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 정부조사시작…성준이 폐검사 받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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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 정부조사시작…성준이 폐검사 받던 날

최예용 0 7590

“첫돌부터 산소호흡기 달고 사는 10살 아이 고통, 끝이 안 보여요”

아동용 휠체어에 앉은 작은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3일 오후 국립중앙의료원
건강검진센터에 들어섰다. 앉은키 높이의 산소통을 안고 있었다. 첫돌 직후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앓고 있는 임성준군(10)이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개별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산소호흡기 안 하면 많이 힘들어하나요?”

“네, 안 하면 10분 정도 버텨요.” 성준이의 어머니 권미애씨(36)가 답했다.

“숨쉴 때 여기(목)에서 소리가 나나요? 아, (기도를) 절개했구나.”

성준이는 소아과 검진부터 받았다. 만 10살인 성준이의 몸집은 또래보다 매우 작은 편이다. 의사가 차가운 청진기로 아이의
작은 가슴과 등을 살피는 동안 병원 검진에 익숙해진 성준이는 무심한 듯 장난감 트럭을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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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가 손상된 임성준군이 3일 서울 을지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피를 뽑기 위해 주삿바늘을 꽂을 때 힘들어하고 있다. 10살인 성준이는 돌 지나고 폐 손상이 발견돼 9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아이의 목에는 더운 날씨임에도 흰 손수건이 감겨 있었다. 기도를 절개하고 호흡기를 끼워온 탓에 목에 작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산소통과 연결되는 튜브를 코에 꽂고 다니지만 지금도 밤에는 목에 호흡기를 끼고 잔다고 했다. 성준이가 호흡할 때마다 숨찬 소리와 함께 배가 부풀어올랐다 가라앉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후’ 부는 걸 잘해야 돼. 선생님은 120이 나왔네. 성준이 한번 해볼까?”

의사는 성준이의 폐기능 검사를 위해 숨을 내쉬는 강도만큼 눈금이 올라가는 기구를 입에 물렸다. 그러나 성준이는 숨을 참았다가 의사 지시대로 “있는 힘껏” 내쉬었지만 눈금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다.

“보통 5~6살이면 하는데….” 의사가 말했다. 결국 성준이는 폐기능 검사를 건너뛰었다. 가슴 엑스레이(X-레이), 폐CT 촬영, 혈액검사가 이어졌다. “빨리 가자”는 성준이를 권씨는 “오늘 주사는 없어”라며 달랬는데 결국 채혈을 위해 주삿바늘이 꽂히자 아이는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성준이의 투병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씨는 2003년 1월에 태어난 아이가 만 한살이 될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이용해 가습기를 틀어줬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숨을 잘 쉬지 못했다.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흡입성 폐렴, 급성호흡심부전, 간질성 폐질환 등 진단이 계속 달라졌다. 그 후 중환자실에서 1년간 생활한 뒤 성준이는 줄곧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다. 아이는 학교 갈 시기를 놓쳐 집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있다. 올해는 그래도 월요일마다 친구들을 사귀러 학교에 가면서 성준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성준이네는 이제 가습기 사용 환경을 살피기 위한 방문조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도 거쳐야 한다. 권씨는 “10년 전이어서 (가습기 살균제)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족
사진을 뒤지다가 창틀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가 함께 찍힌 사진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섬뜩하더라고요. 가습기 살균제를 뒤로하고 가족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는 게….”

검사를 모두 마친 권씨가 아이의 휠체어를 세우고 1층 로비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며 말했다.

정부는 원래 성준이 같은 신고자들에 대한 개별조사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나마 질병관리본부에 만들어진 민관 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사퇴 결의 등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정부를 움직였다.

추가조사에 필요한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는 권씨에게 “어쨌든 이제라도 정부의 개별조사가 시작됐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권씨는 담담히 “앞으로를 봐야겠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한국에서 최초로 ‘발명’되고 대규모로 판매되는 동안 공산품 허가·관리망은 완전히 뚫려있었는데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에 완전히 지친 모습이었다.

피해자들을 구제할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에 상정된 채로 멈춰서 있다. 권씨는 “아이가 막 아팠던 첫 1년에만 1억원이 들었고 그 후로도 폐동맥
고혈압, 심장 문제가 생겨 돈을 빌려가며 어렵게 치료를 받았다”면서 “그렇지만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아이가 사회에 나가 홀로 설 수 있을지 걱정되고,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구제법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씨는 병원을 떠나면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민세도 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란 생각이 든다.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고 했다.

 

 

경향신문 2013년 7월4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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