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피해배보상 조정위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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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피해배보상 조정위원장 인터뷰

관리자 0 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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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인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위원회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조정안 마련 과정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가습기 살균제는 한장의 사진으로 고착돼 있다. 코에 굵은 호스를 꽂고 바퀴 달린 산소통을 끌며 하교하던 소년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안방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린 사건은 이내 관심에서 멀어져도 괜찮았던 걸까. 간헐적인 언론 보도는 그렇지 않다고 전한다. 기자회견의 손팻말은 피해자들의 극심한 고통이 현재진행형임을 일러준다. 그러나 사건은 여전히 기승전결의 이야기(서사)로 구성되지 못한다. 당연히 우리는 이 사건에 무지하다는 사실에조차 무지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지난해 10월5일 출범했다. <한겨레>를 시작으로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피해자 단체들, 제조·유통 기업들과 함께 해법을 찾는 ‘사적 조정기구’라고 했다. 구체적인 상을 그리기 어려웠다. 주어진 정보가 추상적이었고, 사망자만 1000명이 훌쩍 넘는 거대한 참사를 공적 개입 없이 해결하려는 시도가 낯설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 뒤 조정위도 외부에 눈에 띄게 활동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출범 100일이 갓 지난 14일,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을 조정위 사무국 구실을 하는 법무법인 ‘한결’에서 만났다. 그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헌법재판소장 국회 임명동의가 부결되는 일을 겪었다. ‘소수의견’의 상징인 그가 ‘타협’이 요구되는 ‘조정’을 맡은 것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의 이야기를 어떤 관점에서 구성해가고 있을까. 이야기는 얼마나 무르익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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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지난해 8월 광주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찾아왔다.(김 위원장은 조선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10년이 됐는데 기업들과 여러 피해자 단체들이 이젠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며, 조정위원장을 맡아달라 했다. 나를 왜 적임자로 보느냐고 물으니, ‘재판에서 매우 균형 있는 자세를 지켜와서’라고 하더라. 헌법 재판에서 소수의견을 낸 걸 두고 자기 생각만 관철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소신을 믿고 맡길 만하다고 해서 찾아온 거 같더라. 판사 시절 조정을 비교적 많이 성사한 경험도 있어서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기로 했다.”

―사건 발생 10년이 지났다고 했는데, 그 긴 서사의 시작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애초 일반세정제로 쓰던 물질을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가습기 세정제로 쓰면서 흡입 독성에 대한 확인이나 검증 등이 부족해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고 광고한 기업들, 위험한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가 미흡했던 정부, 더 추가하면 전문가들의 방기도 있었다. 흡입 독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확인 과정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2011년 초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폐 손상으로 4명이 숨지고, 3명은 폐 이식 수술로 겨우 목숨을 건진 일이 일어났다. 병원이 정부에 역학조사를 요청했고, 그해 8월31일 질병관리본부가 폐 손상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하고, 제품의 사용과 판매 금지를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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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8일 오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당시 13) 학생이 용인의 한 초등학교에서 산소호흡기를 끌며 하교를 하고 있다. 용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첫 단추 잘못 끼운 뒤 땜질식 대응에 피해자 고통만 키워

가해 기업·피해자 단체, 포괄적 피해구제에 동의해 시작

수용성 높고 공평한 조정안 만들려 연구·의견 수렴 거듭

―정부는 ‘추정’과 ‘권고’보다 강한 조처를 할 수 없었을까?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 물질로 일단 추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정부는 이듬해에야 원인 물질을 ‘확정’했다. 그때라도 우리 사회가 종합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기업들은 책임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부는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소송 지원 등 여러 조처를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 입법 대신 피해자 지원 계획을 세워 제한된 기간에 피해 신고를 받고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는 데도 몇년이 걸렸다.”

―검찰과 법원 단계에서는 어땠나?

2014년 8월 피해자들이 일부 기업 관계자를 ‘살인죄’로 고소하자 검찰은 2016년 1월 본격 수사에 착수해 제조사인 옥시를 비롯해 같은 성분으로 살균제를 제조·판매·유통하는 데 관련된 사람들을 기소했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에스케이(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 옥시와 다른 원료 물질을 사용한 기업의 관계자들은 뒤늦게 기소돼 지난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두 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하고 수사·기소하고 재판하는 시기가 각각 달랐고, 적어도 1심까지는 재판 결과도 달랐다.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어떻게 되고 있나?

“옥시 쪽은 검찰 기소 이후인 2016~17년에 당시 기준으로 인과관계가 비교적 확실하거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1, 2단계 피해자들과 손해배상에 합의했다. 그와 별도로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소송을 한 것이 있는데, 한꺼번에 모아서 하지 않고 워낙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개별 소송을 해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400명 남짓 되는 걸로 안다. 대부분 1심 단계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데, 이것도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과 관련돼 있다. 그렇게라도 소송을 진행하는 피해자는 일부에 그친다. 대다수는 배상·보상과 관련한 절차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입법부는 도대체 뭘 했나?

2013년 19대 국회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해 무산되고, 2017년에야 어렵사리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이 분담금을 걷고 정부가 출연금을 내서 그 기금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처를 해오고 있다. 치료비, 요양생활수당, 특별유족위로금같이 법에서 정한 몇가지가 기금에서 지급되고 있다. 피해자들 처지에서는 당장 급한 비용 문제에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됐지만, 실질적인 보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렇게만 해서는 도저히 일상을 회복할 수 없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양대 사건으로 다루지 않았나?

“사참위 활동 등으로 진상조사는 어느 정도 종결된 걸로 보인다. 다만 사참위 특별법에서는 사참위의 역할을 진상규명뿐 아니라 제도 개선, 피해자 지원대책 점검까지 세가지로 정하고 있는데, 우리 조정위 같은 활동은 피해자 지원대책 점검이라는 범주에 들기 어려워 조심스러워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조정과 관련해 피해자 단체들 사이에 이견이 적지 않은 점도 사참위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배경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결국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한 셈이다.”

―조정위의 차별성은 뭔가?

“법원 재판이 엄격한 증거나 주장을 토대로 책임을 가리는 것과 달리, 우리가 하는 조정은 여러 사안을 조사해보고 조정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일이다. 타협 속에서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도양단식 해결보다는 양쪽 다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안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당사자들이 수용하면 성공하는 거다. 그래서 위원 5명을 법률가뿐 아니라 정책과 현안 조정 경험, 공론화 경험이 많은 분들로 구성했다. 당사자들의 수용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유연하게 구성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의료인 등과도 충분히 소통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례를 맡았던 김지형 위원장과 에스케이하이닉스 직업병 사례를 맡았던 장재연 위원장을 모시고 고견을 들었다 .”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정하는 건가? 또 조정이라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보상’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정위는 ‘지원 보상’이라고 표현한다. 배상·보상이 엄격한 법률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성격은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조정이라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사건이 10년 넘게 길어지는 데 있다. 대다수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구제도 한없이 미뤄져왔다. 또다시 10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법원의 판결 방식은 피해에 대해 엄격한 인과성 입증을 요구한다.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는 과학적으로 인과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만큼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제약이 크고, 많은 피해자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조정은 인과성이 아니라 상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피해구제의 폭이 상당히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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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5주기 추모대회에서 한 피해자 가족이 꽃을 바치려고 제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인과성’ 아닌 ‘상관성’으로 판단, 피해구제 폭 넓혀

조정안 수용성 확인 시작… 올해 안 ‘개인별 동의’ 착수 목표

피해자는 일상회복, 기업은 오명 씻고 본업 전념토록

―피해자의 범주와 층위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데, 단일한 조정안이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조정안을 만드는 데 네가지 큰 원칙을 세웠다. 첫째, 사회적 합의를 통한 종국적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모든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둘째, 당사자들의 수용성을 높이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강제력이 없는 조정 절차가 성공하려면 피해자뿐 아니라 기업들까지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과관계를 유보하고 상관성에 기반해 합리적 판단 근거를 확보한다. 끝으로, 실질적 공평의 원칙이다. 피해자의 범주와 층위가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피해 유형을 세심하게 구분하고 묶어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공평하게 피해를 보상하려면 세부적인 항목도 정교해야 할 것 같다.

“조정안은 크게 세가지 구성요소의 합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첫째, 피해 등급 등을 감안한 피해자 구제지원금이다. 둘째, 개인별 가중 요인이다. 미성년자나 사망자 등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부분에 일정한 가중을 하는 것이다. 셋째, 피해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위로금도 있다. 이 세가지 구성요소를 합산해 최대한 공평하고 합리적인 조정안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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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원 대상 규모는 얼마나 되나?

“환경부에 피해구제를 요청한 인원은 현재까지 7500여명 정도이고, 달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기업에서 배상·보상을 받은 400여명은 제외돼 있다. 7500여명 가운데 5000명 정도가 아직 피해 인정 여부와 등급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조정 대상은 원칙적으로 이분들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늦어도 올해 안에는 판정을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

―조정안은 어느 정도 진척됐나?

“그동안 여러 모델을 연구하고 검토하고 의견을 청취해 종합적인 안을 완성해가고 있다. 이제 조정위의 안을 가지고 피해자 단체들과 기업들을 상대로 수용성을 확인하는 단계에 착수한다. 열심히 의견을 듣고 조정하고 보완해 2월 초쯤 상당히 합의를 진전시켜 2월 말까지 안을 확정한 뒤 피해자 단체들과 기업들이 수용하겠다고 하면 대외적으로 발표하려고 한다. 그 뒤에 개개인에게 동의를 요청하는 절차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부터가 어려울 것 같다. 보상 액수를 둘러싼 논란이 클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온 것도 피해자 단체들과 기업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정이 성공하려면 양쪽 당사자들이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서로 양보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특히, 조정위 구성을 먼저 제안한 건 기업들이다. 이제 사회는 경제적 이익만 앞세우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원하고, 그런 기업만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기업들이 잘 알 거라고 본다.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이라는 오명을 씻고 본연의 기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당부한다.”

―조정이 성사된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기승전결이 완성되는 거로 봐도 되나?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정안에 동의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취지에 걸맞게 최대한 많은 피해자들이 동의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안을 내놓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끝이 아니다. 갈수록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적인 집단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끔찍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노력하고, 법·제도와 의식도 개선돼야 한다. 그것이 이토록 길고 긴 이야기, 서사의 결말이 돼야 한다. 부디 조정위의 활동과 조정안이 좋은 성과로 이어져,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좋은 모델이 됐으면 한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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