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엄마,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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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엄마, 웃어요

임흥규 0 5070

엄마, 웃어요

 [포토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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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0)군이 11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석현초등학교로 엄마와 같이 등교를 하고 있다. 임군은 폐기능 손상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용인/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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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0)군이 10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집에서 TV프로그램 ‘런닝맨‘을 보면서 좋아하고 있다. 임군은 폐기능 손상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용인/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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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0)군이 11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집에서 등교를 하기 위해 윗옷을 갈아 입고 있다. 임군은 폐기능 손상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용인/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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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10)군이 11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석현초등학교 3-6에서 국어수업을 하고 있다. 임군은 폐기능 손상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용인/김명진 기자

아침 8, 이제 막 일어났지만 코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임성준(10)군의 표정이 밝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학교를 가는 날이다. 급하게 아침 식사와 세수, 양치를 마치고 어제부터 준비한 색연필과 지우개, 책이 담긴 가방을 멘다. 동생과 자신을 동시에 챙기는 엄마가 바쁘자 손수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끌고 승강기에 오른다. 오랜 시간 해온 일이어서 인지 성준이의 행동이 익숙하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경기도 용인시 영덕동 석현초등학교에 도착하자 선생님과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성준이를 반긴다. 어머니 권미애(35)씨는 안심이 안 되는지 교실 밖에서 성준이가 수업받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학교를 떠난다.

성준이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돌이 지나자마자 폐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 생후 13개월째인 2004 2, 이유 없이 분유를 먹다가 토하고 열이 나서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단순히 감기라며 약만 주었다. 며칠이 지나 심하게 열이 오르고 폐렴 증상이 생기자 경기도 수원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뒤 아이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돼 호흡곤란 증세가 왔다.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다행히 성준이는 몇 번의 심폐소생술과 수술을 거쳐 목숨은 건졌다. 지역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듣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 1년여를 중환자실에서 생활했다. 2005 1월 기도에는 산소호흡기, 허리에는 위에 음식을 공급하기 위한 튜브를 삽입한 채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다.

퇴원한 뒤에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다. 장기간 입원으로 인해 기도 협착, 장기 손상, 골다공증, 폐동맥 고혈압 등 다양한 합병증이 생겼다. 열이 심하게 나면 다시 입원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치료해야만 했다. 성준이는 병원에서 말할 기회가 없었다. 호흡 자체가 힘들었다. 언어장애와 우울증이 생겨 소아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병원을 다니면서도 아픈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병원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론화된 때는 2011년이다.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의 엄마와 아이들이 호흡곤란으로 죽기 시작했다. 이유를 살펴보니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뒤 정부는 자발적인 리콜과 소비자 사용 금지 권고 조치를 내렸다. 2011년 말에는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지정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접수를 받고 조사를 하고 있다.

현재(8)까지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는 총 401건이고, 이 중 12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대부분은 면역력이 약한 엄마와 아이들이다. 목숨을 건진 이들은 폐섬유화, 급성호흡부전증, 폐렴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살균제 판매회사와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성준이의 경우도 이제까지 1억원 넘는 돈이 치료비로 쓰였고, 지금도 한 달에 70여만원이 치료비로 쓰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은 호흡기 관련 질환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제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5월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8월에 피해자들에게 우선 의료비를 지원하고 판매업체들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모임’ 강찬호 대표는 “단순한 의료비 지원도 필요하지만,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당한 가족과 피해자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활이 가능한 피해자 구제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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