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의 건강사회] 살균제만 피하자? 가습기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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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건강사회] 살균제만 피하자? 가습기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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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건강 사회'] 가습기의 위험학

안종주 건강 디자이너 
프레시안 기사입력 2013-10-25 오전 9:35:21
2000년대 들어 100명이 넘는 어린아이와 임산부 등 대한민국 국민을 연쇄 살인한 범인은 10년이 넘게 지난 2011년이 되어서야 잡혔다. 살인마는 가습기 살균제였다.

하지만 그 범죄를 방조한 이들, 즉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과 판매 허가를 내준 정부는 아직 아무런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뉘우침도 없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은 과거형으로만 존재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미래형으로까지 이어질까 두렵다.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나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들은 살균제가 미생물만 죽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돈을 주고 살균제를 사서 가습기 물통에 넣었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해 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옥문을 여는 것이었다. 살균제가 아니라 세정제, 다시 말해 물통을 씻어내고 닦아내는 용도로만 사용했더라도 이런 치명적인 결과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몸에 좋은 것으로 알고 사용한 것이 되레 몸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가습기 살균제만은 아니다. 탈리도마이드가 그렇고 디디티가 그렇다. 하지만 사전 예방에 소홀하고 돈에 눈이 멀어 기업이 안전성 시험을 외면하는 한, 그리고 정부가 관리 감독을 게을리 하는 한 화학 물질 살인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국인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존재를 알았을 때 앞 다퉈 이 제품을 구입해 사용한 것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회사와 매스컴 등을 통해 가습기 내부와 물통 안에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미생물이 다량 번식할 경우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폭염이 한반도를 덮친 지난 여름 전국 곳곳 가습기 피해자들의 가가호호를 방문해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았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습도를 잘 조절해 비염이 악화하지 않고 감기와 기관지염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또 가습기 청소가 쉽지 않아 미생물을 99.9% 살균해 준다는 선전을 믿고 살균제를 구입했다고 한다. 여기에 가벼운 호흡기 질환 등으로 병의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가습기를 사용해 실내 습도를 잘 조절하라는 의사들의 한결같은 조언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의사들의 이런 조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집안 공기가 건조하면 코, 목, 입술, 피부 등이 건조해져 호흡기 감염병이나 피부 질환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상식처럼 알고 또한 몸으로 느껴왔다. 하지만 지나친 습도는 오히려 집안에서 곰팡이가 쉬 자랄 수 있도록 만들고 집먼지진드기 등이 잘 번식하게끔 해 천식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습도는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아야 한다.

원인 미상 폐 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음이 2011년 드러난 뒤 가습기 살균제는 시장에서 완전 퇴출됐다. 하지만 가습기를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날씨가 쌀쌀해져 곧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새로 가습기를 장만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운데 가습기는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살균제의 공포는 더는 가질 필요가 없지만 그동안 귀에 따갑도록 들어온, 가습기 사용으로 인한 미생물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마음 놓고 가습기를 사용해도 되는가? 물론 아니다. 가습기 청소를 게을리 해 가습기 내부에 광물질이 다량 쌓이거나 미생물이 번식할 경우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도 그 사용 조건에 따라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고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고 또 그럴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지식을 지니고 대처하는 것이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현명한 대처다. 가습기를 안전하게 적절히 잘 사용하면 분명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청소를 게을리 하거나 과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건강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질환은 대한민국에서 처음 일어났지만 가습기의 오용으로 인한 질환 발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70년 난방 및 공기 조절 시스템(HVAC)을 사용하는 사무실에서 일하던 근무자들이 가습기 오염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외인성 알레르기 폐포염에 걸린 사례가 처음으로 보고됐다.

근무자 27명 중 4명이 흉부방사선 촬영에서 비정상 소견으로 나타났다. 이들 환자에게서 혈액을 채취해 검사한 결과 고온에서도 잘 자라는 호열성(好熱性) 세균(Thermophilic bacteria) 양성 반응을 보였다. HVAC에서 가습기 장치를 냉각에서 스팀 방식으로 바꾼 뒤에는 미생물 다량 번식으로 인한 점액이 없어졌고 호흡기 증상을 호소한 근로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71년 가정에서 가습기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도 폐렴이 발생했다. 문제가 된 것은 가열식 가습기였다. 연구자들은 방사선균의 일종을 가습기 물에서 분리해냈다. 미생물이 에어로졸 상태로 사람의 폐 속까지 들어가 그 사람에게서 과민 반응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 뒤 2000년대까지 심심찮게 가습기 오염으로 인한 질환 발생이 보고됐다. 호열성 세균과 비결핵성마이코박테리아, 기타 일반 세균과 함께 곰팡이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밖에도 그람음성세균의 외세포벽인 내독소(엔도톡신)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한 사례도 있었다.

한편, 가습기 폐질환의 원인이 미생물이나 미생물 독소가 아닌 물속에 녹아 있는 광물질로 본 연구도 있다. 가습기를 잘 청소하지 않고 오래 사용하다 보면 표면에 하얀 먼지(white dust)가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물속에 녹아있던 무기광물질(미네랄)이 쌓여 형성된 것이다. 이것이 에어로졸 형태로 사람의 폐 속에 들어가면 폐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2011년 신생아에게서 발생한 독성 폐렴의 원인으로 이 하얀 먼지를 지목했다.

의학자들은 가습기 사용에서 미생물이나 미생물독소, 그리고 무기광물질로 인한 폐 질환을 과민성 폐렴(Hypersensitivity pneumonitis)의 일종으로 분류했다. 독성 폐렴, 간질성 폐렴 등도 가습기 오염으로 인한 질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다. 이밖에도 증상이 비교적 가벼워 감기 증상과 같은 가습기 열, 가습기 질환으로 보고한 사례도 있다.

가습기 폐 질환의 주요 증상은 높은 열, 호흡 곤란, 가슴 압박감, 기침, 몸무게 감소, 오한, 관절통, 근육통, 권태감, 백혈구 증가 등이다. 이런 증상은 독한 몸살감기 또는 독감과 매우 유사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가운데에도 초기에 이런 증상 때문에 치료에 도움이 될까봐 가습기 살균제가 들어간 가습기의 습도 조절을 '강'으로 놓고 세게 틀고 지내다 오히려 피해를 더 키운 사례가 제법 된다. 따라서 감기나 독감이 오래 가거나 잘 낫지 않을 경우 이제는 가습기 폐 질환을 한번쯤은 의심해볼 만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습기 폐 질환 사례가 공식 보고된 바는 없다. 이는 정말 환자가 단 한 명도 없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고 지나쳤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엄청난 희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재앙 사건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런 사건도 10년 넘게 그냥 지나쳤는데 이보다 그 건강 악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이는 가습기 오용으로 인한 폐 질환 환자를 우리나라 의료진이 찾아내 보고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현대 위험 사회에서 개개인의 건강도 국가가 분명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주지도 않기 때문에 개인이 상당 부분 올바른 건강 지식을 몸에 지녀 이를 실천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 국가와 개인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위험과 건강에 관한 지식들이 서로 잘 소통될 때 건강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바른 가습기 사용법

- 가습기 물은 되도록 무기광물질이 없는, 증류수 또는 역삼투압방식으로 정수한 물을 사용하라.
- 가습기 물통 청소를 매일 하고 사용하지 않는 한낮에는 물통을 몇 시간씩 햇볕에 잘 말려라.
- 가습기 내부도 2~3일에 한 번은 반드시 깨끗이 청소해주어라.
- 가습기 내부나 물통 안에 미끈한 것이 만져지거나 보이면 미생물막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철저하게 청소한다.
- 뜨거운 증기가 나오는 가습기는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고 사용한다.
- 습도가 높으면 무조건 좋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정 가습을 하는 것이 좋다.
- 겨울철 실내 공기를 과도하게 높이는 난방을 피하고 자연 가습을 활용하라.
- 가습기 사용 지침과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읽고 실천하라.
- 가습기에 화학 살균제가 아닌, 살균 효과가 있다거나 몸에 좋다는 은나노 물질이나 천연물질 등의 사용도 함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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