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가습기살균제에 무너진 삶… 12년째 지옥같은 고통
가습기살균제에 무너진 삶… 12년째 지옥같은 고통 [집중취재]
아픈 아이 위해 구매했다가 날벼락...산소 공급줄 등 보조기구 의지
대법, 제조사 배상 책임 첫 인정...도내 피해자들 “진심어린 사과를”“가습기살균제 제조사는 피해자에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 12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후 폐질환 진단을 받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첫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9일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업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아직 살균제 제조 기업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다. 경기일보는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의 고통을 끊어낼 방법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
“10년 넘는 세월 동안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여전히 하루하루가 고통스럽습니다.”
박수진씨(51·안산)는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 지옥과도 같았다고 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2003년 그때로 돌아가길 매일 밤 눈물로 기도했다고 했다. 희귀병을 갖고 태어난 막내 아들을 위해 쓰기 시작한 가습기살균제였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던 마음에 썼던 그 살균제가 성인이 된 아들에게 평생 천식과 비염을 안겨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내 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부턴가 건강했던 둘째 아들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천식과 아토피, 비염 증상으로 응급실을 여러 번 찾았다. 가려움을 참지 못해 생긴 상처와 진물이 온몸을 뒤덮었고, 순간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학교에선 종종 발작도 일으켰다. 그렇게 아들은 왕따를 당하며 학창시절을 악몽으로 보내야 했다.
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수진씨(51)가 그녀의 집에서 자신의 의료 기록을 보여주며 피해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종연PD
몸이 아프기 시작한 건 아들들 뿐이 아니다. 박씨 역시 몸이 엉망으로 변했지만, 자신보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그는 “병원에서 폐 기능이 자꾸 떨어져 몸속 산소 농도가 49%뿐이라고 들었다”며 “내 몸이 증거자료인데, 아직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는 국가와 기업에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자식들을 위해 구입했던 가습기살균제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느냐”며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괴로움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6일 화성시의 한 카페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54)가 코에 산소통이 연결된 채로 피해 사실을 호소하고 있다. 오민주기자
조순미씨(54·화성)는 보행 보조기구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그의 코에는 망가져버린 그의 폐를 대신할 산소 공급 줄이 꽂혀 있고, 소변 줄을 달고 살아야하는 상황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조씨는 한마디 한마디를 건넬 때마다 파르르 입술을 떨길 반복했다.
좋다고 해서 산 가습기살균제였다. 가습기살균제를 쓰고 나면 식은땀이 나고, 종종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자신을 갉아 먹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폐 기능 수치가 죽기 일보 직전인 27%라고 했다. 응급 수술을 받았고 회사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호흡기, 면역계, 신경계, 혈관계 등 전신에서 여러 가지 질환이 발병해 매주 2회씩 병원에 다니고 있다. 조씨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많은 피해자가 병상에서 또는 가정에서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라고 눈물지었다.