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비리 근절, 한수원에 맡겨서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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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 비리 근절, 한수원에 맡겨서 될 일인가

최예용 0 4809

[사설] 원전 비리 근절, 한수원에 맡겨서 될 일인가

한겨레신문 2013년 10월12일자

원전 비리의 뿌리가 참으로 깊다. 정부가 가동중인 원전 20기를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처리된 품질서류 2만2000여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의 1.2%인 277건의 서류 위조를 확인했다고 한다. 건설중이거나 가동이 중지된 원전 8기의 품질서류에서도 그 비율이 0.9%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100건 가운데 1건꼴로 서류 위조가 일어났고 끼리끼리 해먹는 비리가 만연해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정부는 10일 원전의 납품계약 비리와 서류 위조 등의 혐의로 모두 100명을 기소했다고 밝히고 비리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원전 공기업 중간관리자 이상 퇴직자들의 협력업체 취업을 막고, 부품 납품의 경쟁을 촉진하는 등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품질 관리를 위해 기관별 책임을 명확히 지우고 외국 회사에 검증을 맡기겠다는 진일보한 조처들도 있지만, ‘비리가 발붙일 수 없는 원전산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호언대로 될까 미덥지 않은 구석이 많다.

원전 비리에는 마피아식 인적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검증과 승인이 한 지붕 밑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부패의 온상이다. 정부는 유착 근절을 위해 퇴직자의 재취업을 금지한 지난 7월 이후 새로 유관업체에 재취업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제재가 느슨하고 실효성도 적어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개를 들 수 있다. 입찰업체가 원전 관련 공기업의 퇴직자를 고용할 경우 100점 만점에 고작 1점을 감점한다고 하니 겁을 낼 이유가 없다. 공기업 퇴직자들의 협력업체 취업 제한이 3년이어서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똬리를 틀 수 있고, 3년 안에라도 여러 편법으로 재취업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전 부품을 표준화·상용화해 진입 문턱을 낮추는 것은 경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지만 기업들로선 수요가 제한된 시장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실효를 거두려면 유인책이 필요하다. 현재 34% 정도인 수의계약 비중을 2015년까지 20% 정도로 낮추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걱정스러운 점은 한수원에 유착 근절, 구매 개선 등 시작부터 끝까지 통제를 맡긴 것이다. 직원부터 최고위층까지 줄줄이 비리에 연루된, 비리의 몸통이 한수원이다.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으로 지난 6월 1급 이상 간부 178명 전원이 사표를 냈을 때도 한수원은 한 명도 수리하지 않았다. 원전 비리를 근절하려면 한수원에 원전 운영과 연계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하고 시민사회의 감시를 받도록 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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