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송전탑 "

전자파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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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공해

" 겨울 송전탑 "

최예용 0 7999

겨울 송전탑

칠팔십 노인들이

마을 뒷산에 천막을 쳤다.

늘그막에 무슨 호강인지

한겨울

거기서 먹고

거기서 잔다.

765천 볼트

고압 송전탑이 서면

집이며 대추밭 밤밭이

쑥대밭이 되는데

제대로 보상도 없이

한전은 공사를 밀어붙인다.

여기서 더 살이

무슨 영화를 보겠나.

집이며 논밭이며

헐값에 처분하자니

살 사람이 없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송전탑 들어설 자리

천막을 쳤다.

한전 사장이 온다는 간담회 갔다가

직원들에게 짓밟혀 병원으로 실려가고

공사 방해로 고소당하고

손해배상 청구 들어오고

공사 인부에게 맞아 입원하고

잘려나가 나무 곁에 허수아비처럼 나뒹굴고

하나 둘 차례로

경찰에 불려가 죄인이 되고

그 사이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산 위에 바람 소리

무섭다.

산 아래 사람들

더 무섭다.

시인 이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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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리마을 초입의 보리교 위에 세워진 고 이치우씨의 천막상가 영전에 붙은 싯구절입니다. 2012년 1월16일 새벽에 몸에 휘발유를 붓고 일회용 라이터를 켜버린 70대 노인 이치우씨는 죽기전 몇차례에 걸쳐 '내가 오늘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분신을 암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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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인 2006년부터 밀양지역 5개면(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청도면)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탑 69개가 마을을 관통해 건설된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했습니다. 무슨일인지 알아보는 과정은 행정기관의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민중의 깨달음' 과정이었습니다. 밀양시의 행정관료들은 한전으로부터 받은 공사계획서를 뭉개고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고 주민들은 늦게야 이 사실을 접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3번이나 시장을 했던 전 시장의 친족이 소유한 지역으로 관통할 예정이던 선로계획이 변경되어 엉뚱한 지역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사실도 늦게서야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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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006년 면사무소에서 열린 전자파강연을 시작으로 6-7차례 이 지역을 찾아 전자파문제를 논의하고 강의하고 같이 걱정해온 터입니다. 두 달 전 밀주초등학교 운동장에 깔린 석면토양문제때문에 이 지역을 찾았다가 주민들과 송전탑 건설예정 현장을 둘러보았는데...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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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여 동안의 싸움은 60-70대 노인들을 '한국의 중장기 전력정책', '신고리, 월성, 울진 등에 세워지는 원자력발전소의 규모와 성능, 개통시기와 문제점', '전력송신 시스템과 최근에 개발된 초전도 송전기술의 개발수전' 등에 대해서 전문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게 했습니다. 한전 사장이 바뀌고,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모든 위원들 이름과 그들의 입장, 관련 전문가명단을 줄줄이 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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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를 짓지 않으면 765송전선로 필요없다'는 한전사장을 국회발언, '5,6호기를 짓는다고 해도 완공이 2019년 이후라서 직경 15cm파이프에 초전도 케이블을 넣어 지중으로 송전이 가능하다'는 관련기술을 개발한 모 박사의 평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전추가 건설은 어렵고 정권이 바뀌면 분명해진다', '세계보건기구가 조그만 휴대폰 전자파마저 발암물질로 지정했는데 초고압 송전선로의 발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가 '다리위 상가'에 모인 노인들의 대화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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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간간이 비가 내리고 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설을 코 앞에 두고 당한 황망한 상황.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건네기도 어렵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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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을 하고 마을을 가로질러 산 중턱까지 올라갔습니다. 경치가 무척 수려합니다. 해서 경남지역 사람들은 이 지역을 '경남의 알프스'라고 부르며 산수를 아껴왔습니다.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들이 마을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귀농과 시골삶을 찾아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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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밀양'에서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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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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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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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서 바라본 지역전경입니다. 사진 오른쪽 다리위 녹색의 천막이 보이는 곳이 송전탑건설 강행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치우씨의 길거리상가 입니다. 사진 왼쪽 마른 천변에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 주변이 송전탑건설현장으로 한전이 동원한 '서울에서 내려온 옹역'들의 것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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