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드러난 품질서류 위조… 부품교체 많은 노후원전에 집중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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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17:23
동아일보 2013 10 12
원전 23기 모두 서류위조 부품 사용
○ 불공정 입찰 관행, 독점 구조에 안전 불감증
정부의 원전 부품 품질 서류 전수조사에서 위조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서류는 전체 2만2712건 가운데 1.2%에 해당하는 277건이다.
품질 서류가 위조된 부품이 가장 많이 설치된 원전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2호기로 50개 품목의 서류가 위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고리 1호기가 34건, 고리 3·4호기가 각각 22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모두 가동된 지 20년이 넘은 노후 원전이다.
특히 이 원전들은 가동을 시작한 뒤 현재까지 사고나 고장으로 286번 가동이 중단되는 등 다른 원전에 비해 고장이 잦았다.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가동을 시작한 지 오래된 원전이다 보니 다른 원전들에 비해 부품 교체가 많았기 때문에 품질 서류 위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품질 서류 위조는 노후 원전뿐만 아니라 최근 가동된 원전들에서도 발견됐다. 2010년과 2011년 가동을 시작한 신고리 1호기와 2호기에서도 7건의 품질 서류 위조 사실이 적발됐다. 또 현재 건설 중인 신월성 2호기 등 5기의 원전에도 상당수의 품질 서류 위조 부품이 납품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업계에서는 이처럼 품질 서류 위조가 만연한 것에 대해 원전 정비나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납품 일정을 요구하는 잘못된 입찰 관행 탓이라고 지적한다. 원전 부품의 성능을 검증하는 데 길게는 3∼6개월이 소요되는데 심각한 전력난이 반복되면서 원전 정비 기간을 무리하게 줄이려다 보니 품질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납품 기한을 맞추려는 관행이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소수의 업체가 부품 제작과 품질 검증을 사실상 독과점하다 보니 품질 서류 위조와 입찰 담합이 반복돼도 어느 곳에서도 이를 적발하거나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원전산업 경쟁 촉진으로 비리 근절”
정부는 반복되는 원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이날 원전 구매제도 개혁과 원전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뼈대로 한 대책을 내놨다.
원전산업의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입찰 조건을 완화해 신규 업체들의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춰주는 등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원전 부품 국산화 로드맵’을 세워 역량 있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기 국산화를 추진하고 이 기업들이 대거 원전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원전 부품 구매 제도와 관련해서는 과거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삼아 입찰 조건을 내걸던 관행이 한수원의 무리한 입찰 요구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에 따라 입찰 단가를 정할 때 원가를 반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정부는 원전 공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수원 등 원전 공기업들이 폐쇄적인 ‘슈퍼 갑(甲)’의 지위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원전 공공기관을 하나로 묶어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상시 감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원전 안전 관련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기기·부품 공급자에 대한 검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기술적 안전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원전업계에서는 이 같은 원전 비리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원전 부품에 대한 검증 기준이 강화되면서 부품 제작비용이 치솟아 올해만 벌써 10여 개의 원전 중소기업이 도산하거나 원전사업을 접은 상황에서 신규 업체를 끌어들여 원전 부품 경쟁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전 부품 국산화 지원 역시 원전 비리 근절 대책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전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원전 부품 제조비용이 치솟아 상당수 부품이 중국 등에서 제작돼 수입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규 원전 건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 원전산업에 뛰어들 업체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