업체들이 자신들이 내놓은 제품에 MSG 무(無) 첨가표시 등을 하는 것에서 방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회사가 선전하는 제품에는 MSG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이 전혀 없는 것일까? 글루탐산은 단백질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단백질 식품에 구성성분으로 존재한다. 때문에 글루탐산은 식품성분에도 들어 있다. 유제품, 육류, 어류, 채소류, 해조류 등 동식물성 단백질에 함유돼 있으며 식품에 천연 구성성분으로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MSG는 사용을 장려해야 하는가. 물론 이는 소비자의 선택 문제이기는 하지만 MSG를 사용하지 않고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단지 MSG 사용을 획일화한 맛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유해성 차원에서 기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 밖에도 자신들은 천연 첨가물을 사용했거나 천연 제품이란 선전을 하면서 다른 회사 제품은 인공 또는 화학합성품을 사용했다고 은근슬쩍 비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카세인나트륨에 화학합성품이란 낙인을 찍은 이 식품회사의 조제커피 신제품은 불티나게 팔려 불과 1년 만에 1위 회사를 턱밑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 진실이 드러나면서 최근 이 회사는 그 반작용으로 방송프로그램이나 신문보도를 통해 소비자들의 화학합성품에 대한 거부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사기성 상술’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