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 와서 미적대나… 사생결단의 각오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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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 와서 미적대나… 사생결단의 각오로 왔다”

최예용 0 4970

가습기 살균제 구제법 진통 끝 상정

ㆍ국회 찾은 피해 가족들, 여권 부정적 기류에 반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19일 국회를 찾았다. 다들 “사생결단할 각오로 왔다”고 했다. 오전 10시 첫 행선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방청석이었다. 민주당 장하나·홍영표·이언주 의원과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발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법률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3년 전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 피해 원인으로 밝혀진 뒤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줄 수 있는 법안이다.

방청석에서 여야 의원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가족들은 화가 나 있었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고지원은 곧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라면서 “제조업체의 기금 출연 등 정부 재정이 아닌 방법으로 돕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다시 가슴의 불을 댕겼다.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통과되고 뒷짐졌던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높아졌던 ‘입법’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법 제정에 소극적 입장으로 다시 후퇴한 주무부처(환경부) 장관은 국회 환노위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이달 초 열린 당정 협의에서는 기획재정부의 반대 등을 이유로 여권 내 기류가 법안에 부정적으로 흐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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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19일 국회에서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와 면담하면서 “6월 국회에서 피해구제법을 만들어달라”고 말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맘 졸이며 환노위 회의를 방청하던 피해자 가족들은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와 야당 환노위원들을 면담하면서 내내 국회 청사를 떠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로 세살배기 딸을 잃었다는 백승목씨(41)는 환노위 방청석에서 “내가 사다준 제품으로 내 아이가 죽은 데서 오는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폐손상이라고 밝혀졌는데 정부도, 기업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지난 4월 결의안에 찬성해놓고 이제 와서 법안 처리에는 미적대고 있다”면서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밝혀냈고, 정부가 허가해줬던 제품을 회수했다면 당연히 법을 제정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라고 국회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10년 딸을 잃고, 2011년엔 부인마저 폐이식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장동만씨(48)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됐다. 장씨는 “박근혜 정부가 워낙 ‘국민 안전’을 외쳤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지금 와서 정부와 여당은 말장난으로 법안 상정부터 미적대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아내 병원비로 한달에 1500만원가량 나가는데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이 이달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한달에 110만원씩 더 들어가게 생겼다”면서 “만일 이번에도 안된다면 어차피 가망이 없기 때문에 내 생명이라도 걸어야겠다고 각오하고 왔다”고 말했다.

2008년 부인을 잃은 최주환씨(58)는 “나는 그래도 아내가 죽으면서 고통이 끝났지만 생존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고통에 빠져 있다”면서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병원비라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노위 여야 위원들은 오전에 설전을 벌였지만 오후 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했다. 장동만씨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라면서 ‘한 걸음 진전’에 감격스러워했다.

 

 

2013년 6월20일자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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