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보통'이어도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보통'으로 나타나더라도 고농도일 때보다 오히려 사망률이 높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높은 농도일 경우를 중심으로 예보를 내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으로, 노출 등을 고려한 새로운 미세먼지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과학기술연차대회'에서 국내 전문가들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미세먼지 관리 대책을 논의했다.
현재는 월평균 미세먼지 농도만을 고려해 미세먼지를 예보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날 전문가들은 미세먼지가 어떻게 발생해 얼마나 정체하고 또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해 정밀하게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감 대책 실천률 높이려면 과학적인 근거 제시 필요
박일수 한국외대 황사 및 장거리 이동 오염물질 연구센터 소장은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사전에 예보하며 대책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계절별, 시간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의 변화를 소개했다. 그는 “미세먼지의 농도는 각 환경의 조건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며 “지역별, 계절별, 날씨별, 시간별 미세먼지 농도를 보고 높아지는 패턴을 파악해 대비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예를 들면 미세먼지 발생 농도가 그다지 짙지 않고 날씨가 맑은 날이라도, 대기 중에 역전층이 발생하면 미세먼지가 쌓이면서 농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황사 및 장거리 이동 오염물질 연구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는 정체성 고기압이 있는 날, 즉 날씨가 매우 맑은 날에 연일 지속적으로 농도가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봄철에는 풍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많은 수도권이나 대도시 주변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소장은 “이 시기 수도권의 미세먼지는 40% 정도가 자체생성된 것이고, 나머지 60%가 중국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겨울철에는 풍향보다는 풍속이 중요하므로 미세먼지가 장거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박 소장은 “추후 연구를 통해 겨울 동안 미세먼지가 어디까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세먼지 농도 알림에 대해 지금처럼 중계식이 아닌, 2~3일 전에 정확한 예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며칠 전에 미세먼지 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현재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8월쯤 성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가에서는 승용차 2부제 등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박 소장은 “이런 대책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대부분인데 왜 우리만 줄여야 하냐고 반발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므로 미세먼지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해 정체하는지 연구해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대중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실천하려면 먼저 이성적으로 이해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농도 기준이 아닌 노출 경로와 기간에 대한 대책 필요
공성용 한국환경정책평가원구원 기후대기안전연구본부장(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미세먼지에 대한 상당히 엄격한 예보 기준을 가지고 있다”며 “이것이 실제 유용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농도에 따라 경보하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라며 “평상시에 우리가 맞닥뜨리는 저농도에 대한 대책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 본부장은 “미세먼지 농도도 중요하지만 노출 기간에 따라서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며 “단기노출과 장기노출에 따라 노출 경로와 기간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미세먼지에 대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미세먼지가 70, 초미세먼지가 35일 때 야외에 오래 나가 있을 경우에는 사망률이 15% 높아진다. 이 농도는 국내 기준으로 ‘보통’, 영국 기준으로는 ‘좋음’ 등급에 해당한다.
김정수 한서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세먼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장기간으로 놓고 봤을 때 결국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환경보전법 등 현존하는 대부분의 환경 정책들이 1980년대 환경청이 처음 생겼을 때 만들어졌다”며 “그 당시에는 공장 등 주요 배출원에 대해 최적의 대응책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배출원 현황이 많이 바뀌어 기존 대응책에는 한계가 있고 실제적으로 효율적인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불법소각 같은 배출원이 현재는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미세먼지 배출 주범 중 하나로 꼽힌 사례를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현행법에서는 이런 것들을 관리 감독하는 게 미흡하므로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