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압 송전선 주변 암 위험 증가’ 보고서 왜곡했다
경기도의 한 마을 위를 통과하고 있는 고압 송전 시설. 한겨레21
박승화 |
154·345㎸ 고압선 통과 67곳 조사
암 위험 증가 통계에도 “증거없다”
백도명 교수 “결론 거꾸로 뒤집어”
“밀양
송전선 765㎸라 더 위험” 지적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두고 정부와 주민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가 고압송전선이 암 발병률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도 숨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8일 오전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의 ‘전국 고압송전선로 주변 지역주민 암 관련 건강영향조사 최종보고서’를 보면, 154·345㎸의 송전선이 지나는 67개 지역 주민의 암 발병 위험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남성의 경우 35곳, 여성은 27곳에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녀 모두 암 발생의 상대 위험도가 증가한 지역은 24곳이었고 둘 다 감소한 곳은 5곳, 발병 위험도에 차이가 없는 곳은 19개 지역으로, 모두 48개 지역(71.6%)에서 남녀가 같은 양상을 보였다. 이런 일치도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나이, 인구밀도, 교육 수준 등을 감안해 암 발병에 대한 상대 위험도를 측정한 결과, 노출 지역의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견줘 남성은 1.26배, 여성은 1.18배 정도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노출된 자기장의 세기나 기간까지 고려해 암 발병의 상대 위험도를 구한 결과에서는 자기장 노출 정도에 따라 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소견이나 증거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대해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통계 결과와 달리 이상하게도 보고서의 결론은 거꾸로 기술돼 있다. 작성자들이 기본 통계분석의 원리를 거꾸로 해석해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가 ‘주관기관’으로, 단국대가 ‘참여기관’으로 명시된 이 보고서는 지난 8월 작성됐지만 이날 처음 공개됐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 보고서는 154·345㎸의 송전선을 다루고 있지만 밀양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송전선은 이보다 훨씬 고압인 765㎸로, 암 발병 위험은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전의 주장과 달리, 지경부의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결과표만으로도 송전선로 노출 지역의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장기적으로는 대용량 발전 및 장거리 송전방식을 지양하고, 단기적으로는 기존 송전망을 재활용하거나 지중화(송전선을 땅에 묻는 방식)로 송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