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고통(25)] 아이들이 죽었는데 가해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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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25)] 아이들이 죽었는데 가해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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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죽었는데 가해자는 없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25>] 도덕 없는 기업이 벌인 기이한 사건

프레시안 2014 5 1

김선경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 유발 독성물질인 가습기 살균제만 처벌을 받게 된 기이한 사건이 될지 모른다. 그 기이함은 한국 사회와 기업 집단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결함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어 가해 기업을 처벌할 수 없다고 하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들은 법적 판단에 맡기자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과학적 진실과 법적 진실 측면에서만 다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과학적 진실은 과학적으로 인정된 절차와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의견을 가진 과학자들의 합의를 통해 도출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관한 과학적 진실 중 하나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실험동물 노출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1차 조사에 접수된 사망자 104명 중 75명의 사례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것으로 판정되었다는 것이다. 즉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과학적 진실은 가습기 살균제는 폐 독성을 가진 물질이며, 신고가 접수된 사망자의 72%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사망한 것이라는 것이다.

위 두 가지 과학적 진실은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을 설명할 뿐, 피해 발생 과정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개입하였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과학적 진실은 사건 발생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제한점도 가지고 있다. 과학적 진실은 가치중립적인 속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측정 가능한 증거를 통해 실체를 파악하는 데 치중하고 측정 불가능한 것을 배제시켜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 가지고 있다. 때로는 불확실성을 가진 과학은 종종 책임 회피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생산과 공급에 관여한 많은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단 한사람도 가해자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법적 진실의 실체이다.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거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서 국가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이 사건에서 국가가 적절하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피해자는 그들이 가해자로 여기는 기업에 그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즉 개인적 복수가 발생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공동체는 다툼과 혼란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처벌만으로는 사회악을 없앨 수 없지만, 국가적 차원의 법적 처벌조차 없다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가 잘못 시인할 때 도덕적 진실 드러나

법적 진실을 밝히는 한 수단인 민사 재판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을 지닌 기업은 대형로펌 등 대리인을 투입하여 피해자를 공격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법적 진실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개입한 많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이 진행되는 법적 진실과 책임 공방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용서와 치유의 단계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배제된다는 문제도 있다. 그 결과 피해자는 가해자를 마트나 언론 매체에서 매일 같이 접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형사 문제로 다루어져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는 도덕적 책임을 내포하는 도덕적 진실이 존재한다. 도덕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규범들의 집합으로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도덕은 악행금지와 선행 ,자율성 존중과 정의 등의 도덕적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적 진실은 이러한 도덕적 원칙과 진실 말하기와 같은 실질적 규칙을 통해 드러나게 되며,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이 스스로 도덕적 책임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구체화된다. 또한 도덕적 진실은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이해관계자들 간의 화해와 포용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도덕적 진실은 피해자의 치유뿐 아니라 가해자 자신을 치유할 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모든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도덕적 진실은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인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이며,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 집단의 도덕적 수준은 잘못을 시인하는 개인이 존재하는가와 집단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 평가된다. 시인은 한 개인의 성품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한 기업 집단에 그런 도덕적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안타깝게 아직까지 용기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업과 한국 사회의 불행이다. 한국 사회를 구원해 줄 용기 있는 한 사람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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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때론 거리에서 직접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때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알렸다. <프레시안>도 올해 봄 9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기사를 내보내는 등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다뤄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걸림돌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피해자들과 함께하며 활동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기획했다. 이 기획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사건의 배경과 원인, 가해 기업들의 태도와 피해자들이 벌이는 소송,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와 교훈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본다.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1) 2013 11 14]; 쌍둥이를 잃은 부모들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2) 2013 11 19];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이들 (최예용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3) 2013 11 26]; 가족2 이상을 떠나보낸 사람들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4) 2013 12 3]; 배구감독에서 의사까지... 다양한 직업의 피해자들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5) 2013 12 13]; 폐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들 (최예용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6) 2013 12 17]; 폐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7) 2013 12 26]; 자매의 죽음 (임흥규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8) 2013 12 31]; 피해자들의 자녀교육 문제 (안종주 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9) 2014 1 7]; 가습기살균제가 갈라놓은 부부는 (최예용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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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의 비극(11) 2014 1 21]; 어린이날인데 미안해 (안종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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