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그래도 원안위에 힘 실어줘야 한다

핵ㆍ방사능 안전-라돈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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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그래도 원안위에 힘 실어줘야 한다

최예용 0 5115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전체회의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여야 의원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았다. 의원들이 최근 발생한 원전 부품 비리 사태의 원인을 묻자 ‘기술적인 문제’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의원들은 “사람의 문제인데 왜 기술적 문제라고 답하느냐”며 이 위원장을 다그쳤다는 것이다.

왜 이 위원장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법한 이번 원전 비리의 원인을 기술적인 문제라고 말했을까. 국회 미방위가 열리기 며칠 전 이 위원장을 만났다. 기자는 이 위원장으로부터 원자력과 관련한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당연히 이번 원전 비리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이 위원장은 이번 원전 비리의 원인을 ‘기술적인 문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신월성 1호기 등에 납품된 제어케이블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나쁜 생각을 가진 검증기관 직원들 때문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된 제품이 납품되고, 결국 원전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예로 들기도 했다. 사고 당시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해일로 전기가 끊기면서 원자로 내에 수소가 발생해 폭발할 위기에 처했다. 원전 시설에 구멍을 뚫고 수소를 제거하면 대기 중에 방사능이 누출되는데,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미루다 원전이 폭발하는 사태를 빚었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았듯 결정권자의 판단이 원전 안전을 좌우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난다. 1시간30분 넘게 계속된 대화에서 그는 원전 안전의 키는 사람이 쥐고 있음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런 이 위원장이 ‘기술의 문제’라고 발언했다니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국회 답변 다음날 바로 이 위원장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참 당혹스러운데, 제가 국회에서 설명할 때 기준에 맞지 않은 부품이 들어온 것이 문제다. 그 부품은 기준에 맞지 않으니까 기술적으로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리고 왜 이런 게 들어오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사람과 시스템이 근본 문제라고 설명하려 했는데, 그만 의원들의 기세에 눌려 말할 기회를 놓친 겁니다.” 그의 해명을 들은 뒤 국회 미방위 동영상을 확인했다. 이 위원장의 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평에 의하면 이 위원장은 소위 ‘원전 마피아’라 불리는 집단 편을 들 사람은 아니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원자핵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모교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원자력학회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지만 그는 원자력 전문가 가운데서도 흔치 않게 원자력 진흥보다는 규제와 안전의 중요함을 강조해온 인사로 통한다.

지난 4월부터 이 위원장이 노를 젓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름 그대로 원전의 안전 운영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지만 위원회는 지난 13일에야 여야가 추천한 비상임위원 4명을 확정했다. 나머지 3명의 비상임위원은 아직 추천도 못한 상태다. 손발이 갖춰지지 않은 조직으로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당이 추천한 인사들은 대표적인 원자력 진흥론자들이다. 이 위원장은 쉽지 않은 싸움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직급도 높은 편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차관급이다. 반면 원전산업 진흥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장은 장관이다. 한민족의 염원인 남북대화조차 단절시킨다는, 이른바 ‘격’이 다른 것이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싸우고 우기면 누가 이길까. 장관과 차관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아마 하늘과 땅 차이보다 더 클지 모른다. 이런 ‘격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발생했다. 지난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빛(영광) 원전 3호기 재가동을 불허한 지 하루 만에 재가동을 승인했다. 그런데 하루 전인 8일 이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빛 원전 3호기를 재가동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래도 승인 안 해줄래”라는 재가동 협박을 원자력안전위에 한 셈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의 ‘수괴’는 누가 봐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다. 아무리 양보해도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해 국민을 큰 불안에 빠지게 한 산업부의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 국회에 불려가 의원들에게 질타를 당할 사람은 이 위원장이 아닌 윤상직 산업부 장관인 것이다.

지금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힘을 실어줄 때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 통속으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 국회나 환경단체는 원자력안전위의 우군이 돼주고 바람막이를 자처해야 한다. 그래야 원전 확대에 모든 것을 건 듯한 산업통상자원부를 견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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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3년 6월20일자 김근 산업부장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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