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을위한과학기술인포럼]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1심 무죄판결을 비판한다
[논평]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을 비판한다.
과학자들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무죄 판결을 비판
지난 1월 12일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관련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9고합142, 388(병합), 501(병합))이 있었다. 재판부는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폐질환 및 천식 발생 등으로 이어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전제로 하는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에 대한 책임은 살펴볼 필요가 없고 따라서 무죄라고 판결하였다.
이 판결에 대해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과학자들과 한국환경보건학회 등의 전문가들은 강하게 비판하였다(한국환경보건학회, 2021.1.19., “가습기살균제 CMIT/MIT 판결에 대한 한국환경보건학회의 성명서”).
첫째,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실재 존재했지만, 재판부는 동물실험을 근거로만 문제의 제품 사용과 폐질환 발생 간 인과성이 없다고 판단한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인간에게 실험해 살펴보는 것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안으로 동물실험이 수행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와 관련해서도 그간 독성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흡입노출, 기도점적 방식 등 다양한 동물실험이 이뤄졌다. 하지만, 문제는 동물과 인간은 다른 종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입덧 치료제로 사용되었던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참사로 증명된바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동물실험에서는 어떠한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를 복용한 다수의 임산부가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를 출산하였다. 설사 그간 동물실험에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간 인과관계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둘째, 동물실험에 의하더라도 CMIT/MIT가 호흡기 상부(상기도)에 질병을 일으킨 증거는 많고, 2020년 5월 동물실험에서 기도점적(기도에 성분을 떨어트리는 방식)을 통해 CMIT/MIT가 폐섬유화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연구진이 “흡입노출 방식이 아닌 점적투여 방식으로 실험조건을 변경해 가면서 이 사건 각 시험을 계속해서 진행”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과는 달리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과학적 가설이며, 가설을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서 검증하는 것이 실험이다. 재판부가 가설 검증의 실험 과정을 ‘연구자의 편향’으로 해석한 것은 과학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제조-판매사는 CMIT/MIT를 직접 흡입 가능한 가습기살균제로 사용하면 인체피해가 우려됨을 사전에 인지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성 확인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CMIT/MIT는 플라스틱, 페인트 등의 항균 첨가물로 사용되거나 기계를 닦는 데 사용되던 공업용 항균제로, 가정에서 사람의 흡입 가능성을 염두하고 만든 물질이 아니다. 특히 피부 및 안구 자극성이 심한 독성 화학물질로, 국립환경과학원도 2012년 9월 CMIT/MIT를 유독물로 지정·고시한 바 있다. 이처럼 유독한 물질이기 때문에 직접 흡입 가능한 가습기살균제로 제품을 개발하려면 그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CMIT/MIT와 가습기 피해질환 간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제조-판매사의 위법 책임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였다. 그렇다면 CMIT/MIT가 자극성 강한 물질임을 알면서 직접 흡입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한 제조-판매사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인가? 제품의 독성, 위해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지하였음에도 안전성 확인을 다하지 않은 제조-판매사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인가? 재판부는 CMIT/MIT 제조-판매사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져야 했으나, CMIT/MIT와 가습기 피해질환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재판부는 인간 대상 실험이 불가능한 본질적 한계를 문제시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인과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될 것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이라는 관점을 유지하였다. 이로부터 재판부는 CMIT/MIT가 인체에 미치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밝히기를 요구하며, 과학과 연구가 인간 대상 실험을 할 수 없는 본질적 한계를 문제시했다.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직접적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하는 것은, 유독물질을 사람에게 직접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안으로 연구자들은 역학연구와 동물실험연구를 통해 유독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추론한다.
동물실험에서는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을 통제하고, 오직 관심이 있는 유독물질의 독성만을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동물과 인간은 다른 종이기 때문에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역학연구는 이미 특정한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이 많은 경우(즉, ‘자연적 실험’ 상황), 특정 질병이 발병한 사람들을 추적해 질병의 원인과 발병 경로 등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역학연구는 동물실험과는 달리 특정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처럼 유독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나 동물실험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수집된 여러 연구의 간접 증거들로부터 추론을 할 수 밖에 없다.
담배회사는 불확실성을 무기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고 책임을 회피
유해물질 제조산업이 ‘유해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흔들고 불확실성을 조장해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책 『청부과학』 (데이비드 마이클스 저)은 담배회사가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에 대해 ‘역학 및 실험 연구의 불확실성’을 근거로 의심을 퍼트리며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담배회사와 그들이 고용한 청부과학자들은 “모든 관련 연구를 문제 삼고, 모든 연구방법을 비판하고, 모든 결론을 논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조”했고, 이를 통해 “흡연자들이 폐암과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다는 사실”과 “나아가 간접흡연이 비흡연자의 발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를 반박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반박하지 못한 증거는 “흡연 습관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질병으로 매일 죽어나가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명백한 숫자”였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이번 판결에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변호인단은, 그간 담배회사가 취했던 전략처럼 “모든 관련 연구를 문제 삼고, 모든 연구방법을 비판하고, 모든 결론을 논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조”하는 전략을 취했다. 변호인단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관련 개별 동물실험의 한계, 역학조사의 한계를 쟁점화 하였다.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전략에 호응하였다. 재판부는 동물실험, 역학조사의 의미와 한계를 종합하여 추론하기 보다는, 동물실험, 역학조사가 본질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을 문제 삼으며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간 인과관계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관련 판결은 검찰의 항소로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1심 재판부는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재판부로서는 현재까지의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판결에 대한 소회를 언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의 판결은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시시비비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역학 및 실험 연구의 불확실성’을 ‘CMIT/MIT와 폐질환 발생 간 인과성이 없다’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담배회사와 청부과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1심 판결의 변호인단은 ‘역학 및 실험 연구의 불확실성’을 무기로 책임을 피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1심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반박하지 못하는 증거는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사용 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존재이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의 잘못된 결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