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사 부정하는 가습기살균제 기업

가습기살균제피해
홈 > Hot Issue > 가습기살균제피해
가습기살균제피해

정부조사 부정하는 가습기살균제 기업

최예용 0 5781
"폐렴균에 의한 사망" 주장에 "너무하다, 너무해"
베이비뉴스, 기사작성일 : 2013-07-24 14:05:30

비가 억수처럼 내린 지난 23일 오전 10시 1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5층 566호 민사법정에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피해 당사자와 가족 등 7가구가 숨죽인 채 방청석에 앉았다. 이날은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 판매업체 등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변론기일. 피해자 측 변호인과 (유)옥시레킷벤키저, (주)한빛화학, 롯데쇼핑(주) 측 변호인이 참석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가습기살균제 제품 수거 이후 폐손상질환에 대한 환자 신고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유)옥시레킷벤키저 측 변호인은 보건당국 조사 결과 자체에 의문점을 제시하며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폐렴균이 가습기를 통해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가습기살균제가 아닌 균에 의해 피해자들이 사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판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질병관리본부가 자료를 주지 않고 답변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방청석에서는 피해자들의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피해자들은 “정말 너무하다, 너무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렇게 20여분. 다음 변론기일이 오는 9월 24일로 잡혔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4월 법원에 소장을 제출한 이후 변론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대전, 충주 등지에서 새벽같이 올라왔다. 벌써 다섯 번째다. 하지만 늘 증거서류 제출 등을 요구하며 시간을 끄는 가습기살균제 판매업체 측의 행태에 분노하며 자리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그러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로 폐이식을 받고 힘겹게 살아가거나 가족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고통을 호소하며 살아가는 아내, 딸을 지켜보는 가족들이었다.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라는 분명한 정부 조사결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정부 조사가 잘못됐다”는 사측의 주장에 억울한 눈물을 참은 채 짧지 않은 소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7.jpg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공판이 열린 23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백현정(34, 서울) 씨가 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8.jpg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공판이 열린 23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이재남(34, 충주) 씨가 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9.jpg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공판이 열린 23일 오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족 장동만(48, 대전) 씨가 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마스크를 쓰고 이날 법정을 찾은 백현정(34) 씨는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인데 시간을 끌기 위해 없는 말을 한다”며 분노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이식을 받은 환자다.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쓰기 시작한 롯데마트의 PB 상품인 와이즐렉은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둘째 딸은 생후 15개월 되던 때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백 씨는 지방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둘째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백 씨와 큰 딸(당시 6살)도 작은 딸과 같은 증상으로 서울아산병원에 실려가 결국 폐이식 수술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큰 딸은 상태가 더욱 심각해 심장이식수술까지 받았다. 백 씨는 “작은 아이가 하늘로 간 사실을 폐이식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작은 아이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고통스럽게 보낸 거 같아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신장까지 안 좋아진 8살 큰 딸은 일주일에 네 번,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백 씨와 딸의 이식 수술비로만 3억 원이 들었다.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허덕이는 백 씨가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은 아무 것도 없다. 기업 측에서는 "정부 조사가 잘못됐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현실이 잔혹하기만 하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법 제정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인 것과 유사법률 양산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소송이 몇 년을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무책임한 주장에, 피해자들은 기댈 곳 하나 없이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내고 있다.

 

법정을 나서 피해자들은 법원 후문 앞에 섰다. 그들은 쏟아 붓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긴 소송, 그들의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공정한 재판 결과와 책임 있는 보상, 구제가 이뤄지길 바라는 소망을 놓고 싶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길을 지나던 한 시민은 “우리집도 가습기살균제를 썼었는데 짧은 기간 써서 다행이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모습에 가슴 아프다”며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좋은 대책과 또 올바른 소송결과가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