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앤장'! 127명 가습기 연쇄 살인 범인은 "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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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앤장'! 127명 가습기 연쇄 살인 범인은 "세균"?

최예용 0 5727

[현장] 뻔뻔한 업체, 대단한 변호사, 절망의 피해자

프레시안 2013년 7월24일 기사

"레지오넬라균에 의한 폐렴균이 가습기를 통해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판매 업체) 측 변호사가 말하자 방청 객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앞서 법정에서 네 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의 뻔뻔한 태도를 지켜봐 온 장동만(남·48) 씨는 지친 목소리로 "정말 너무하다. 너무해"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으로 네 살 난 딸을 잃었다. 아내는 폐 이식 수술 후 한 달에 수백만 원어치의 약을 삼키며 버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유독성 발표했는데…사 측은 '레지오넬라균' 운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48부) 동관 566호에서 가습기 살균제 민사 소송 5차 변론 기일이 열렸다.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제조 업체), 롯데쇼핑('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 판매),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은 지난 1월에 시작됐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나도록 사 측은 피해자들의 병원 기록을 포함한 각종 서류를 요청하기만 할 뿐 재판에는 별 진전이 없다.

모두 '김앤장' 변호사로 구성된 사 측 변호인단은 이날 열린 변론 기일에서도 피해자들의 병원 기록을 요청했다. 또 피해자의 폐 질환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 아니라 가습기에서 나온 레지오넬라균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가습기에서 레지오넬라균이 나와 127명을 사망(5월 13일 기준. 질병관리본부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접수)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지난 2011년 8월 보건복지부의 역학 조사 결과 발표를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폐 질환에 걸릴 확률이 47.3배 높았다. 역학 조사 기간에 가습기 자체의 위험성은 거론된 적도 없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동물 실험을 통해 독성이 확인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옥시싹싹·와이즐렉·홈플러스·가습기클린업·세퓨·아토오가닉 등)에 대해 수거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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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역학 조사가 발표되고 한 달여가 흐른 지난 2011년 9월 29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명 기자 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질병관리본부 때문에 재판 늦어진다?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발표하고 제품을 수거한 2011년 11월 이후로 유사 폐 손상 증상을 보인 환자가 추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박하기도 했다. 사 측 변호인은 "신규 환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며 "유사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도저히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애먼 서류만 요청하며 재판을 끌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셀프 해명'을 하기도 했다. 사 측 변호인은 "재판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질병관리본부가 자료를 주지 않고 답변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탄식…"본인들이 사용해보라"

피해자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20분간 진행된 변론 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충청북도, 전라도 등 지방에서 올라온 피해자들도 있었다. 서너 시간을 들여 상경해서 '레지오넬라균'이라는 사 측의 새로운 핑계만 들은 셈이다.

장동만 씨는 "어떻게 에어컨에서나 나온다는 레지오넬라균이 원인이라고 할 생각을 하느냐"며 "돈이 그렇게 좋은가"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백현정(여·34) 씨는 "설령 레지오넬라균이 원인이라고 치더라도, 그런 균을 막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 아니냐"며 "뭐라고 해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데 시간을 끌려고 논리도 없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렇게 안전하면 본인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보라"고 덧붙였다.

그는 롯데마트의 PB 상품인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지난 2011년, 당시 생후 15개월이던 둘째 딸을 잃었다. 현재 8살인 첫째 딸은 폐·심장 이식 수술 후 심장 장애 2급 판정을 받았으며 본인도 폐 이식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다. 두 사람의 이식 수술비로만 약 3억 원 정도가 들었다.

이런 피해자들에게 사 측은 레지오넬라균을 운운하고 있다. 9월 24일에 열리는 다음 변론 기일에서는 어떤 말로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을 주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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