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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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제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은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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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제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은 심정”

한겨레21 [2014.04.21 제1007호]

[사회]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지원금 ‘차별’ 지급… 업체에 구상권 청구하려
엄격한 잣대 들이대 의심환자 중 절반만 피해 인정해 논란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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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원인 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발표한 지 2년6개월 만인 지난 4월2일 환경부가 피해자 168명에게 의료비 등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012년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조업체 처벌과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모습.뉴시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의료비·장례비(사망자) 등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임산부들한테서 주로 발생했던 원인 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지 2년6개월 만이다. 하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의심환자 2명 중 1명꼴만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폐질환이 심각하지 않거나 폐질환에 앞서 다른 수술을 받았으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능성이 낮거나 연관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정했다.

한 방에서 썼는데도 다른 결과

지난 4월7일 만난 최주완(60·택시운전사)씨는 마른침을 연방 삼켰다. 2008년 3월 아내 김영금(사망 당시 52살)씨를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렴으로 갑작스레 잃고 입이 마르는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병원, 한의원, 민간요법 등을 다 시도했지만 낫지 않는단다. “화병”이다. 2005년 5월 간단한 수술(복강경 부신종양 제거)을 받고도 식당일을 하던 아내가 2008년 초 기침을 시작했다.

밤새 택시 운전을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온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 내과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몇 주가 지나도 낫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힘들겠다”고 했다. 국내에서 흔치 않은 질병이라면서. 아내는 그렇게 어이없이 숨을 거뒀다. 3년이 지난 뒤 아내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는 걸 최씨는 알았다. 원인 미상의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정부가 발표하던 즈음이다. “딸이 엄마가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었다고 말하더라.” 쓰다 남은 가습기 살균제를 찾아냈다.

지난 3월11일 최씨의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의심환자 361명(생존자 257명·사망자 104명) 중 127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확실하고 41명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가능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사례는 각각 42명, 144명이었고 나머지 7명은 자료가 불충분해 판정받지 못했다. 최씨 아내는 ‘가능성 낮음’으로 분류됐다. 배근량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과장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 정도를 판단할 설문조사, 의심환자가 제출한 의무기록,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등을 토대로 폐의 세기관지 손상 등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에게서 주로 나타난 특이점을 근거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가능성 낮음’(42명)과 ‘가능성 거의 없음’(144명)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은 지난 3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결과 설명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공청회’에서 울분을 토했다. 어떤 아버지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며 한방에서 잔 아이는 ‘거의 확실함’ 판정을, 비슷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는 나는 ‘가능성 거의 없음’을 받았다. 왜 상반된 판정이 나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풍비박산난 일상

어려서부터 기관지 확장증으로 고생하던 50대 박아무개씨도 ‘가능성 낮음’ 판정을 받았다. 그는 환절기만 되면 숨을 쌕쌕거려 가습기를 사용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왔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2008년 7월 박씨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그 폐로는 살기 힘들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가족을 불러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다. 실제 숨이 멈춰서 전기충격기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났다. 다행히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 박씨는 목숨만은 건졌다. 몸무게는 49kg에서 35kg으로 줄었다. 함께 e러닝 프로그래밍 일을 하던 박씨 부부는 생업을 포기해야 했다. 남편이 차량으로 화물 택배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박씨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아내는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수시로 찾아오는 위기 때문에 두 아들이 간병하느라 회사도, 대학도 가지 못했다. 가정이 풍비박산 났는데 ‘가능성 낮음’이라니….” 60대 여성이 거들었다. “당뇨를 앓던 남편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가 폐섬유화를 동반한 원인 모를 폐질환에 걸렸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다는 판정을 받지 못했다. 만성질환이 있거나 폐질환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가능성 낮음’ 판정이 나온 것 같다.” 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백도명 서울대 교수는 “‘가능성 낮음’은 다른 원인으로 그 질환이 생긴 것 같기는 한데 가습기 살균제도 원인으로 배제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최주완씨는 한숨을 지었다. “기존 질병이 있는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을 때 더 치명적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았다. 인과관계만 밝힐 수 있다면 살균제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싶은 심정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간질성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는 분명하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 홍수종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 2006년부터 2011년 10월까지 간질성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소아·영유아 환자는 138명이었지만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중지된 뒤에는 비슷한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가습기 살균제과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동물실험에 이어 소아 환자의 역학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 것이다. 앞서 동물실험에선 살균제를 흡입한 쥐와 흡입하지 않은 쥐 간 위해성의 차이가 50배나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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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확실함’(127명)이나 ‘가능성 높음’(41명) 판정을 받았더라도 정부 지원은 의료비와 장례비(233만원·2014년 기준)로 제한된다. 피해자나 그 가족이 실제 지출한 의료비로, 즉 약제비를 포함함 진료비와 호흡보조기 임대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 차액 등의 일부 비급여 항목이 포함된다. 간병비나 생계수당은 빠졌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자택에서 4월10일 만난 신지숙(37)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간병비 지원이 필요하다.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대소변도 침상에서 해결하는데 아이를 돌보고 일도 하는 남편이 어떻게 간병까지 하겠나.” 신씨는 집에서도 산소호흡기 호스를 코에 연결한 채 생활한다. 특히 이날은 감기 기운마저 있어 거실 소파에 누워 연방 기침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도 버거웠다. 그의 몸무게는 40kg이 안 된다.

간병비·생계수당 빠진 정부 지원

신씨는 임신 8개월이던 2011년 5월,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구토·두통도 있었다. 처음엔 임신 후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그냥 넘겼지만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다 숨을 못 쉬고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었다. 의사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기를 꺼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딸이 태어났다. 신씨는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느라 오랫동안 아기를 안아보지 못했다. 결혼 후 라섹 수술을 한 뒤 신씨는 눈이 건조해 가습기를 사용했다. 그때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생필품 코너에서 손쉽게 사서 썼는데 이렇게 엄청난 일이 생길 줄 몰랐다.” 병원비로만 1천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퇴원 뒤에도 집안일을 못해 생활비 지출은 더 늘어났다. 산소호흡기 탓에 부엌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 지난해 호흡기장애 1급 판정을 받아 월 65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다. 하루 2~3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큰 보탬이 된다. “긴급 상황이 언제 생길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사람이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주고 잠시 집안일도 해줘서 고맙다.”

병세가 호전되는 유일한 길은 폐 이식 수술이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과 수술 위험 등 때문에 신씨는 망설이고 있다. 건강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가족을 빚더미에 앉힐 수 없다고 했다. 폐 이식 수술비는 7천만원, 한 달 약값은 300만원 정도 든다. 간병비 등을 합치면 1억원을 훌쩍 넘는다. “가해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다해서 피해자를 지원하면 그때 좋은 기술로 폐 이식을 받아 건강해지고 싶다.”

정부가 엄격한 잣대로 피해자를 분류하고 지원금을 의료비로 제한하는 이유는 구상권 청구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지원금을 지급한 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청구해 그 돈을 되돌려받을 작정이다. 따라서 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있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피해자는 애초에 지원 대상에서 빼버렸다.

2011년 11월 기준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사례는 541건(사망자 141건)이다. 그중 옥시 레킷벤키저 제품(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이 60% 정도로 가장 많다. 옥시는 책임을 철저히 회피하고 있다. 사과는커녕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폐 손상 원인은 곰팡이나 황사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쉐커 라파카 옥시 대표가 5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이나 법적 책임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이유다.

징벌적 배상금 부과해야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법원이 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숨기고 당뇨 치료제를 판매한 일본 제약회사(다케다)에 60억달러(약 6조3천억원)의 징벌적 배상금을 최근 부과했다. 우리나라 법원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태아부터 80살 노인까지 100명 넘게 사망한 초유의 사건이다. 800만 명이 사용했다니까 잠재적 피해자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도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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