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WHO 기준치 이하도 폐질환 걸린다
미세먼지가 사흘째 전국을 뒤덮은 가운데 국제보건기구(WHO)가 권고한 초미세먼지(PM2.5) 환경기준보다 낮은 농도에서 단 일주일만 노출되어도 폐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벤자민 호른 미국 유타대 의생명정보학과 교수팀은 인터마운틴 메디컬센터, 브리검영대와 함께 기준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PM2.5의 일평균 농도가 1㎥당 10㎍ 증가할 때마다 1~4주 후 발생하는 급성하기도감염(폐질환) 환자 수가 15~23% 늘어난다고 미국흉부학회지 ‘미국 호흡기 및 중환자 의료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일평균 PM2.5의 농도가 WHO 환경기준(㎥당 25㎍) 이하인 ㎥당 20㎍(마이크로그램·1㎍는 100만 분의 1g)이더라도 폐질환으로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 수는 ㎥당 10㎍일 때보다 20%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환자의 대부분은 미세먼지 취약 계층인 만 2세 이하의 영·유아로 확인됐다. 15일 서울의 일평균 PM2.5 농도는 오후 6시 기준으로 ㎥당 106㎍에 이른다.
연구진은 미국 유타 주 워새치프론트 지역에서 1999~2016년 사이 발생한 급성하기도감염 환자 14만6397명에 대해 역학조사를 벌였다. 환자의 주거지 인근 일평균 PM2.5 농도 변화와 병원 진단을 받은 시점, 연령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급성하기도감염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에 의해 기도와 폐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미세먼지를 통해서도 바이러스가 체내로 유입될 수 있다.
조사 기간 내 워새치프론트의 일평균 PM2.5 농도는 ㎥당 10㎍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PM2.5 농도가 평소보다 10㎍ 높은 20㎍만 돼도 어김없이 1주일 뒤부터 급성하기도감염 환자가 늘었다. 국내 PM2.5 환경기준에 따르면 일평균 ㎥당 16~35㎍은 ‘보통’이다. 3주 뒤에는 환자 수가 최대가 됐다. 만 2세 이하의 영·유아가 77%로 가장 많았고 만 3~17세와 만 18세 이상 환자는 각각 12%, 11%로 비슷했다.
호른 교수는 “미세먼지 농도가 대체로 낮은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미세먼지가 높아질 수 있다면 어린 아이들에게는 안전지대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어린이집, 유치원 등 보육시설의 절반 이상이 대로변 100m 이내에 위치해 있는 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0월 강화된 환경기준에 따르면 어린이집, 노인요양시설, 산후조리원, 의료기간 등 민감계층 이용시설의 경우 실내의 PM2.5 농도를 ㎥당 35㎍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역시 미세먼지 취약계층에게는 느슨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