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즌2]굴하지 않는 인간정신이 여기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계삼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인사를 올립니다. 6월 11일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의 기억들은 아직 마음 속에 묻어두고만 있습니다. 저들이 움막 농성장을 침탈하겠다고 경고했던 4월 초순무렵부터 두 달, 가깝게는 초읽기에 들어간 6월9일, 10일, 11일 그 사흘의 시간은 아주 농밀한 시간으로 눈에 그릴 듯 선명합니다. 아직도 많은 주민들은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그 오욕을 딛고서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빈손으로 내팽겨쳐졌으나 다시 일어서시는 것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내일은 26명의 주민분들과 함께 경기도 강촌에 있는 성공회 피정의집으로 '힐링 캠프'를 갑니다. 지금껏 저희와 연대해오신 마음복지관 선생님들이 주관해주시는 휴식의 시간입니다.
제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저도 잘 가늠은 못하겠습니다만, 그동안 그래왔듯이 책읽고 글쓰고 말로 떠드는 삶과는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은 듭니다. 저 자신 어쩔 수 없이 이 싸움속에 머물러 있었으나, 거기서 만난 인연들과 우정의 힘으로 저도 어르신들과 함께 시즌 2의 길을 출발합니다.
저희들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해 주십시오. 평안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글은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알리는 밀양대책위의 문건입니다. 많이 공유해 주시고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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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는 인간 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
- 밀양 송전탑 시즌 2를 위한 시론(試論)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밀양 어르신들의 시간은 아직도 6월 11일에 멈춰서 있습니다.
10년의 싸움, 3년여의 현장 투쟁, 밀리고 밀려 결국 자리잡은 곳이 네 곳 움막 농성장이었습니다. 거기서 8개월여를 먹고 자면서 지키던 움막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최소 일주일은 버틸 각오를 하고서 움막 냉장고에 먹을 거리를 꽉꽉 쟁여 넣어두었지만, 그들이 2천여 경찰병력에 맞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은 30분을 채 넘지 못했습니다. 쇠사슬을 묶었으나 수천의 경찰 병력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하지 못하던 몇 분 할머니들은 옷을 벗어 제꼈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로 움막을 찢고 들이닥친 남성 경찰들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알몸의 70대 80대 노인들에게 커터기를 들이댔습니다.
어르신들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었으므로 움막을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움막에서 보낸 지난 8개월은 참혹했습니다. 농성 움막 앞뒤로 권력과 자본의 발기한 욕망 같은 철탑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떡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패가망신한 집안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빨간딱지처럼 당신들의 사지육신을 조여들었습니다. 움막 위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사용 헬기가 날면 지상의 모든 소리는 거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세상은 저들의 것이며, 당신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는 미물이 된 듯한 치욕의 감정을 수없는 터널처럼 통과해야 했습니다.
지난 10월 공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장에서는 171건의 응급 후송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대책위 일꾼들이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응급실로 달려가면 거기에는 한 지옥도가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을 잃은 채 모로 누운 할머니의 파리한 얼굴,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주머니, 입고 있는 송전탑 반대 티셔츠에 묻어있는 검불과 낙엽부스러기가 말해주는 격렬한 충돌의 흔적, 그들이 뱉어내던 지옥같은 통증의 신음소리가 쟁쟁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고가는 헬기 소음이 불러일으킨 지옥 같은 신경증과 불면의 고통으로 아직까지 주민 33명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꼭 한번,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주민들은 막다른 곳으로 내몰렸지만, 당신들의 진지가 있었으므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빼앗겨버리고 내동댕이쳐질 어느 순간이 오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측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들은 입버릇처럼 ‘그때 우리는 죽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실제로, 화급한 어떤 순간이 촉발할 극단적인 충동으로 그 말씀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희 대책위는 2012년 2월 1일, 故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 2주 뒤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때 저희들의 정식 명칭은 ‘분신 대책위’였습니다. 제2, 제3의 죽음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유한숙 어르신께서 세상을 등졌고, 현장 투쟁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주민들은 맨몸으로 부딪쳤고, 경찰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잔혹한 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주민들은 자주 생과 사의 한계선상으로 내몰리곤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긴 주민 200여세대가 남아 있습니다.
한전이 모이를 주고 키우는 앵무새 언론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철옹성 같던 핵마피아 전력마피아들의 독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엉터리긴 하지만 송주법이라는 보상법도 제정되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이제 765kV 송전선은 새로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원전이든 석탄화력발전이든 대용량 발전은 송전선 확보 때문에라도 신규 건설 의사를 재고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인식,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와 안락이 감춘 비참하고도 서글픈 맨얼굴이 대낮처럼 드러났습니다.
밀양은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밀양 주민들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는 가혹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에 입건된 사안만 89건입니다. 70여명 주민들은 대부분 검찰 조사를 거쳐 기소될 예정입니다. 벌금 폭탄이 밀양에도 떨어질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는 이미 송전탑 찬반으로 딱 쪼개졌습니다. 마을은 그들이 겪고 누리던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쳐다보기도 싫은 얼굴이 된 이웃들과 자기 정당성의 알리바이를 들이대며 싸워야 합니다. 주민들은 날마다 괴롭게 자문합니다. ‘지난 10년의 싸움은 대체 나에게 무엇이었나? 어차피 안 될 싸움, 모두가 말리던 싸움, 그러나 가만히 있어야 했던 것일까?’ 라는.
저희들은 이 시점에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모든 짐을 왜 밀양 어르신들만이 떠안아야 합니까? 10년 투쟁의 뒤설거지를 왜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했던 어르신들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럴 거였다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도 도무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3년 전 어느 날, 한전이 제시한 보상금 받고 도장을 찍어야 했던 것일까요?
우리 사회가 밀양 어르신들을 함께 모셔야 합니다.
당신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남은 생애 내내 당신들을 괴롭힐 패배감, 외로움, 상실감을 치유해 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때 이 부당함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끝내 변화의 물꼬를 튼 분들로서 훈장을 받으셔야 마땅합니다.
잡은 손 놓지 않겠다는 약속이 바로 ‘밀양 송전탑 시즌 2’입니다.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많은 투쟁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썰물처럼 빠져나간 파장(罷場) 이후의 시간 중에 벌어졌습니다. 송전탑이 우뚝 솟은 마을에서,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송전선 아래서도 어르신들은 살아야 합니다. 그때 ‘아무것도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므로, 누군가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누군가가 입증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밀양에서 벌인 무간지옥의 폭력을 증언하고, 정의와 진실의 궤도 위에 이 사태를 올려놓아야 할 수많은 과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되고 송전선이 걸리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이 송전탑을 뽑아내고 말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텨 나가야 할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그렇게 고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껏 보여주셨던 당신들의 넉넉한 인정들이 우정어린 만남을 예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연대는 어르신들을 살아있게 할 것이며, 어르신들은 연대자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밀양송전탑 시즌 2의 과제
<과제 1> 6.11행정대집행 참사의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
6.11 행정대집행 참사는 지상파 방송에서는 그리 심도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그 참혹함과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6월 25일 오후 2시, 국회에서는 정청래 / 진선미 / 장하나 의원실 주관으로 증언대회가 열립니다. 저희는 반드시, 70대 80대 노인들을 상대로 그 끔찍한 작전을 수행한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고 국가의 사과를 받아낼 것입니다.
<과제 2> 7개 마을 농성장, 새롭게 마련
어르신들의 농성장이 다시 마련되고 있습니다. 밀양시청으로부터 돌려받은 냉장고는 모두 퀘퀘하게 썩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다시 새롭게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내부를 고치고 안팎을 예쁘게 꾸미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연대 방문자들과 함께 된장국을 끓여 함께 밥을 먹고, 과일 깎아먹으며 수다도 떨고, 한의사 선생님들이 놓아주는 침도 맞고, 백숙 끓여 놓고 소주도 한잔씩들 하는 그런 공간이 7개 마을에 각각 구축됩니다. 그곳은 사랑방이자 교육의 장이 될 것이며, 게스트 하우스이자 식당 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곳은 끝내 정부와 한국전력이 승리하지 않았음을 실물로써 증언하는 물리적인 거점이 될 것입니다.
<과제 3> “미니팜 협동조합-밀양의 친구들” ; 연대자와 주민들이 농산물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