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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국기업 공해수출 '죽음의 상인' 되려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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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14년 9월17일 106호 환경이슈

산업 수출의 가면을 쓴 죽음의 행렬이 아시아를 휩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이 행렬을 맞아들여 고통받던 한국은 이제 다른 나라로 죽음을 팔고 있다. 그 어두운 행렬은 ‘공해산업’이다. 공해산업이 가는 곳에 반드시 공해병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국가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공해산업이 줄지어 규제가 느슨한 해외로 이전돼간다. 40여 년 전 일본 등 선진국들로부터 대외원조 명목으로 들여왔던 각종 기계·설비들과 함께 말이다. 국내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석면산업은 그중의 하나다. 우리가 겪었던 끔찍한 환경오염 재해를 ‘경제 협력’이란 미명 아래 수출하는 현실을 이대로 두고만 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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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도네시아 시비농에 가동 중인 한-인니 합작 석면방직공장의 작업 환경은 1980년대 열악한 국내 공장의 환경과 거의 비슷하다. 2. 1984년 인도 보팔에서는 미국계 화학약품 제조공장에서 유독가스 사고로 노동자와 주민 등 2800여 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한 주민이 피해를 입은 아이를 안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3. 인도네시아에 한국-인니 합작으로 세워진 석면방직공장에 석면 폐기물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다.

국내에서 있었던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된 ‘원진레이온 사건’. 1980년과 90년대에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이 사건은 환경산업정책과 산업구조를 근본부터 바꾼 전환점이 됐다. 각종 인견사를 만드는 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CS₂)에 중독돼 치명적인 뇌질환에 걸린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다. 이황화탄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신경독가스의 재료로 사용할 만큼 위험한 물질이었지만 취급·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 말까지 940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았고, 이 중 150명이 사망했다. 그중 19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비극적인 참사를 불러온 ‘죽음의 기계’의 피해자는 한국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 설비는 당초 일본의 동양레이온 시가현 제1공장에서 가동하던 것이다. 이 공장의 노동자 44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되자 동양레이온은 1962년 설비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당초 폐기하기로 했던 기계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 과정에서 36억 원에 국내에 도입됐다.

한·일 두 나라에서 버림받은 기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현재 있는 곳은 중국 단둥시의 한 방직공장이다. 1993년에 원진레이온이 폐업한 뒤 공장 설비는 헐값에 중국으로 팔려갔다. 설비를 인수해간 중국 기업은 이 기계를 여전히 가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죽음의 이황화탄소 가스를 내뿜으며 말이다.

공해산업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국경을 넘어 이동할 뿐이다. 국가에서 국가로, 선진국에서 저개발국으로 옮겨간다. 공장만 옮겨가는 게 아니다. 환경오염도 함께 간다. 원진레이온의 사례가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공해산업이 이동할 때 그 위험성과 사고 사례는 철저히 은폐된다. 그래서 똑같은 사고와 위험성 논란이 옮겨가는 곳마다 되풀이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판매자가 사후 관리를 해주는 일반적인 상거래나 무역질서가 이 분야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수출하고 나면 그 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사전에 위험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았던 수출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원진레이온 사건에서도 일본과 동양레이온 측은 생산공정의 유해성을 알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죽음의 기계’를 중국에 수출한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보전, 평화유지, 인도적 지원과 같은 지구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공조체제도 공해산업 수출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죽음의 물질’로 알려진 석면 관련 산업도 아시아 각국으로 이동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석면공장은 동남아 국가로 수출돼 여전히 석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공동조사단을 꾸려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출된 석면산업과 함께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폐질환도 현지에 옮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산업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한국 최대 석면방직기업인 J사. 1990년에 이 업체가 인도네시아 현지에 설립한 합작공장은 여전히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이 업체는 1996년에는 말레이시아, 2000년에는 중국에도 현지 회사를 설립했다. 부산에 있던 공장에서 가동하던 구형 석면 방직기계가 이들 나라로 보내졌다. 그 대신 국내에서는 환경오염이 적은 최신 설비를 도입했다. 이 업체에서 20년 넘게 일한 전직 임원 A씨는 “1994년 양산공장의 석면가스켓 생산설비와 글라스(유리섬유)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들 기계는 J사가 일본의 석면제조업체로부터 1970년대에 들여왔던 것이다. 일본 니치아스의 자회사 다츠타는 J사와 함께 국내에 합작회사를 세운 뒤 청석면과 백석면 방직기계를 한국으로 옮겼다.

1990년, 인도네시아에 석면방직공장이 세워진 이후 우리나라의 석면원료 수입량은 크게 줄어든 대신 석면완제품 수입량이 증가했다. ‘공해생산공정 수출-생산품 수입’이라는 공해수출국가의 전형적인 패턴을 밟아가는 것이다.

한-인니 합작석면방직공장이 가동 중인 인도네시아 시비농에는 6개의 한국계 기업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석면방직업 2개, 섬유업 2개, 염색업 1개, 스테인리스업 1개 등이다. 한국에선 이미 사양화됐고, 환경문제와 산재 문제를 야기하는 업종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간조사단이 인도네시아의 한국계 석면공장 내 석면농도를 조사해보니, 한국의 1980년대 석면공장에서 조사된 농도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보다 개선된 안전시스템은 수출되지 않은 것이다. 수출 대상국의 규제정책 기준이 국내 기준보다 낮아 작업장 환경관리에 투자를 소홀히 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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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에게서 석면 질환의 증상을 발견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현지의 합작 석면방직공장 노동자 265명 중 11년 이상 경력자 95명의 폐기능을 조사한 결과 43%가 비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경력 18~20년의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 3명은 석면폐로 진단됐다. 폐가 굳어가는 석면폐는 석면으로 인한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이 조사에는 한국과 일본의 의학자들이 참여했다. 이 지역 주민들의 폐기능 조사에서도 조사대상의 56%가 비정상으로 나타났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는 인도네시아의 일반인 평균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라며 “석면 비산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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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공해병 사태를 일으킨 원진레이온 공장의 열악한 작업 환경. 독가스 원료인 이황화탄소에 노동자들이 노출돼 940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공해산업 이전 따라 공해병까지 수출

석면산업의 수출 시기는 해당 국가가 석면 관련 규제를 도입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한국에 석면산업을 수출한 일본은 1970년대 석면 관련 규제가 강화되자 자국 내에서 가동하던 제조설비를 한국으로 이전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본의 석면회사 니치아스는 40여 년 동안 아시아 10개국에 20여 개의 석면공장을 설립했다. 석면방직회사가 밀집돼 있던 일본오사카의 센난지역에서는 1960년대 말부터 27개가 넘는 중,소규모 석면공장이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니치아스도 1971년과 1974년 두 차례 청석면·백석면 방직설비를 부산으로 옮겨 국내 최초의 석면방직공장을 세웠다.

1980년대 석면 사용을 금지한 독일에서도 석면방직기업 렉스가 한국에 합작회사를 설립해 백석면 제조설비를 수출했다. 두 나라로부터 설비를 물려받은 한국 석면 기업들은 인도네시아(1990, 1994년)와 말레이시아(1996년), 중국(2000년)으로 수출한다. 국가간에 공해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악순환이 약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이다.

지난 6월 12일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린 ‘아시아 석면피해자대회’ 워크숍에서 인도네시아 석면공장 노동자 시티 크리스티나(47·여)가 석면으로 인한 피해를 증언했다. 1991년부터 한-인니 합작공장에서 일한 그는 “공장에서 일했던 초기에는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기침이 잦아지고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며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함께 갔던 직장 동료 두 명과 함께 석면폐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작업할 때 지급받은 마스크는 특수 방진용이 아닌 일반적인 천으로 된 마스크였다. 그나마 1주일에 한 번 교체해 사용했다. 크리스티나는 “손수건을 겹쳐 쓰거나 자비로 좋은 마스크를 사야 했다. 회사는 우리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석면공장이 수출된 곳에선 어김없이 석면 관련 질환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 석면산업을 수출한 일본 다츠타공업의 경우 노동자들에게서 악성중피종암 13건, 폐암 3건과 다수의 석면폐가 확인됐다. 공장 인근 거주민 중 5명은 악성중피종암으로 숨졌고 52명은 흉막반 진단을 받았다. 독일 렉스의 경우도 공장이 가동됐던 1965년부터 잠복기를 거치고 석면 질환의 잠복기(약 5~30년)를 거친 1999년까지 노동자와 주민 101명이 석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로부터 석면산업을 들여온 한국에서도 1993년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암 노동자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후 최근까지 J사 노동자들에게서 악성중피종암 9건, 폐암 10건, 석면폐 22건이 확인됐고 주민 중 2명이 악성중피종암으로 사망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2008년에 처음으로 노동자와 인근 거주민들에게서 석면질환이 확인됐다.

이렇게 공해산업이 수출입 된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1970년대와 80년대 벤젠을 사용해 노동자들에게 방광염을 일으킨 염색산업이나, 국내 노동자들에게 무정자증과 백혈병 등을 일으킨 전자제품 생산공정(오존층 파괴물질의 대체용으로 개발된 브로모프로판이 원인이었다) 등은 일본과 한국을 거쳐 다시 중국과 동남아 국가로 공장을 이전해 가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공해수출 문제는 시장논리로만 보면 자본의 국가 간 이동과정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들이 겪은 환경오염과건강 피해를 다른 나라에 전가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비윤리적이고 반환경적이다”고 지적했다.

‘공해수출’은 자본 아닌 인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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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환경 관련 국제협약과 국가간 협의기구를 통해 대책을 의논하고 조율할 기회는 많다. 세계보건기구·국제노동기구·유엔환경계획(UNEP) 등 비정부기구 외에도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장관포럼’과 같은 정부간 협의체가 있다. 이런 기구를 통해 공해산업 수출입에 환경안전관리체계가 함께 전수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화학물질 수출입 과정에서 해당 물질의 위험정보를 반드시 알리도록 규정한 유엔환경계획의 ‘로테르담 협약(2006)’도 있다. 다만 이 협약은 가입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대상물질목록을 결정하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석면산업 수출입실태 조사보고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건 수출국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의지”라고 지적했다. 공해산업 수출국의 기업이 수입국가에 세운 자회사와 합작회사의 환경관리 기준을 수출국 수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기업과 국가가 공해산업 이전국가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현지 피해자들로부터 막대한 보상에 직면하거나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일본 미스비시화학은 1992년 말레이시아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해 공장폐쇄명령이 내려졌다. 국내에서도 2009년 석면 피해자들이 국내 기업에 설비와 기술을 전수한 일본 석면기업 니치아스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결국 법원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현지에서 기업 이미지 실추를 감수해야 했다.

공해산업이 저개발국가로 옮겨가는 것은 거스르기 힘든 세계적 흐름이다. 국가의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환경의식과 규제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하고 죽음을 양산하는 공해산업의 위험성을 직접 체험하고도 이를 다른 나라로 떠넘기는 것은 자본논리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국경을 초월한 전 지구적 윤리의 문제이고,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안종주 전국석면환경연합회 회장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기고문을 통해 “단둥으로 옮겨간 원진레이온 방사기계가 최근 북한으로 이전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이 기계가 중국과 북한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는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빠른 속도로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다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국가윤리 측면에선 과거 선진국들이 저지른 잘못을 시차를 두고 답습하고 있다”며 “한국이 그런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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