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어떻게 마을을 삼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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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은 어떻게 마을을 삼켰나

최예용 0 7519

7월4일, 오후 2시를 막 넘겼을 때 서용화씨(57)와 강주훈씨(57)는 이미 소주 두 병을 비운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고향을 지키겠다고 싸워왔다. 이제는 떠나고 싶다." 6대째 고향을 지켜왔다는 서씨가 얼근하게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고향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소재 고리원자력발전소로부터 1㎞ 떨어진 월내마을이다. 그가 운영하는 횟집을 나서면 왼쪽 해안선을 따라 고리원전 1∼4호기(69만㎡, 21만 평)가 연달아 눈에 들어온다. 이날 오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1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고리 1호기는 전체 원전 사고의 20%에 해당할 만큼 사고가 잦았다. 특히 지난 2월에는 발전기 보호 계전기 시험 중 12분간 전원 공급이 중단되어 원전이 멈추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한 달 동안 이 사실을 은폐했다. 같은 시기, 고리원전 간부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엉터리 부품을 납품한 업자가 구속되는 수십 억원대 비리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정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비상 시 전력 공급 설비와 원자로 압력 용기를 비롯해 납품 비리와 관련한 부품 등 성능이 정상적이어서 고리 1호기 재가동을 허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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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7월4일 원자력안전위원회 관계자들이 고리 1호기 재가동에 반대하는 이들을 끌어내고 있다.

 

원래 고리마을이었던 대지에 조성된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설계수명 30년을 약속하고 건설됐다. 그러다 수명 완료 2년을 채 남겨두지 않은 2005년 9월, 정부는 '수명이 완료한 핵발전소의 처분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이듬해 6월, 한수원이 고리 1호기 수명 연장 10년을 신청하면서 현재 35년째 가동 중이다. 이때 마을 주민들은 고리 1호기 수명 연장 반대를 외쳤지만, 결국 2년 만에 특별지원금 1610억원을 받으며 연장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원전이 들어선 뒤 주민이 입은 손해에 대한 유일한 보상은 지원금이었다. 1989년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발주법)'이 제정되면서 지역발전기금이 생겼다. 전기 판매 수입금의 0.3%(1997년 1.12%까지 상승)를 보상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따라 2005년까지 15년간 고리 지역에 1919억원이 지원되었다. 2006년 이후 기금지원사업으로 변경되면서 매년 130억∼170억원으로 지원 금액이 상승했다. 그 밖에 사업자 지원사업, 특별 지원사업 등 보상 영역이 확대됐다.

수온 오르면서 기형 물고기 생겨나

그러나 '억억'거리는 지원금에도 주민들은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한 지역주민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복지사업을 원전 지원금으로 하면서 온갖 생색을 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월내마을 인근에 있는 월내문화관, 임랑마을 경로당, 임랑마을 회관 따위 건물에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지원금으로 설치된 시설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방문했을 때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앞서 만난 주민은 "우리가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외지인들을 만나면 억울한 심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원전으로 인해 오히려 마을이 피폐해졌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배를 타거나 미역·김 양식으로 생계를 꾸렸던 주민들은 생태계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한수원은 "국내에서 운전 중인 100만kW급 원전 1기당 1초에 50∼60t에 달하는 온배수가 바다에 흘러들어간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고리원전이 가동되면서 방출되는 온배수는 매초 150t 이상으로 추정된다. 바다의 수온이 오르면서 넙치·우럭의 경우 자연 상태보다 최고 4배 빠르게 성장했다. 한수원은 '성장과 산란이 빨라져 생산 효과가 크다'며 바다의 수온 상승을 긍정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주민 최창국씨는 "한때는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었는데, 원전이 들어선 뒤 어종이 줄고 기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장안읍 주민 전체가 '물질'로 먹고살았던 30년 전에 비해 물질하는 이가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추정했다.

앞서 말한 서용화씨도 물질을 하다가 업종을 바꾸었다. 한수원이 안전을 이유로 원전 인근 8㎞ 이내를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해 다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을 떠나지 못한 이들은 '께름칙한'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팔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월내마을에 위치한 횟집은 고리원전을 바라보고 즐비하게 서 있었다. 1980년 22만명에 달하던 장안읍 인구는 1990년대 이후 줄곧 10만여 명을 유지하고 있다. 집이 '팔리지 않아' 내놓은 월세방도 쉽게 눈에 띄었다.

주민들의 더 큰 걱정은 건강이다. 1991년 결혼한 이진섭씨(48)는 고리원전으로부터 3㎞ 떨어진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 살았다. 그의 아내도 이 지역 출신이다. 한 해 지나 태어난 아들 균도가 자폐성 장애 1급을 앓고 있다. 현재 스물한 살 청년이지만, 정신연령은 만 4세에 머물러 있다. 이씨는 '운이 없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1년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개원하면서 실시한 무료 건강검진에서 그는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갑상샘암, 어머니는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2007년에는 이 지역에 사는 장모가 위암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우리 가족이 모두 병을 앓는데, 원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혀내고 싶다"라며 지난 7월1일, 부산지방법원에 한수원을 고소했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의대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는 "원전 방사선과 주변 지역 주민의 암 발병 위험성에 인과적 관계가 없다"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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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고리 원전에서 1km 떨어진 부산시 기장군 월내리 항구에서 주민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고리 1호기 재가동을 놓고 주민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한수원은 인근 지역에서 다른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현재 부산 기장군·울산 울주군에는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호기가 가동 중이다. 신고리 2호기가 가동 준비 중이며, 신고리 3·4호기는 2013년 준공을 목표로 공정률 80%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신고리 5·6호기를 더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는 2009년 2월 기본계획을 완료하고 지난해 9월 환경영향평가를 마쳤다.

후쿠시마 사고에 고리 1호기 은폐사건까지 겹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한수원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한수원은 6월29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주민 공청회를 열었다. 81만3000㎡(24만 평) 건설용지에서 가장 가까운 신리마을 주민들은 원전 건설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1997년 당시 원전이 들어설 때만 해도 원전 반대 운동을 벌이던 주민들은 신고리 1∼4호기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조금씩 발전소 용지로 편입되는 경험을 했다. 손복락 신리마을 이장은 "원전을 좋아하지 않지만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되면 마을이 다 잘려나가 농가를 잃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전면 이주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마을에 원전이 생길 때마다 이주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1970년 고리마을에 원전이 들어설 때도 주민 162세대는 두 마을로 흩어졌다. 그중 한 곳인 서생면 골메마을로 이주한 29세대는 신고리 1·2호기 건설로 인해 25년 만인 1995년 신리마을로 다시 이주해야 했다. 신리마을에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면 이들은 세 번째 이주를 하게 된다. 현재 길천마을·월내마을 등 신리마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이주 대상이 아니지만 이주를 요구한다. 월내마을 주민 강주훈씨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으로 인한 피해는 경계가 따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고리 1호기를 폐쇄할 것이 아니면 우리를 전면 이주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주민 저항 적은 지역에 원전 집중 건설

우리나라에는 현재 공사 중인 7기를 포함해 2024년까지 원전 총 13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밀집도가 높아지면 사고 위험은 더 커진다. 정수희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사무처장은 "1990년 이후 새로 건설된 원전은 비교적 주민의 저항이 적은 기존 원전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주민 의견은 자연스럽게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라고 말했다.

김익중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은 "체르노빌 사고 당시 주민 통제구역이었던 반경 30㎞ 지역을 고리원전에 적용하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부산·울산시민 322만명이 대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은 안전하기 때문에 대도시 인접 여부와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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