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LG, 한화 미세먼지 배출 조작 파문
2019.04.19 시사저널
LG화학·한화케미칼 등 광주·전남지역 235개 사업장 적발
“얼마로 만들어 드릴까요?” 甲乙관계 배출·측정업체 ‘짬짜미’
LG화학 “관련 시설 폐쇄”, 한화케미칼 “재발 방지에 노력”
전남 여수산업단지의 LG화학과 한화케미칼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 물질 배출량을 조작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사업장인 LG화학·한화케미칼 등이 공식 사과하고 일부 기업은 관련 생산 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지만, 지역민들은 “믿었던 대기업들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수산단 기업들, 측정대행업체 4곳과 공모
18일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전남 여수 산업단지 사업장이 대기오염 물질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산하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광주·전남 지역의 대기오염물질 측정대행업체 13곳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LG화학과 한화케미칼을 포함한 여수 산단 지역 235개 기업들이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짜고 먼지·황산화물 등의 배출농도를 속인 것을 적발했다.
4곳의 측정대행업체는 235곳의 사업장으로부터 측정을 의뢰받아 2015년부터 4년간 총 1만3096건의 대기오염도 측정 기록부를 조작하거나 대기오염물질을 측정하지 않고 허위 성적서를 발행했다.
문제의 측정대행업체는 지구환경공사, 정우엔텍연구소, 동부그린환경, 에어릭스 등 4곳이다. 이들과 공모한 배출사업장은 LG화학 여수화치공장, 한화케미칼 여수 1·2·3공장, 에스엔엔씨, 대한시멘트 광양태인공장, 남해환경, 쌍우아스콘 등 6곳을 포함한 235곳이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이들 4곳의 측정대행업체와 6곳의 배출업체를 기소 의견으로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에 지난 15일 송치했다. 나머지 배출업체에 대해서는 현재 보강 수사를 진행 중으로,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추가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글로벌 ‘일류’ 표방하고 ‘삼류’ 환경·안전 행태 드러나 빈축
측정대행업체의 대기측정 기록부를 조사한 결과, 직원 1명이 같은 시간대에 여러 장소에서 측정한 것으로 기록한 8843건은 실제 측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4253건은 실제 측정값을 대기오염 물질 배출 농도의 33.6% 수준으로 축소하는 방식으로 조작했다고 환경부는 전했다.
심지어 LG화학은 염화비닐 배출 기준치를 173배 이상 초과했는데도 이상이 없다고 조작하기도 했다. 수치를 조작함에 따라 적발된 배출업체는 미세먼지 저감장치 설치설비 개선비용을 아끼고 기본배출 부과금을 면제받았다.
배출업체와 측정대행업체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이메일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측정대행업체 직원은 카카오톡으로 “메일로 보내주신 날짜와 농도로 만들어 보내드리면 되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배출업체 직원은 측정대행업체 직원과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탄화수소 성적서 발행은 50언더로 다 맞춰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제도적 맹점 악용…·‘셀프측정’이 배출 조작비리 키워
이 같은 범법 행위의 배경에는 두 업종 사이 ‘갑을(甲乙)’ 관계와 당국의 허술한 규제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기업이 미세먼지 배출량을 ‘셀프 측정’하는 방식도 배출 조작 비리를 방치하고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관리·감독 업무는 2002년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적어 실시간 감시망 구축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기업 스스로 또는 전문업체에 맡겨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준을 측정하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결과가 나오면 자체 개선하는 방안으로 제도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대행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 측정값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다.
배출 업체가 ‘갑(甲)’이 되고, 측정업체는 ’을(乙)‘이 되는 구조다 보니 대행업체들은 “농도를 얼마로 맞춰 드릴까요?”라고 협의하기도 했다.
지역민 “뒤통수 맞았다”…“빙산의 일각일 뿐”
이번에 발각된 여수산단의 미세먼지 배출량 조작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얘기다. 관련업계는 여수 산업단지에서만 235개 업체가 적발된 것을 봤을 때 배출 조작은 업계 관행일 개연성이 큰 것으로 봤다. 환경부와 지역 환경청이 전국적으로 일제 점검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은 “글로벌 ‘일류’ 표방하고도 ‘삼류’ 환경·안전 행태 드러났다”며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뿐 아니라 지역민들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등이 조속하게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G화학·한화케미칼 공식사과 “유감…공장페쇄, 재발 방지대책 마련”
이들 기업은 입장문을 내고 공식 사과했다. 신학철 LG화학 대표는 17일 “이번 사태는 LG화학의 경영이념과 또 저의 경영철학과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며 “통렬히 반성하고 모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신 대표는 그러면서 “염화비닐 배출과 관련해 해당 사안을 인지한 즉시 모든 저감조치를 취했다”며 “다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관련 생산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한화케미칼 역시 “이번 사건이 당사 사업장에서도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며 “회사는 향후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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