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않은고통(18)]산모사망 원인이 곰팡이? '살인 기업'의 꼼수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18>] 재앙의 원인을 둘러싼 엉뚱한 주장들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보건학 박사
가습기 살균제 재앙의 범인을 범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는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거짓에 속아 진실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와 국적을 불문한 많은 과학자들이 2005년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건'을 기억한다. 명성과 막대한 이권이 걸린 과학 연구에서 자료 조작이나 사실 왜곡은 연구자에게 때론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 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에는 '앤드류 웨이크필드' 사건이 있었다. 앤드류 웨이크필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홍역, 유행성 이하선염, 풍진을 예방하는 종합 백신인 엠엠아르(MMR) 백신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는 사람이 많다. 이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홍역을 치를 수 있기에 대부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료 접종을 하고 있다.
1998년 영국인 의사 앤드류 웨이크필드는 대다수 아이들에게 접종하던 엠엠아르 백신이 아이들에게 자폐증과 장 질환을 일으킨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나중에 드러난 것이지만, 이는 자료 조작을 통한 명백한 사기였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부모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백신 제조업체에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등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미국 과학한림원이나 영국 국립의료원 등은 즉각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정부 연구기관과 과학자단체의 연구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엠엠아르 백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짐 캐리 등 인기 스타들도 포함됐다. 정작 이 사건을 일으킨 웨이크필드는 영국 법률구조기금에서 연구비로 막대한 금액을 얻어냈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이 개발한 홍역 백신의 특허권을 신청해두어 기존 엠엠아르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자신의 홍역 백신을 선택한 사람들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비과학적 사실을 과학적 사실로 둔갑시킨 사례에서 교훈 얻어야
정신과 병동의 간호조무사로 오랜 기간 일했던 영국의 만화가이며 사진가인 대릴 커닝엄이 과학·의학계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속임수, 사기극 등을 골라 그림을 곁들여 펴낸 <과학 이야기-거짓말, 속임수 그리고 사기극(원제, Science Tales)>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웨이크필드의 사기극을 포함해 '비과학적'인 주장을 마치 '과학적'인 것처럼 속여 일반 대중을 현혹하고 부당하게 이득을 본 사람들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파헤쳐 놓았다.
여기에는 병원체나 독극물을 다량의 물로 희석한 용액을 복용하게 하여 모든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는 동종요법의 창시자나 척추 교정으로 암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카이로프랙틱 창시자 등의 사기극도 포함됐다. 이런 사기극을 벌이는 사람들은 아직도 전 세계 곳곳에서 대중들을 속여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 담배 제조업자들이 일부 비도덕적인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담배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게 한 사례도 있었다. 과학 정신과 과학자의 양심을 돈에 판 일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있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 "반도체와 백혈병 상관없다"던 인바이런사의 비밀)
이런 사기극에 동참한 이들 가운데 대통령도 있다. 바로 넬슨 만델라 다음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치인으로 그의 뒤를 이어 1999년부터 10년간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타보 음베키다. 음베키는 대통령 시절 에이즈가 바이러스로 발병한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의 밑에 있던 보건부 장관도 에이즈는 치료제가 아니라 마늘, 비트, 감자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치료약을 투여 받지 못한 산모에서 수천 명의 에이즈 감염 아이들이 태어나는 비극이 벌어졌다. 하루에 900명씩 30만 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미 2000년대 들어 2011년까지 산모와 아이 등 많은 목숨을 앗아간 원인으로 정부 역학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러한 역학연구 결과는 국내 학술지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여러 국제학술지에도 실려 세계 의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회사와 이들이 내세운 변호사와 일부 학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살균제 회사의 레지오넬라 감염증 가능성 주장에 역학자들 콧방귀
이들 변호사와 일부 학자들은 산모 등이 겪었던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라 레지오넬라와 같은 세균이나 곰팡이 등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국내 역학전문가와 원인 규명에 힘을 쏟았던 학자와 의사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분노했다. '살인 기업'이라고 낙인찍히지 않고 엄청난 보상비를 염려해 엉뚱한 놈을 범인으로 몬다는 것이다.
세균이 일으키는 감염병인 레지오넬라증은 병원, 찜질방, 요양시설 등의 냉각탑 물, 에어컨, 샤워기, 수도꼭지, 분무기, 분수 등의 오염된 물에 있던 레지오넬라균이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나 먼지 등과 함께 날려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와 발병한다. 우리나라는 3군 감염병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병은 주로 고령자와 흡연자, 만성폐질환자 등 면역력이 낮은 계층에서 폐렴형으로 발병되고 있다. 이 질환은 2~12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 기침, 근육통 등 독감과 같은 증상으로 시작하여 폐렴 증상을 나타낸다. 급속히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며 의식장애, 심부전 등 여러 장기에 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폰티악 열이라고 해서 폐렴을 동반하지 않고 인플루엔자 감염 증상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항생제를 투여해 조기 치료할 경우 완치되며,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5~30%의 치명률을 나타낸다. 주로 6~10월에 발생한다.
이 병은 1976년 7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 재향군인회 총회에 참가하였던 재향군인(Legionnaire)들에게서 집단 발병했다. 환자 220명 가운데 34명이 사망하자, 처음에는 괴질로 불리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역학조사 끝에 새로운 세균에 의한 감염병임을 밝혀냈다. 최초의 발병이 재향군인에게서 있었다고 해서 세균에게는 레지오넬라(legionella)라는 이름을, 감염병에는 레지오넬라증(legionellosis)이란 이름을 각각 붙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84년 7월 서울 고려병원(지금의 강북삼성병원)에서 중환자실 환자와 간호사 등 23명이 집단 발병해 중환자 4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역학전문가인 당시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정순 교수는 레지오넬라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고, 보건사회부가 역학조사를 벌인 끝에 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 뒤 우리나라 방역당국과 지자체는 해마다 여름철을 앞두고 다중이 많이 드나드는 백화점, 병원, 학교, 대형빌딩 등을 대상으로 레지오넬라증 감염 주의와 냉각탑과 에어컨 등 균이 번식할 수 있는 곳에 철저한 소독을 당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재앙을 부인하는 기업들, 우리 사회의 희극
발생 당시 괴질로 여겼던 우리나라 최초의 레지오넬라증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정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필자와의 만남에서 "레지오넬라증이 전국 가정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다양한 연령층에서 발병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국내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못해 속수무책이었다는 것도 (산모 등이 겪은 간질성 폐질환이) 레지오넬라증과는 무관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석은 다른 여러 역학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2~3월에 환자가 집중했다는 점, 항생제가 무용지물이었다는 점, 건강한 사람들도 발병했다는 점, 집단 발생하지 않고 가정에서 발생한 점, 급격히 나빠지기 전 보름 또는 한두 달의 가벼운 증상이 나타난 환자가 많았다는 점, 간질성 폐렴 집단 발병과 관련해 수집된 임상 증상이 레지오넬라증 증상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 등 많은 증거로 미뤄 레지오넬라증이 아님이 분명했다. 우리나라 의료진, 특히 내로라하는 대학병원의 의료진의 질병 진단 수준이 레지오넬라증과 다른 질환을 구별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질병관리본부와 중앙역학조사반은 원인 미상 간질성 폐렴의 유력한 후보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 적이 있는 기존 바이러스와 세균 등을 조사했지만 허탕이었다. 그 다음 검토한 것이 환경요인이었다. 곰팡이가 가장 먼저 조사 대상에 올랐고 나중에는 황사까지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곰팡이의 '곰'자도 모르고 살았다. 감을 잡지 못해 오리무중일 때 등장한 것이 황사였다. 하지만 황사 발생 시기와 환자 발생 시기가 서로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황사가 왔을 때 피해자들은 실내에만 있는 등 역학에서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 동물실험에서 정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살균제를 흡입한 쥐와 흡입하지 않은 쥐 간 위해성의 차이가 50배나 차이가 났다. 이처럼 뚜렷한 차이가 나기가 쉽지 않은데 연구자들도 놀랄 정도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때부터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루빨리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을 막아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연쇄살인마를 잡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에 처했더니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는 연쇄살인마가 틀림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될 때 발생했던 환자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 환자가 3년째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 또한 가습기 살균제가 우리나라를 뒤흔든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의 범인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나왔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진실을 거짓으로 몰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하려는 일부 기업들의 뻔뻔함이 낳은 우리 사회의 희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