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잡으려다 멀쩡한 애 잡는다!"

가습기살균제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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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잡으려다 멀쩡한 애 잡는다!"

최예용 0 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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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건강 사회'] 건강 좀먹는 살균제

대한민국에서는 살균 열풍이 불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학교와 골목마다 '때려잡자 공산당'과 '멸공'이 구호로 내걸렸다면 지금의 한국인 의식 속에는 '때려잡자 세균', '박멸하자 곰팡이'의 구호가 각인돼 있다.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이런 구호를 외치는 생활 화학 용품 회사의 광고 선전이 요란하다. 대한민국은 항균 시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살균 시대다. 그것도 열풍이 불고 있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살균 열풍은 국민 전체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게 만들고 있다. 이미 그 첫 재앙이 가습기 살균제 집단 사망 사건으로 현실화 했다. 이 사건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진 재앙이다. 세균과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을 죽이려다 사람까지 임신부,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마구 죽인 화학 물질 테러 사건이다. 생활 속 화학 물질 무방비 재난이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다. 유독 대한민국에서 재앙이 터진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살균 열풍 때문이다. 세균에 대한 공포, 곰팡이에 대한 두려움이 이번 재앙의 저 깊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세균과 곰팡이는 박멸해야 할 나쁜 놈으로, 가습기 살균제는 이들을 고맙게도 싹 없애주는 착한 제품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재앙은 아직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교훈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살균 열풍이 수그러들었어야 한다. 살균제 따위를 만들어내는 생활 화학 용품 회사도 요란한 선전을 멈추거나 자제했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금도 언론은 대중의 세균 공포 부추기를 계속하고 있다. 언론은 오래 전부터 손과 휴대전화나 지폐, 쇼핑카트 손잡이 등 대상을 바꿔가며 세균 공포를 부추겨왔다.


최근에는 칫솔에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공포 부추기기 보도가 있었다. 이런 보도가 나올 때마다 생활 화학 용품 회사는 쾌재를 부른다. 이들에게 이런 보도는 자신들이 쏟아 부어야 할 수십 억 원의 광고 선전보다 더 효과적이다. 세균은 나쁜 놈이다. 모두 죽여야 한다. 강력한 살균제를 사용해서라도. 생활 화학 살균 용품 회사들이 하고 싶은 말을 언론이 해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언론과 생활 화학 용품 회사는 세균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한 강력한 동맹을 맺었다.

이들은 대중매체 광고 공세를 펴며 유해 세균뿐만 아니라 모든 세균과 곰팡이 등 미생물은 모조리 죽여 없애야 우리 몸과 환경이 건강해진다고 떠든다. 이런 언론 보도와 생활 화학 용품 회사의 광고 선전에 대중들은 비판 의식 없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들에게 살균제와 항균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곰팡이, 바이러스를 없애주는 고마운 과학기술의 산물로 비쳐진다. 이들의 대부분은 세균과 곰팡이, 바이러스의 차이를 잘 모른다. 그저 죽여 없애야 할 위험한 놈 정도로만 생각한다.

사실 가습기(물통)를 물로만 하루에 한 번씩 세차게 잘 헹구어내기만 해도 가습기 물통 속에서 미생물이 대량 번식(그것도 재수 없게 유해 미생물이 대량 번식해야 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앞 다퉈 돈을 주고 살균제까지 사서 넣었다. 정부 당국의 무관심과 무능, 그리고 제조·판매 기업의 비윤리성이 함께 어우러져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건강해지려다 오히려 건강, 아니 생명까지 빼앗긴,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생물에 대한 지나친 공포 부추기의 포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재앙이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50일이 넘는 긴 장마에 집안 곳곳에 생겨난 곰팡이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아무런 위험 의식 없이 살균제를 남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살균 열풍은 화장실, 옷장뿐만 아니라 옷에 묻은 곰팡이와 세균도 모두 싹싹 없애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게끔 만들고 있다. 이들은 세균이 위험하다거나 건강에 나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언론 보도에 세뇌를 당해 극우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외치는 '멸공'보다 더 소리 높여 '멸균'을 외친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나중에 더 큰 위험으로, 때론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많은 사례에서 보아왔다. 항생제 남용은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의 재앙으로 돌아왔다. 살균제나 살충제와 같은 것도 항생제와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의 열풍은 엄청난 수의 인명을 앗아간 재앙으로 이어졌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99.9퍼센트 죽일 정도의 살균제면 인체에도 심각한 또는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을 예견해야 했다. 하지만 살균제 열풍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마비시켰다. 화학·독성 전문가까지 말이다.

전문가조차 이러했으니 대중들의 사고야 오직 했겠는가. 첨단 과학기술에 현혹된 사람들은 새로 개발한 화학 제품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미생물만 죽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 단 한 명의 사용자도 그것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생활 속에 쓰이는 다른 살균제도 마찬가지다. '락스'와 같은 소독제와 표백 살균제, 소독제, 살균제, 살균제가 들어간 세제 등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그 가족은 '화성인'으로 출연해야 할 것이다. 지구인들이라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항균 시대를 이미 넘어 살균 시대 한 복판에 접어들었다. 어떤 이는 미생물에 대한 공포가 도를 넘어서 한 달에 30~40만 원을 들여 항균·살균제를 구입해 온 가족이 가구며, 소파며, 침대며, 부엌이나 화장실이며, 심지어는 옷이나 손발 등이며 보이는 곳은 죄다 화학 약품을 뿌려 댄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균이 감염되면 치명적인 질환에 걸려 생명을 잃을까봐 염려돼 뿌리고 또 뿌린다.

이 정도가 되면 미생물뿐만 아니라 사람을 잡기 십상이다. 이런 가정이 만약 몇 십 년간 이런 생활을 지속한다면 그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하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보통 가정에서도 이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미생물에 대한 공포나 적개심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살균 시대를 향해 쏜살같이 나아간 배경에는 물론 사스와 신종플루, 구제역 대유행 등과 같은 신종 바이러스 유행병 탓도 있다. 당시 방역 당국이 벌인 대대적인 손 씻기 열풍은 비누 등 세제로 손을 씻는 것(이것까지는 좋았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알코올과 각종 화학 약품으로 손을 씻는 습관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로 화학 물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험 의식을 느슨하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도마나 칼, 행주 등은 당연히 깨끗이 씻거나 삶아 살균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입는 옷이나 수건까지 죄다 독성이 있는 화학 물질로 살균 세탁을 해야만 할까. 아니다. 그냥 비누나 때가 잘 빠지는 세재로 세척한 뒤 잘 말리면 된다. 잘 마른 빨래에 설혹 곰팡이나 세균이 남아 있다 해도 이들이 왕창 번식할 리가 없다. 더더군다나 이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세균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를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비 오는 날에 벼락이 무서워 우산 쓰고 길거리를 활보하지도 못할 것이다.

곰팡이 포자는 많이 들이마시면 폐 건강에 적신호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집안이나 자동차 등에 곰팡이 냄새가 나면 곰팡이를 없애고 곰팡이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통풍과 건조 등 보통의 방법으로 곰팡이 서식을 막을 수 없다면 항균제나 곰팡이 제거제를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그냥 마구 뿌리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호흡 보호구를 착용하고 나중에 실내 공간을 이용하기 전에 충분한 환기를 하는 것은 필수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곰팡이 제거제에는 차아염소산나트륨(Sodium Hypochlorite) 따위의 화학 살균 성분이 상당량 들어 있다. 곰팡이가 죽을 정도면 사람에게도 물론 좋지 않다는 것을 늘 염려에 두어야 한다. 이런 살균 성분은 마시더라도, 피부에 닿더라도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 사용 주의 사항을 보면 이런 내용들이 있거니와 눈에 들어가면 즉각 씻어내고 의사를 찾을 것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학 용품을 만들어내는 회사들은 이런 점들을 결코 강조하지 않는다. 이들은 살균제 성분의 정확한 이름조차 제품 포장지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성분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은 그것의 독성을 잘 모르고 사용한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했거나 중증 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을 만나보면 거의 대부분 살균제의 주의 사항 등을 잘 읽지 않았다. 설혹 이를 읽었다 하더라도 머릿속에 이를 각인해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며칠 전 시중에 나와 있는 살균제와 항균제, 곰팡이 제거제, 소독제, 표백제 등의 용기 포장에 있는 제품 성분이나 주의 사항 등을 읽기 위해 마트에 들어가서 진열장에서 수십 개 제품을 골라 읽어보았다. 너무나 작은 글씨인데다 어떤 경우는 플라스틱과 금속 캔의 번쩍거림까지 겹쳐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분씩 눈을 비벼가며 두통이 생길 정도로 보아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주의 사항이나 제품 성분을 읽겠는가. 처음부터 안전한 제품만 제조·판매되도록 하든지, 아니면 정부 차원에서 살균제 제품의 위험성에 대해 시민의 눈높이에서 위해소통을 하든지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지금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항균제와 살균제, 곰팡이 제거제, 표백제, 소독제는 결코 안전한 제품이 아니다. 이런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살균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을 고르거나 그냥 비누나 물로 옷을 빨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각종 세제와 살균제, 그리고 섬유 유연제 등에 넣은 인공 향료도 몸에 해로우면 해로웠지 결코 이롭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조심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세균이나 곰팡이가 아니라 살균제와 같은 생활 화학 용품이어야 하지 않을까. 식중독균이나 감염성 병원균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학교에서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매스컴에서 많이 듣고 배우는 반면 화학 물질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까막눈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싸워야 할 대상은 언론의 지나친 세균 공포 부추기와 살균제 사용을 부추기는 생활 화학 용품 회사들의 공격적이고 세뇌적인 광고이다.

글 안종주

2013년 8월 8일 프레시안 정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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