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전자파 생활](5)휴대폰 비행기모드 전환 등 사전예방 차원서 전자파 줄여야
인체 위해성 과학적 증명 안됐지만
위험 가능성 있다면 예방조치 필요
전문가들 “사전 주의 적용을”
전자파로 인한 잠재적 건강위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사전주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학이 전자파의 인체 위해성을 완전히 규명하기 전이라도 정부는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정부의 전자파 전문가 자문위원회인 베레니스(BERENIS)에서 활동하는 스위스 열대 및 공공보건연구소(TPH) 마틴 뢰슬리 박사는 지난 9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아직 과학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영역에 대해서도 예방적인 차원에서 규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5G 서비스 도입에서도 예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전주의란 과학적으로 위해성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위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선제적인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한다. 오랜 기간 건강 위험에 대한 논란이 일다 결국 과학적 연구방법이 개발되면서 위험성이 드러난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선진국들 중에는 전자파 역시 사전주의를 적용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난 담배, DDT, 석면, 벤젠, 납 등이 바로 과거에는 건강 악영향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여겨졌던 대표적인 제품과 물질들이다.
고압송전선로·이동통신 기지국
전자파 측정 의무화·인체 영향 조사
국내 노출 기준치도 현실화 필요
전문가들은 사전주의적 입장에서 국내에 가장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것으로 고압송전선로나 이동통신 기지국 전체에 대해 전자파 노출량을 측정하고, 전자파 노출로 인한 인체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제도를 꼽고 있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처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 민감지역 주변에 기지국이나 고압송전선로를 설치할 때는 전자파 측정을 의무화하고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과기정통부가 전자제품이나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의 전자파를 측정해 발표하고 있으나 수치만 공개될 뿐 인체 영향에 대한 연구,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거지역 내의 고압송전선로나 기지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전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일상생활 속 전자파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됨과 동시에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백혜련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전자파로 인한 건강위협을 예방하기 위한 ‘전파환경보호조치’로서 과기정통부가 전파환경을 측정하고, 전파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내의 전자파 노출 제한치인 인체보호기준을 급성영향 때의 기준인 83.3μT(마이크로테슬라·자기장의 단위) 대신 만성기준치로 현실화할 필요도 있다. 유럽의 일부 국가들처럼 당장 1μT 미만의 강한 기준치를 도입하지는 않더라도 점차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제도를 개선하고, 전자파 규제 기준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자파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진국 중에는 스위스처럼 전자스모그(Electro smog)라는 용어까지 도입하면서 전자파를 대기오염, 수질오염처럼 시민들의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건강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보면서 관리대상으로 삼는 나라들도 있다.
전자파 거리 제곱에 반비례로 줄어
휴대폰 멀리 두고 스피커폰 사용
전기장판 장시간 수면 삼가야
그렇다면 정부가 전자파 기준치를 강화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노출되는 전자파 수치를 낮추기 전까지 시민들이 전자스모그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국내외 전문가들은 전자파의 잠재적 건강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제품, 시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것과 불필요한 노출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자파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약해지기 때문에 특히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처럼 높은 수치의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기기를 사용할 때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보건대학원에 재직 중인 조엘 모스코비츠 교수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휴대전화와 인체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바지 주머니처럼 몸에 바짝 달라붙는 곳에 휴대전화를 넣지 말고, 특히 머리와 생식기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스코비츠 교수는 “스피커폰 기능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통화는 가능하면서도 인체와의 거리는 멀리하는 것이 방법이다. 그는 또 가능한 한 유선 통신장비를 쓰라고 설명했다. 휴대전화가 꼭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유선 전화기를 사용하고, 인터넷 연결도 무선보다는 유선 사용을 권했다. 통화나 메시지 송수신이 필요 없는 시간대에는 무선 연결 기능이 사라지는 비행기 모드를 활용하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나 임신부는 전자파의 영향을 최대한 피하도록 각별히 더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연방환경청은 <환경 속의 전자스모그>라는 책자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자파를 발생시키는 기기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과 침실 내의 전자파 발생원을 줄일 것 등을 권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침실에는 컴퓨터나 텔레비전 등을 두지 말 것과 수면 중에는 이들 기기를 모두 꺼놓을 것을 권하고 있다. 또 전기장판이나 전기방석 위에서 장시간 자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알렉산더 라이헨바흐 스위스 연방환경청 과학담당자는 “멀티탭을 사용하지 않을 때 꺼놓을 것”을 추천하면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자파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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