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판데믹 `대기오염'…연간 880만명 사망
전 세계인 기대수명 3년 단축 효과
심혈관 질환 영향이 전체의 43%
대기오염 사망의 75%는 60세 이상
차드 7.3년 최악...콜롬비아 가장 청정
한국 2.16년 80위...북한 4.47년 12위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호흡기 감염병 `코로나19' 대응책 마련에 온 세계가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세계적 대유행병(판데믹)에 이르는 피해를 입히면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심혈관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대기오염이다. 아마도 바이러스 질환과 같은 급성이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서서히 스며든 탓으로 보인다.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주축으로 한 독일 연구진이 유럽심장학회가 발행하는 ‘심혈관 연구'(Cardiovascular Research) 저널 3월3일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분석 결과, 대기 오염은 한 해 880만명의 조기 사망자를 유발(2015년 기준)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인의 기대수명을 2.9년 단축시키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는 흡연, 에이즈, 말라리아가 인류 사회에 끼치는 피해를 훨씬 웃도는 것"이라며 이를 ‘대기오염 판데믹'(air pollution pandemic) 상황으로 지칭했다. 기대 수명 단축 효과의 경우 흡연은 2.2년(720만명 사망), 에이즈는 0.7년(100만명 사망), 말라리아는 0.6년(60만명 사망)으로 계산됐다. 전쟁을 포함한 모든 폭력적 방식의 사망자 수는 한 해 53만명으로, 수명 단축 효과는 0.6년이었다.
연구진은 하기도감염(LRTI), 만성 폐쇄성 폐 질환, 폐암, 심장 질환, 뇌졸중으로 이어지는 뇌 혈관 질환, 기타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비전염성 질환을 합쳐 모두 6가지 질병에 대한 대기 오염의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심장과 뇌 혈관 질환을 합친 심혈관 질환이 대기 오염으로 인한 수명 단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발견했다. 전체 수명 단축 효과의 43%나 됐다. 대기 오염은 특히 노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의 약 75%가 60세 이상이었다.
연구를 이끈 조스 렐리펠드 마인츠대 교수는 "대기 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와 기대 수명 단축은 흡연과는 비슷하고 다른 원인보다는 훨씬 높다"며 "대기오염은 체내 활성산소 증가에 따른 산화 스트레스를 높여 혈관을 손상시키고 이는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 심장쇼크 등을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대기 오염에 의한 조기 사망은 말라리아의 19배, 폭력(전쟁 등)의 16배, 에이즈의 9배, 음주의 45배, 약물 남용의 60배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대기오염 사망의 3분의2는 인간 활동 때문
동아시아 수명단축 효과 3.9년으로 가장 커
연구진은 또 인간이 만든 대기 오염과 사막먼지, 산불 같은 자연현상에서 나오는 대기 오염을 구분해 살펴봤다. 그 결과 조기 사망의 3분의 2는 인간에 의한 대기 오염 때문으로 나타났다. 주로 화석연료 사용이 주범이었다. 선진국에선 화석연료 비중이 80%나 됐다. 이를 제거하면 이론상 55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인류의 평균 기대수명은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면 1년 이상, 인간 활동에 의한 모든 오염물질 배출을 중단하면 약 2년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진은 대기오염의 피해 규모와 원인이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는 것에도 주목했다. 동아시아는 기대수명 단축 기간과 인간 활동 영향이 가장 큰 지역이었다. 기대 수명 단축 기간은 3.9년이었으며, 이 가운데 3년이 인간 활동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그 기간이 각각 3.1년, 0.7년이었다. 아프리카는 인간 활동의 영향이 가장 적은 지역이었다. 유럽은 기대수명 단축 기간이 2.2년이었으며, 이 가운데 1.7년이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었다. 북미에선 1.4년 중 1.1년이 여기에 해당했다.
나라별로는 아프리카의 차드가 7.28년으로 가장 컸다. 이어 시에라리온(5.88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5.38년), 투르크메니스탄(4.99년), 니제르(4.75년) 차례로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이 상위권을 독차지하다시피했다. 대기오염 영향이 가장 작은 나라는 남미의 콜롬비아로 0.37년에 불과했다. 이어 남태평양 사모아(0.43년), 에콰도르(0.44년) 차례였다. 한국은 2.16년으로 전체 분석 대상 182개국 중 80위였다. 북한은 4.47년으로 12위, 일본은 2.23년으로 75위, 중국은 4.11년으로 16위였다.
연구진은 대기 중의 화학작용, 대기와 육상 및 해상의 상호작용, 자연적 및 인위적 배출 물질을 시뮬레이션한 모델을 만들어 이번 분석에 사용했다. 대기오염이 사망에 끼치는 영향을 연령별, 질환별로 살펴보고 이에 따른 기대수명 단축 효과를 지역별, 국가별로 광범위하게 분석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