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무엇이 문제인가-③]수도권이 쓸 전기,수도권서 생산하게 해야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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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 17:16
[송전탑, 무엇이 문제인가]수도권이 쓸 전기, 수도권서 생산하게 해야
경향신문 시리즈기사 2013년 10월 5일자 기사
(하) 에너지공급 ‘분산형’으로
2009년 미국 버지니아주와 메릴랜드주는 765㎸의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두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시 미국은
서부 오하이오밸리의 석탄화력발전단지에서 전기를 생산해 버지니아·웨스트버지니아·메릴랜드 등 동부로 송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2005년
시작된 이 사업은 총예산이 21억달러(약 2조3000억원)로,
4년이 지난 2009년에는 이미 예산 2억3000만달러(2500억원)가 지출된 뒤였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765㎸ 송전탑에 대한
전자파 발생, 환경 파괴, 재산권 침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송전사업자 측은 “2003년에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를 피하려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민과
송전사업자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버지니아주 기업규제위원회와 메릴랜드주 공공사업규제위원회는 초고압 송전선로와 정전 사태는 상관이
없다고 결론지었고 사업을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2012년 765㎸ 송전탑 건설은 공식 철회됐고, 송전사업자 측은 연방규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 지역 기존 송전망에 보강장치를 설치하는 것으로 사업을 종결했다.
▲ 원거리 수송 탓
송전탑 갈등 발생
수요자 중심 발전 설비 땐 해소돼
선진국, 정부 보조금·면세로 해결
미국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의 사례처럼 한국도 전력공급체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원자력이나 화력 등 대형 발전소를 세워 초고압 송전탑으로 대도시로 송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4일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한국은 전력생산의 91.9%가 원자력, 석탄, 복합화력발전소 등 대형 발전소에서 이뤄진다. 이들 발전소 가운데 원자력발전소는 한 기당 최대 100만㎾ 이상의 발전능력을 갖추고 있다. 발전용량이 크다 보니 대형 터빈을 돌릴 때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물이 필요하다. 자연스레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고리와 월성, 영광, 태안 등 지역에 발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일부 전기는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과 경북 월성원전에서 송전해온다. 이처럼 대용량의 전기를 지방에서 서울까지 보내려니 송전효율이 높은 초고압의 765㎸ 송전탑을 지방에 계속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 국토면적이 넓은 나라들조차 765㎸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1970년대 석유파동을 2차례 겪으면서 대규모 집중형 발전체계가 전력을 수송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 1971년부터 국가에너지 조례를 만들어 소규모 분산형 열병합발전으로 발전정책을 전환했다.
■ 분산형·자가발전 비율 높여야
분산형이란 전기를 생산한 곳에서 전기를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표적인 것이 열병합발전이다. 서울 목동, 경기 분당 열병합발전소가 이와 유사한 개념이다. 대도시 주변에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니 대규모 송전탑 건설이 불필요해지는 것이다.
유럽도 1990년대 초반부터 벨기에에 코젠 유럽(Cogen Europe) 본부를 두고 수요자 중심의 전력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핀란드는 물론 독일, 영국, 일본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면제해 송전탑 건설을 최소화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산업체 공장 등에서 자가발전설비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전체 발전 대비 자가발전 비율은 4.2%에 그치지만 일본은 16.8%나 된다. 한국도 송전 지역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서울, 수도권 등 대도시와 산업단지로 나눠 전기 최종소비지 인근에 중소형 발전소를 만들면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주민갈등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필수 선임연구원은 “분산형, 자립형 전력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대형 발전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 원거리 송전의 필요성도 크게 줄 것”이라며 “친환경발전 비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보급도 준의무화할 경우 대형 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아도 올여름 같은 전력대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