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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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피해자의글2>"철탑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최예용 0 7653

철탑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서

단식농성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투신자살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 만큼 고통스럽지 않거나 절박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아이를 잃었고,

배우자를 잃었고,

엄마 아빠를 잃었습니다.

또 남아 있는 생존자 역시 목숨이 위태롭거나,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일은 5·18민주화항쟁만큼이나 어이없고 잔혹한 일이었습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국민의 생명이

기업의 이익을 더 염려하고 본인의 안위만 꾀한 자질미달의 공무원들 덕에 어이없이 희생됐습니다.

총칼을 직접 들이대지는 않았다 해도

유독물질로 국민을 위협하는 기업을 방관한 것은 그와 다를 바 없습니다.

희생자들이 겪은 간질성폐렴, 급성호흡부전으로 말미암은 고통스런 치료 과정들,

생존자들이 숨쉬는 순간마다 느껴야 하는 극심한 고통은

다른 질병에 비할 데 없는, 처참하지 그지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배상과 보상을 거부한 채 정부가 기업 뒤에 숨어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과거사를 부정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 정부 행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해결은 소송으로 하라"는 정부의 매몰찬 말에

힘겹게 소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흡한 법 체계와 무능한 정부 탓에

그마저도 결론이 뻔한 맥빠지는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말에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기한이 지나가면서 기다림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국가가 피해자들을 사적인 복수의 길로 몰고 있다"는 피해자들의 얘기에 주목하십시오.

더이상 환자들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에,

날마다 찾아오는 울분 터지는 고통 속으로 내몰지 마십시오.

철탑에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해서

고통을 잊었거나 포기하고 있다 여기지 마십시오.

조용히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일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 시한폭탄의 폭파 버튼은 정부에게 있습니다.

여러 이슈에 묻혀 관계자들이 외면하는 사이

피해자들의 원한은 깊어만 가고

생존자들은 천문학적 치료비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못 내보고 있는 사이,

가해 기업은 비열한 모습을 감추고 승승장구하며

또다른 소비자들을 현혹하면서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피해자들이

언제 어디서 그 분노를 표출할지 알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의 분노가 파괴적 행동으로 변하기 전에

그런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

대책 이행을 촉구합니다.

이 사태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천문학적 금액의 치료비로 고통받고 있는 생존자들에게 의료비 지원을,

희생자들에게는 합당한 배상을,

파렴치한 살인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징벌적손해배상 적용을,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한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 완비를

요구합니다.

--- 아직 이런 얘기들을 글로만 표현할 수 있을 뿐, 말로는 하지도 못하는 저는(한 마디라도 내뱉으려면 울기만 해서...아직도 저는 너무나 괴롭습니다, 다들 마찬가지시겠지만.. 그래서 얼마 전 들어온 인터뷰 요청도 고통스럽게 거절했습니다), SNS를 통해 이런 글로라도 원통함을 표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생활하느라 이것저것 발등에 떨어진 불 끄다 보면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 해결이...수 십년 걸리는 모양입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 위 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 인터넷카페에 11월26일 올려진 글로 필자의 동의구해 이곳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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